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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은 어떻게 전해야 옳은 걸까요?

연애는 갈수록 뜨겁지 않아요.

by 주또

솔직히 당신이 사랑한다고 했을 땐 믿지 않았어요. 어차피 처음에만 좋은 사랑, 시간 지나면 변질되기 일쑤일 거라며 콧방귀를 뀌었어요. 뻔하잖아요. 경험해 본 바엔 그랬어요. 매번 이번엔 다르겠지, 했던 사랑도 영원은 없었어요. 적정 기간이 지나면 마무리되었고요. 나이를 먹을수록 이별엔 크게 감정이 요동치지도 않았어요. 울고불고하는 날도 줄었어요. 바삐 지내다가 보면 ‘나 살기도 바빠서’ 하며 담담히 머리카락을 쓸어내리곤 했어요. 점차 심하게 감정 소비할 체력도 안되었던 거 같네요.


물론 한차례 사랑을 매듭짓고 난 후엔 습관이랄지, 사소한 면들이 닮아 멈칫하는 순간들도 있었다만 별 수 없는 거잖아요. 주로 혼자 있는 시간마다 멍 때리긴 했어요.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길에도 넋 놓고서 창밖을 내다보다가, 내릴 곳을 놓쳐 황급히 벨을 누르기도 했고요. 초점을 잃은 상태로 음료를 먹다가 문득 느껴지는 축축함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옷이 죄다 젖어있더라고요. 또한 양치를 하다가 그 상태로 굳어 거울만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람이 되기도 했어요. 신발 끈을 묶으려다가는 냅다 얼굴을 무릎에 묻어버리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답니다.


연애는 갈수록 뜨겁지 않아요. 이별도 마찬가지고요. 이미 여러 번 겪어본 짓들을 반복하는 까닭일 수도 있어요. 다만, 현재진행형일 적엔 왠지 꼭, 우리를 이 세상 속 주인공인 양 굴도록 만들곤 하지요.


가끔 생각해요. 이별은 어떻게 전하는 게 옳은 것일까요? 그럴싸한 이별 같은 건 없을 텐데. 사람들은 만나서 얘기해야 한다, 메시지보다는 전화로 전해야 한다, 의견이 갈려요. 어쨌든 간에 아름다운 이별은 없을 거 아닌가요. 구구절절 이유를 되풀이해도, 사랑했다, 사랑했어, 정말로, 거짓말 아니야. 그게 진짜였든 가짜였든 간에. 이미 끝난 사랑에 대고서 뭐라 덧붙일 문장이 있으려나요.


당신이 없을 나의 일상보다, 내가 없을 당신의 일상이 상상 가지 않아 먹먹해지기도 했어요. 이따금씩 안부 묻는 사이로 남고 싶은 사람도 존재하긴 했는데요. 그건 성격상 말도 안 되긴 해요. 다음에 만나게 될 사람에게 예의도 아닌듯하고. 너무 많은 걸 공유해버린 탓에 어정쩡한 관계가 되기에도 이상하고.


어떤 연애에서는, 이런 기분이 든 적도 있어요. 이미 사랑은 식었거든요. 한데 정이 남았던 거 같아요. 그래서 헤어져야 할 것 같은데 헤어질 수 없었어요. 이 사람이 나 없이 아플 것도 걱정되고요. 이 사람이 칠칠맞게 깜빡하는 것들을 챙겨주고, 되짚어주지 못할 점도 신경 쓰이고요. 바깥에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사람인데, 또 나 없으면 집에만 콕 박혀있을 것이 맘에 걸렸어요. 이러한 이유들이 발목을 잡아 계속해서 관계를 이어갔던 적도 있어요. 결국엔 결말이 질질 끌다가 맞이한 이별이 되긴 했지만요.


종종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했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를 제법 한 경우에는 더 그랬던 거 같아요.


사랑한다고 해서 믿지 않았으나, 지나고 보니 어떻냐고요. 사랑이 맞았던 거 같냐고요. 당신이 나를 향해 보였던 모습들을 의심할 여지가 있냐고요. 글쎄요. 그랬던 것도 같고 아니었던 것도 같아요. 긴가민가해요. 별로 중요하진 않아요. 어찌 되었든 간에 내가 당신을 사랑했었으니까요.


사랑했고,

사랑이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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