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 하세요?”
예전에 이런 질문을 받으면 설명하기가 조금 곤혹스러웠다. 왜냐하면 “도시계획 합니다.”라는 나의 대답에 십중팔구 “그게 뭔가요?”라는 질문이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면 난 어떻게 설명해야 쉽게 이해할까 고민하며 이렇게 저렇게 부연한다. 신도시를 계획하기도 하고 어쩌고저쩌고……, 그런데 요즘엔 신도시 개발이 없으니 지구단위계획이란 걸 어쩌고저쩌고……, 아 지구단위계획이란 건 어쩌고저쩌고……. 상대방이 제대로 이해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대부분 뜨악한 표정으로 말한다. “아……, 네…….”
그래서 자신이 하는 일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던 적이 있다. 보통은 전문직이나 자영업 종사자들이다. 의사입니다, 선생님이요, 아니면 식당 합니다, 카페 해요, 정도의 대답이면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해 추가 설명을 할 필요는 없다. 심지어 누구나 아는 대기업 종사자들도 그렇다. ○○전자 다닙니다, ○○자동차 다녀요, 면 끝이다.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물론 상대방에게 생소한 직업을 가지고 있어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만 할 수 있다면 아무 문제없다. 요컨대 문제는 설명하는 사람의 능력이다. 핵심만 추려서 간략하고 조리 있게 설명할 수 있으면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난 그런 능력이 부족하다. 무언가를 설명하려면 이런저런 군더더기가 많이 붙는다. 듣는 사람이 따라오기가 쉽지 않고, 때때로 나조차 내 설명에서 길을 잃기도 한다.
“무슨 소설인가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내 소설을 소개할 때, 또는 나를 소설 쓰는 작가라고 소개할 때 종종 듣는 질문이다. 멋지게 설명해서 내 소설을, 나라는 작가를 인상적으로 알려야 하건만, 그건 역시나 나에게 어렵다. 솔직히 질문의 의도부터 파악하는 게 쉽지 않다. 소설의 장르를 물어보는 건지, 아니면 소설의 줄거리를 물어보는 건지 고민된다. 그래서 보통 두 질문에 모두 답이 될 수 있는 얘기를 해준다. 그래서 설명이 길어진다. 하지만 장황하게 풀어놓은 내 설명을 상대방이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기 위해선 우선 나부터 내가 쓴 소설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우선 장르를 알아보자면, 소설 카테고리에는 꽤 다양한 장르가 있다. 일반, 공포, 미스터리, 역사, SF, 판타지, 로맨스, 청소년 등등. 이 중 내 소설은 아마도 ‘일반’이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일반은 ‘전체에 두루 해당되는 것’이라는 의미일 텐데, 달리 말하면 특정 장르로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소설이 여기에 속할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내 소설이 그렇긴 하다. 에둘러 말하면 보편적이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애매하고.
줄거리는, 이건 설명하기가 조금 골치 아프다. 지금까지 3권의 작품집을 통해 발표한 소설 21편의 줄거리는 모두 제각각이다.(당연하다!) 그래서 개별 소설의 줄거리를 말하는 건 쉽지 않고, 그래서 작품집 별로 공통으로 내포하는 테마에 대해 주로 설명한다. 하지만 이게 아무래도 조금은 두루뭉술할 수 있어서 상대방도 그냥 두루뭉술하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이러면 결과적으로 내 소설에 대한 인상이 그다지 강렬하지도, 선명하지도 않게 전달되곤 한다.
소설은 단순히 한 편을 완성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출간된 소설이 독자들에게 가닿아 많이 읽힐 수 있도록 전략적이고도 부단한 홍보가 필요하다. 나는 작가이자 제작자이고 판매자이기도 하기에 소설을 출간할 때 어떻게 내 책을 홍보하고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고 답을 마련해놓아야 한다. 지금까지는 부끄럽게도 그 고민이 느슨했고, 그래서 답은 엉성했다.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고, 답은 더 세련되어야 한다. 설명 능력이 부족한 나에겐 분명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해야만 하는, 아니 ‘열심히’ 그리고 ‘잘’ 해야만 하는 일인걸. 내가 선택한 일이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6월 말에 신간이 나온다. 이번 작품집에 수록된 소설들은 내용이 조금은 초현실적이고, 조금은 어둡다. 내 전작들과는 사뭇 다른 색채이다. 책을 설명할 때 분명 이러한 점이 제대로 부각되고 설득되어야 할 것이다. 왜 초현실적이고, 왜 어둡고, 왜 전작들과 다른 색채인지 상대방의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만들 설명이 필요하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벌써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건 나에게 주어진 숙제이다. 누가 대신해 줬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어림없는 바람이다.
설명을 잘하는 타고난 능력은 부족하다. 그래도 다행히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고민하는 건 나름 잘하는 것 같다. 그러니 이번에도 남은 시간 동안 부지런히 고민해보려 한다.(머리카락이 남아나야 할 텐데) 숙제를 잘 해내면 분명 보상도 달콤한 법이니까.
_2024.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