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인터뷰, 멘탈모델, ICE Framework를 통해 문제 도출하기
먼저 다니고 있는 회사에 대해 소개하자면, 프랜차이즈 매장의 매장운영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이다. 그 중에서도 나는 점주가 매장 운영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프로덕트팀의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최근 공격적인 회사 성장에 따라 우리가 보유한 전국의 매장 수 또한 급속도로 늘어났고, 점주들의 CS 역시 물밀듯 밀려들어오게 되었다. 와중에 매장운영 시스템 서버는 규모가 커진 만큼 불안정해지고 있었다. 시스템 안정화와 기능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기능 개선이 이루어져야 할 지, 그 중 가장 임팩트가 큰 해결책이 무엇인지 내부에서 파악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이에 프로덕트팀은 우리 서비스의 고객인 점주가 매장 운영상 갖는 문제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가장 임팩트 있는 솔루션을 중심으로 개발 우선순위를 선정하고, 내부 직원들의 고객 이해도를 높이고자 '고객의 진짜 문제 찾기'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의 목표는 고객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며 고객이 가진 문제를 파악하고 우선순위에 따른 개선 사항을 도출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한 여정은 크게 리서치 기획-고객 인터뷰-인터뷰 분석-아이디어 워크샵의 4가지 과정으로 나뉠 수 있다.
고객을 만나기 전, 우리가 먼저 고객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간 수집된 VOC를 분석했다. 서비스 개선 요청사항과 채널톡에서 수집된 채팅내용을 분석하여 카테고리에 따라 내용을 분류했다. VOC를 수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기반으로 인터뷰 질문지를 작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체 매장 데이터와 전반기 지점 운영 데이터를 통해 점주의 성별, 운영개월수, 매출 등에 따라 분석한 결과 우리의 주요 고객은 은퇴 후 매장을 운영하는 50대 점주 혹은 부업으로 매장을 운영하는 30대 점주였다. 우리는 평균 매출 범위에 들고 매장을 운영한지 2년이 넘은 50대 점주 4명과 30대 점주 4명을 인터뷰하기로 했다.
리크루팅이 진행됨과 동시에 인터뷰 질문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인터뷰 방식은 Contextual Inquiry이다. CI는 에스노그래피 형태의 필드 리서치로 정해진 구조 없이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인터뷰 형식과 차별화된 형식을 가진다.
(↓Contextual Inquiry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하단 링크 참고)
인터뷰 특징 상 구조적인 질문을 최대한 피하며 고객이 했던 행동, 감정을 이끌어내고 구체적으로 파고들 수 있는 유의미한 질문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었다. 질문지는 점주가 우리 서비스를 탐색하는 시작부터 우리 서비스와의 계약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Journey Map에 기반한 순서로 작성했다.
VOC분석과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핵심 질문을 선정하고 '고객의 언어'로 쓰이고 있는지 고객과 직접 소통하는 부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파일럿 테스트도 진행했다. 파일럿 테스트는 꼭 해보길 추천한다. 우리팀의 경우 현장에서 고객과 만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실제 사용자들이 어떤 현장 언어를 쓰는지 잘 알지 못했다. 지점관리 팀장님과 영업 팀장님을 상대로 준비한 질문지로 모의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역시 고칠 부분이 많이 나왔다. 현장에서 고객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팀원들과 꼭 파일럿 테스트를 진행하길 바란다. 이렇게 일주일동안 고객을 만나기 위한 만발의 준비를 갖추고, 실제 인터뷰에 뛰어들었다.
고객 인터뷰에서 신경써야 할 점은 고객과 어느정도 유대를 가지다가도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모더레이터(Moderator)의 역할이 중요하다. 흔히들 알고 있는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와는 역할이 다른데, 퍼실리테이터는 결정 또는 합의를 이끄는 역할을 하며, 모더레이터는 의견을 모으고 과열된 의견과 상황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모더레이터와 퍼실리테이터의 차이)
우리는 점주 1명당 1명의 모더레이터와 1명의 기록자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기록자는 (동의 하에) 녹화 및 녹음과 함께 인터뷰 내용을 실시간으로 타이핑한다. 모더레이터는 고객과 CI를 진행한다. 유의미한 답변을 이끌어내기 위해 계속해서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하며 진짜 의도나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주의할 점은 고객의 '감정'에 치우친 답변을 고객의 '행동'에 근거한 답변으로 유도해야 한다. 이유는 추후 멘탈모델에서 더 자세히 설명할 예정인데, 멘탈모델은 고객의 행동을 바탕으로 행동패턴을 만들고 그 패턴을 모두 포괄하는 하나의 모델로 정리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감정보단 행동을 위주로 수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터뷰 준비물은 인터뷰를 녹화하고 녹음하기 위한 디바이스, 인터뷰 시 서로 간에 이름을 부르며 래포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명패(질문자, 기록자, 인터뷰이 모두 필요), 개인정보 수집 및 활용 동의서, 그리고 인터뷰 사례금이 필요하다. 우리의 경우 고객들이 있는 곳에 직접 방문해서 인터뷰를 했는데, 낯선 환경에서 빠르게 인터뷰 환경을 세팅하기 위해 세팅 순서도 미리 정리한 게 도움이 되었다. 실제로 인터뷰 현장에 가니 공간이 매우 협소한 곳도 있었고, 사정상 사람이 많은 카페에서 진행해야 했던 적도 있었다. 초반엔 사례금 지급을 깜빡해서 추후 다시 전달드렸던 적도 있었지만 몇번 진행하다보니 금새 익숙해져서 척척 준비하고 마무리까지 원만하게 할 수 있었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인터뷰 또한 철저한 준비와 어떤 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자세가 꼭 필요하다.
인터뷰는 총 1시간~1시간 30분정도 진행되었다. 나는 기록자 역할로 전반적인 환경 세팅과 인터뷰 기록, 인터뷰 후 사례금 지급까지 담당했고, 인터뷰는 대체적으로 폭풍같이(?) 흘러갔다. 우리팀은 인터뷰가 끝난 후 30분 내에 인터뷰 복기를 했고, 달리는 차 안에서도 인터뷰를 하며 느낀점이나 인상깊었던 점 등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소한 부분일지 몰라도 같은 인터뷰에서 각기 다른 부분에 주목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준비부터 진행 과정동안 긴장을 하고 있어서 인터뷰가 끝나고 나면 기진맥진했고, 쉬지 않고 바로 인터뷰 복기와 스크립트 수정까지 꽤나 벅찬 스케줄이었다. 게다가 원활하게 응해주지 않거나, 불만만 표출하는 고객들을 만나고 온 날엔 감정적인 소모 또한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고객들을 직접 만나며 몰랐던 정보를 알게 되고, 우리가 생각했던 것들과 다른 사실을 알게 되는 과정들이 굉장히 유의미했다. 고객에 완전히 몰입해서 우리 서비스를 고객 입장에서 보고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었던 매우 귀중한 경험이었다. 인터뷰를 통해 얻어진 로우데이터를 토대로, 본격적인 멘탈모델 작업에 들어갈 차례가 되었다.
고객 인터뷰를 통해 수집된 로우데이터를 통해 멘탈모델을 도출할 차례이다. 멘탈모델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타인, 환경 등 상호작용하는 행동에 대해 갖는 모형이다. 멘탈모델에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하단 링크를 참고하면 이해하기 쉽다. 멘탈모델의 장점은 실제 우리 고객이 하는 행동과 사고 과정에 대한 행동패턴을 도출하여 결론적으로 디자인 자신감(Confidence), 방향의 명확성(Clarity), 전략의 연속성(Continuity)을 얻게 된다는 점이다.
(↓우리팀이 참고했던 책. 멘탈모델을 이해하고 실무에 바로 써먹기에 강추)
개념적으로는 확실히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한마디로 멘탈모델이란 특정 주제에 대한 사용자의 행동 패턴을 찾고, 그 패턴을 포괄하는 하나의 모델을 만드는 일이다.
1. 고객 행동(경험)을 나열하고 행동 규칙에 따라 카테고리와 키워드를 도출한다.
고객 인터뷰를 통해 고객의 경험에서 공통 카테고리를 끌어낼 수 있다. 인터뷰 질문지를 작성할 때부터 어느정도 질문 카테고리를 정해놓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분류할 수 있다.
2. 공통된 카테고리끼리 묶어 행동기둥을 만들고, User Journey에 따라 흐름에 맞게 배치한다.
고객의 행동을 각 여정별로, 카테고리별로 묶어 분류하는 작업이다. 앞서 분류했던 카테고리는 행동기둥(*행동기둥: 다른 단위 행동을 대표할 수 있는 행동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 된다. X축은 고객 여정의 흐름이며 Y축은 Problem(고객행동)과 Solution(콘텐츠)로 나뉜다. 솔루션은 추후 워크샵에서 도출되니 먼저 Problem Space를 정리한다. 위 이미지는 디지털로 작업한 것이지만, 사실 포스트잇을 직접 붙여가며 작업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우리팀도 회사 라운지 벽에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멘탈모델을 만들었다.
아이디어 워크샵은 고객 문제 기반 솔루션을 도출하기 위해 자유롭게 아이데이션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경우 멘탈모델로 도출된 점주들의 문제점들을 내부 구성원들과 공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하자는 목표도 있었다.
우리는 다양한 의견을 모으기 위해 워크샵을 이틀에 걸쳐 모집했다. 사내 구성원들은 어떤 프로젝트를 하는지 알고는 있었지만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를 수 있기 때문에 고객 인터뷰 등 참고자료를 제공하여 워크샵 전 대략적인 이해를 도왔다.
사내 구성원 18명이 모여 고객 여정에 따른 행동패턴과 문제상황을 이해한 후, 하단 Solution Space에 자유롭게 의견을 냈다. 솔루션의 형태는 기능, 콘텐츠, 서비스, 정책 등 다양한 형태일 수 있다. 여정이 길기 때문에 크게 3단계로 나누어 이해하고 아이디어 내는 시간을 30분씩 가졌다. 터무니 없게 보이는 솔루션이라도 좋았다. 이러한 활동은 일종의 브레인스토밍이기 때문에 뇌를 말랑하게 한 후 실현 가능성과 관계 없는 자유로운 의견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틀간 180분의 시간동안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아이디어 워크샵을 통해 우리의 멘탈모델이 완성되었다.
+ 추후 더 나은 워크샵과 팀원들의 참여를 위해 워크샵에 대한 만족도 조사도 실행했다. 만족도 4.5점의 높은 점수를 받았다. 분명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우리 서비스가 고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고객들이 겪는 문제가 무엇인지 다같이 이해하는 자리가 된 것 같아 매우 만족스러웠던 경험이었다.
ICE Framework은 Impact, Confidence, Ease 3가지 기준으로 점수를 매겨서 기능 사이의 우선순위를 매기는 방법이다. 우리의 목표였던 '가장 임팩트 있는 솔루션을 중심으로 개발 우선순위를 선정'하는데 있어 이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업무 우선순위 선정시 목소리가 큰 사람 의견대로 선정되고 모두가 합의하지 않는 결론이 날 위험이 있다. ICE Framework는 정량적으로 우선순위를 선정하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없고, 모두가 동의하는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멘탈모델을 통해 도출된 problem to solution을 가지고 각 팀의 리더급들이 모여 ICE Framework으로 우선순위를 산정하는 시간을 가졌다. 점수를 토대로 가장 중대한 순위별로 상, 중, 하를 나누어 지표를 선정했다. 담당자와 일정을 산정하는 것을 끝으로 '고객의 진짜 문제 찾기'에 대한 해답이 도출되었다.
고객 리서치에서 시작해서 고객 인터뷰, 멘탈모델, 아이디어 워크샵, 그리고 ICE Framework까지 일련의 과정들은 모두 사용자 중심의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우리의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고객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어떻게 하면 고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어느 회사에서나 하고 있지만 정말 고객을 만나러 가서 이야기를 듣고, 내부 구성원들끼리 고객 관점으로 고민하고 결론을 내는 과정을 실제로 하는 회사는 많지 않다. 실제로 고객 인터뷰를 갔을 때 우리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주러 와줘서 고맙다는 고객의 말을 듣고 울림이 컸다. 우리가 서비스를 만드니까 제일 잘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우린 정말 고객보다 우리 서비스를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통계 데이터나 VOC만 보고 '고객은 서비스를 이렇게 사용하겠지.', '고객은 서비스에서 이런 불편함을 느낄거야.' 라고 짐작하는것보다 고객을 직접 만나보며 행동패턴을 수집하고, 멘탈모델을 만들어 내부 구성원들과 시각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다. 본질적인 문제를 찾아내기만 한다면 이미 80%는 성공한 것이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알고, 해답을 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