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 때는 월급이라는 것은 그냥 내가 일하는 대가를 받는 거라고만 생각했고, 그 월급이 주는 효과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겨를도 없었고, 이렇게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다. 그때 그것을 알았더라면 조금 더 신중하게 직장을 고르고 월급을 택하여 근로계약을 작성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적어도 그 취준 생활에만 겪을 수 있던 자유를 누리고자 하였을 수도 있다.
회사에 다니면서 월급이라는 걸 받으며 이 월급이 가져다주는 엄청난 권력과 힘을 느끼게 되었다.
첫째로, 월급을 받게 되면서 가족들이 나를 사회인으로서의 대우하며 그에 맞는 기대를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취준생일 때의 나와 지금 현실의 내가 바뀐 건 고작 그 월급 하나밖에 없는데 가족들은 기대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 나의 미래를 내가 설계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과 이제 어린애가 아닌 하나의 성인로서로의 나를 대해주는 가족들의 변화는 생각보다 놀라운 것이었다. 이제 모든 결정에 대해 내가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하나의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둘째로, 생각보다 세상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소소한 재미들이 많구나. 그게 모든 게 돈과 맞닿아 있다는 걸 알았다. 취업준비를 하면서 겪어왔던 세상도 참 즐거운 세상이었다. 내 주머니 속에 30만 원조차 남아있지 않았어도 그 안에서 나름 행복한 생활을 하며 견뎌왔었던 나날들이었다. 근데 세상에는 더 재밌는 것들이 많았다. 맞다. 돈을 쓰는 재미를 알아버린 것이다. 예전에 내가 누렸던 행복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곤 했다.
셋째로, 돈이 주는 권력의 맛을 알아버렸다. 왜 사람들이 굳이 사회에 나와서 그 힘든 일을 하면서도 돈을 벌고자 하는지를 가장 절실히 느낀 부분이었다. 겨우 월급을 받는 월급쟁이가 되었을 뿐이지만 나를 바라보던 주위의 시선들이 많이 바뀌었다. 나의 모든 발언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친척들과의 만남 속에서도 예전과는 달리 이제 어른들과 당당히 앉아 돈이 주는 힘듦과 즐거움을 이야기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참 놀랍고 무서운 변화 중 하나다.
사실, 모든 걸 떠나서 결국 월급을 받는 4대 보험에 가입되어있는 직장인이 되었다는 건 "아, 결국 성인이 되었구나"였다. 그렇게 부정하고 되고자 하지 않았던 그 현실에 맞닿아 버렸구나 싶었다. 어릴 때는 어른이라는 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무언갈 하고자 해서 얻어지는 게 어른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커가면서 어른의 지위에 서게 되는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사회가 인정하는 "어른"이라는 건 그저 올라설 수 없는 곳이었다. 또한, 올라가고자 하지는 않았지만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곳이었다. 그곳은 내가 가고자 해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 인정해야 올라갈 수 있는 그런 곳이었던 거다. 그 수단으로 가장 중요한 건 나의 "경제적 능력"이었고 그걸 증빙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월급, 돈"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수단 속에서의 월급은 더욱더 큰 권력을 과시하고 놓을 수 없게 만든다. 가진 걸 놓을 수 없는 그 초조함이라는 걸 알아버린 느낌이다. 모든 걸 놓을 수 있는 게 가장 큰 권력이고 용기라는 말을 요즘에서야 실감한다. 항상 매달 찍히는 월급을 바라보면서 과연 나는 이것들을 놓을 수 있을까? 매 달 생각해보지만 그저 흐지부지 되고 만다. 얼마 되지 않는 월급에서 나 또한 안정감을 느끼나 보다. 그 상태가 주는 그 모든 것에 취해버렸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