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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기와 달리 늘 슬펐어요

by 주또

분명 나한테 한 얘기는 아니었거든요. ‘슬펐어?’ 다른 쪽을 향한 질문에 괜스레 내 미음이 축축해지는데요. 아무 데서나 쭈그려앉아 고개를 묻고픈 충동을 꾹 눌러 담아요.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늦추며 거리를 배회하고요. 전화를 걸어볼까 망설이다가 핸드폰을 넣고서 귓가에 흘러들어오는 음악만 주야장천 집중해 보기도 해요. 마음이 과거에 있으니 아직도 못난 것들에 얽매이는 걸까요. 미래에 있자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고요. 현재로 데려와 놓자니 피곤하고 마땅치 않네요.


요즘엔 사람을 사랑하기 어렵잖아요.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더욱 심하긴 해요. 재고 따지는 게 수두룩하잖아요. 어떤 이들은 a4 몇 장에 상대에 관한 조건을 빼곡히 채울 수도 있을 거예요. 조건 없이 사랑하고 대가 없이 사랑을 주는 일. 어떤 날은 감정조차도 피로해서 전부 전원을 꺼버리고 싶은데요. 단순히 잠깐 떠나고 싶은 게 아니라, 오래 떠나있고 싶은데요.


언제부터인가 힘이 되는 것들 사이에 있던 목록이 힘 빠지게 하는 것들로 뒤바뀌었어요. 사람들이 나를 판단하는 일이 아프고요. 내가 살아온 과정을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해맑은 웃음에 ‘걱정, 고민 없이 사는 애’가 되는 점도 억울하고요. 그저 좋게, 좋게, 대하는 게 좋거든요. 그런데 그게 꼭 마냥 밝은 애, 혹은 만만한 아이가 되는 것이, 참 쓰리단 말이죠.


예전엔 그래도 나를 구석구석 들여다봐주는 이가 있었어요. 내 감정에 대해 깊이 파고들어 물음표를 던지는 사람이 있었어요. 게다가 내가 하는 모든 얘기에 흥미를 가지고 궁금해해주었지요. 나는 간혹 그때를 떠올려요. 그때에도 내가 이만큼 공허해지고 슬퍼졌었나, 미워진 얼굴이 이따금 등장해 시야를 괴롭히고 그래요.


의외로 내가 진지한 대화를 굉장히 아껴요. 쉽게 흘러가는 가벼운 대화도 재미나다만 진지하게 속내를 보여주고 알맹이가 있는 듯한 대화는 완전히 내 취향이에요. 물론, 하고 난 뒤로는 홀가분한 기분이 아닌 꿀꿀해지긴 해요. 그래도 뭔가 나를 나눈 느낌이 강하게 든다고나 할까요? 우리 가족도 모르는 나의 단면들을 돌아가며 차례차례 꺼내 보이는 기분.


가끔 인생이 참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그러다가도 내 인생은 힘겨운 와중에 나름 운이 있긴 있었다고, 웃어넘겨보기도 하고요. 반드시 그렇게 될 일은 그렇게 된다고들 하잖아요. 잘 살아보고파 했던 일들이 나의 전체를 망쳤고요. 매사 조심한다고 했던 상황들이 깨져버리는 바람에 유리 파편처럼 사방으로 흩어져내렸어요.


눈을 감고서 떠올려요. 이젠 그만 잊으면 좋을 일들과, 조금이라도 더 추억이라 부여잡고픈 장면들을요.


올여름은 꽤나 길다고 하거든요. 더위를 너무 타서 고민이었고 다른 이들보다 세배 가량 땀을 흘려 콤플렉스였던 시절이 있는데요. 한 이 년 전부터 인가. 갑자기 추위를 더 잘 타게 되었어요. 아직도 긴팔 잠옷을 입고서 배 위로 얇은 이불까지 덮고 잠드는 나를, 참 알 수 없어요. 이토록 의아한 일들 투성이죠. 앞으로는 또 어떠한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내일은 분명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 더 좋을 거예요. 수없이 적어내려요. 조용히 혼자 읊어보기도 하고요. 어딘가에 나를 버려두고 오고픈 날들을 애써 참아요. 어차피 다들 이렇게 버티는 거잖아요. 사랑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요.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살아온 삶이 내심 아깝기도 해서요.


차라리 기억을 잃는 편이 나을듯한 새벽엔 젖은 눈꺼풀이 몹시 무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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