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북토크 행사에서 질문을 받았는데,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런 뉘앙스의 질문이었다.
"소설을 쓸 때 어디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아마 내가 처음 소설을 썼던 2020년에 매주 한 편씩 소설을 썼다고 하니 어디서 어떻게 영감을 받길래 그렇게 짧은 간격으로 소설을 쓸 수 있었냐는 취지의 질문이었던 것 같다. 난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답을 했다. 그때 당시 내가 매일 보고, 듣고, 겪고, 느낀 모든 것들에서 영감을 얻으려 했다고.
매일 보는 도시의 풍경, 자주 방문하는 카페나 술집의 분위기, 업무든 개인적으로든 만났던 사람들과의 시시콜콜한 대화, 짬짬이 읽었던 소설 속 인상 깊었던 문장, 출퇴근길에 들었던 음악까지. 그 모든 순간순간 뇌리에 떠오른 다양한 모양과, 크기와, 색채의 이미지는 하나하나 조각으로 만들어져 내 머릿속 가상의 글쓰기 서랍장에 카테고리별로 보관되었다.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서랍을 열고 조각을 꺼내 매주 한 편씩 소설을 썼다. 하나의 조각만으로 소설이 되었던 적도 있지만, 그보단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여러 조각이 이리저리 재조합되어 소설이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마치 서로 다른 크기와 색채의 다양한 조각이 모여 완성되는 커다란 모자이크 그림처럼.
내가 쓴 소설 중 몇 편을 예로 들어보면,
「여름밤의 꿈」은 LP바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녀의 대화가 주요 서사를 이루는 소설이다. 배경이 되는 곳은 내가 종종 가는 단골 LP바이다. 그곳의 이미지와 분위기를 좋아해 언젠가 한 번은 꼭 소설에 배경으로 사용해 보자고 벼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간 그곳에서 혼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는 여성을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영감이 떠올라 이야기를 구상해 나갔다. 소설 속 여성은 소설가를 꿈꾸며 퇴근 후 LP바에서 조금씩 소설을 쓰는 인물로 나오는데, 실제로 LP바에서 목격한 분은 무엇을 쓰고 있진 않았다. 아마도 당시 내가 일을 하며 소설을 썼기 때문에 그러한 나의 모습이 투영되었을 것이다. 소설의 제목이자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노래인 김현식의 <여름밤의 꿈>은 이전에 LP바에서 처음 들었던 노래였다. 멜로디나 가사가 인상적이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 소설에서 여성 주인공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부각하기 위해 소재로 사용하였다.
「I wish your love and peace」는 직장 동료와의 대화 중 영감을 받아 썼던 소설이다. 우리는 한여름의 매미 소리가 울창한 거리를 걸으며 이런저런 대화(대부분은 일하기 싫다는 내용)를 나누고 있었는데, 동료는 인생 살기 힘들다면서 자신의 중학교 시절 여름날의 추억을 들려주었다. 친구들과 학교 수돗가에서 물장난을 하고, 여름방학에 수영장을 함께 갔던 추억을 말하며 아무 걱정도 없던 그 시절이 제일 좋았다고 했다. 그 이야기는 나한테 꽤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그 이야기에 당시 내가 자주 가던 을지로 골목의 풍경, 평소 생각하던 직장 생활의 어려움 등을 덧붙여 한 편의 소설로 만들었다. 그리고 소설의 분위기에 맞춰 평소 즐겨 듣는 노래(페퍼톤스의 <love and peace>)를 소재로 넣었고, 그 노래의 가사가 제목이 되었다.
「멋진 하루」도 지인의 얘기에서 탄생한 소설이다. 그녀는 내게 동아리 선배가 곧 결혼하는데 동아리 동기인 전 남자친구도 결혼식에 분명 올 것 같아 결혼식에 가는 게 망설여진다는(그리고 짜증 난다는) 얘기를 했다. 난 만약 그녀가 결혼식을 간다면 어떻게 될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고, 꽤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상상력을 동원하고, 머릿속 서랍에서 이런저런 조각들을 꺼내 이리저리 조합하고 다듬으며 소설을 써나갔다. 결국 소설은 결혼식에 참석은 했지만 타인의 눈치를 신경 쓰며 전전긍긍하던 인물이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을 겪은 후 자신의 삶을 주체적이고 당당하게 즐기기를 결심하는 이야기로 완성되었다. 소설의 영감을 준 당사자에게 소설로 써도 되는지 허락은 받지 않았는데, 완성된 소설을 읽은 당사자가 아직 별다른 의의나 불만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최근엔(아마도 작년부터) 하나의 테마를 정한 뒤 그에 맞춰 여러 편의 소설을 쓰고 있다. 이전보다 분량도 늘어서 본격적으로 쓰기 전 이야기 구상에 훨씬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전처럼 순간적이고 즉흥적인 영감으로 소설을 시작하는 경우는 거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가끔 그립다. 일상의 소소하면서도 반짝이는 순간에서 영감을 받아 짧게 짧게 소설을 썼던 경험이. 물론 그런 소설은 서사보다는 분위기와 이미지에 너무 치우치기도 했지만, 그렇게 소설을 쓸 때만 느낄 수 있는 재미가 분명 있다. 제대로 차려 먹는 일품요리도 좋지만, 가끔은 간단하게 끓여 먹는 라면이 그 어떤 요리보다 맛있기도 한 법이다.
올해는 이미 정해 놓은 목표가 있어 짧은 호흡으로 소설을 쓰기는 어렵고, 내년부터는 다시 일상의 순간을 소재로 한 길지 않은 소설을 매주 한 편씩 써보려 한다. 그러기 위해 지금부터 부지런히 영감의 조각들을 모아 서랍에 차곡차곡 채워놓아야겠다. 겨울을 대비해 도토리를 가득 모아놓는 다람쥐처럼 말이다.
_2024.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