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마음도 사랑이었다고 할 수 있겠죠?

by 주또

누군가의 마음에 한 번 오래도록 기억되어보겠다며 부단히도 알짱거렸던 시절이 있었다. 그 사람은 나보다 다방면에서 월등했다. 머리도 좋았고 내가 약한 산수도 잘했으며 말솜씨는 물론, 요리 실력도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운동까지 잘했다. 인생을 몇 번이나 더 살아본 듯한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과 가까워질 경우 나 역시 비슷해질 줄 알았다. 내가 보기엔 성공적인 삶을 사는듯한 사람이니 곁에서 보고 배우자면 가닿지는 못하더라도 언저리쯤 기웃거리지 않으려나, 기대했다.


그렇게 그 사람을 연구했다. 관찰했다. 바짝 올려 쓰는 안경을 유심히 바라보았고 그 너머로 건너오는 시선에 집중했다. 시원시원한 걸음걸이를 닮으려 했고 어른스러운 필체를 따라 쓰려 노력했다. 그 사람의 말투를 익혔다. 일부러 시답잖은 고민 상담도 자주 하곤 했는데, 건너오는 답변이 시시하지 않아 되려 심각해지곤 했다. 턱을 괴고선 물끄러미 눈에 담았다. 움직이는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음성이, 내게 과연 어떠한 도움이 될까. 실로 어떠한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다만, 안심이 되긴 했다. 그 사람과 대화를 하고 난 후엔, 꼭 나 또한 뭐라도 되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더 나이를 먹게 되면 나와 놀지 않을 거란 장난에 웃어버렸다. 당시에는 상관이 없지 않은 섭섭한 발언이었으나 언젠가 정말 상관 없어지는 날이 오면 어떡하지, 묘한 심정이었다. 습관처럼 안약을 눈에 한 방울 떨어뜨렸다. 그 사람을 맴돌지 않는 때가 온다면, 그것은 분명 내가 강해진 뒤일 거라고 단정 지어봤다.


무수히 복사되는 똑같은 감정들 중 제일 원본스러운 진심. 그 사람은 날 신경 쓴 적이 있던가. 그해 무더운 여름날. 모두들 늘어져있던 반면, 오직 그 사람 한 명만 바빴다. 이리저리 부지런하느라 등판이 땀에 다 젖은 줄도 모르고. 난 그 뒷모습을 넋 놓은 채 빤히 바라보았다. 아니, 홀렸단 표현이 어울릴법했겠다. 그 사람을 제외하곤 전부 느리게 지나쳤다.


나는 그 사람처럼 살아야겠다, 한 번 더 다짐했다. 땀으로 동그랗게 물든 등을 보며 부끄러워졌다. 훗날 누군가가 그 사람을 왜 그리도 좋아했냐 물으면 저런 이유 때문이었다고 답하겠구나, 생각했다.


아직도 그날이 선하다.


그리고 더 이상 그 사람이 나랑 놀지 않는다 한들 서운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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