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면 어떤 느낌일까? 마치 운동선수가 금메달을 딸 때처럼 도파민이 터지는 모습이겠지. 한참 꿈을 꾸던 시절에 그런 생각을 했다. 아직 금메달을 따보지도 못했기에 그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에 대해서는 생각도 못했다.
나는 지금 오랫동안 꿈꿨던 일을 하고 있다. 꿈을 이룬거다. 살면서 작은 성공을 많이 해봤지만, 그 성공들은 오랜 시간과 마음을 들이지 않아서인가, 꿈을 이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데, 이 일은 다르다. 중학생때부터 하고싶었던 일을 하게 되었으니 10년 이상이 걸렸다. 대단한 성공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꿈을 꿀때는 상상도 못한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한동안은 정말 행복했다. 매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돈도 받기 때문이었다. 그게 가능한 일이었구나. 물론 일이기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이 일을 하는 동안 행복하고 만족스러웠다. 그때 체감했다. 꿈을 이루고 난 뒤의 삶에 대해. 잔잔한 행복이 계속되고 마음이 배부른 만족스러운 삶이구나. 생각보다 잔잔했다. 누려보고 나니 알 것 같다. 질이 높은 행복이 무엇인지 말이다. 음식도 전자제품도 한번 좋은 걸 맛보고 나면 다시 그 아래로 내려갈 수 없듯 이제 행복도 그렇게 되었다. 그러고보면 사람도 그런 것 같다. 30년 가까이 다양한 집단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니 알겠다. 정말 좋은 관계는 순간적으로 도파민을 가져다주는, 그래서 온 몸이 방전된 채로 집에돌아와 휴대폰으로 그 순간들의 사진을 보다가 잠드는 만남보다 더 잔잔하다. 도파민이 크게 터지지 않더라도 우리의 오래된 관계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신뢰와 사랑이 가져다 주는 행복이 느껴진다. 그런 관계에서는 나를 마음껏 보여주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만남을 한 번 갖고나면 한동안은 나를 다시 찾은 듯한 느낌이 든다. 나는 사실 그런 관계 때문에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
그렇게 꿈을 이룬지 2년이 되어가는 어느 날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장기하님의 콘서트를 보러가게 되었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해체한 이후로 5년만에 다시 듣는 라이브였다. 노래를 듣다보니 첫 콘서트를 보던 때가 떠올랐다. 21살때였다. 한참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때였다. 현실적으로 미래가 보여지는 길을 선택할지 내가 가고 싶은 길을 선택할지 말이다. 그러다 간 공연에서 에너지를 얻었다. 그래서 꿈을 향해 걷는 길을 선택하기로 다짐하며 걸어가던 부산대 거리가 생각났다. 그때를 떠올려보니 지금의 내 모습이 말도 안되게 느껴졌다. 인생에서는 막연해서 상상도 못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하는구나. 익숙해진 지금을 그때의 나에게서 다시보니 그게 체감이 되었다.
사실 나는 요즘 권태기에 빠져있다. 꿈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지금의 모습을 꿈 꿀때도 그 다음 단계, 그 다음 단계들을 꿈꿔왔던게 있었다. 그리고 내 인생의 다른 분야에서도 이루고 싶은 꿈들이 있다. 그런데 요즘 그 꿈들을 향해 걷고 있는 걸음을 멈춘 것 같달까.
꿈이 여러가지기에 이유도 여러가지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너무 바쁘고, 많은 만남을 가지느라 에너지를 뺏긴 경우가 있다. 외부에서 관심가져달라고 아우성 치는 것에 다 반응해주다 보니까 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여유가 없다. 그 여유가 있어야 꿈의 목소리에 따라 걸음을 내딛을 것 아닌가. 그래서 잠시 멈춰진 꿈이 있다. 어떤 것은 매일 방법을 고민하고 이런 저런 시도도 하고 있는데 답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제 현실과 얼만큼 타협해야 하는 걸까. 그래서 지쳐 걸음이 느려지고 있는 꿈이 있다. 이런 이유들로 요즘 나의 삶이 그냥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시간을 지켜보자니 불만족스러운데 힘은 나질 않는 그런 상태였다. 전에 비해 나는 삶을 흘러보내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생각에 빠져있을때 장기하님이 마지막 곡을 불렀다. '달이 차오른다, 가자'
첫 소절을 듣는 순간 마치 그 생각의 답은 이것이라는 계시를 받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곡은 내가 꿈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때 제일 자주 들었던 곡이기 때문이다. 그 곡의 가사처럼, 그때의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어둔 밤이면 계속 앉아서 달을 쳐다보았었다. 하지만 얼마나 막연하고 두려운 여정인가. 이렇게 이뤄질거란걸 그때는 몰랐으니 매일 밤마다 달만 물끄러미 바라보다 잠들어버렸었다. 이렇게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장기하님이 매번 이제는 가야할 때라고 깨워주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노래를 따라부르며 8년전 막연함이 현실이 된 지금을 다시한번 체감한다. 그리고 번잡함에서 눈을 들어 달을 쳐다본다. 이제는 멈출까 느려졌던 걸음에도 다시 속도를 낸다. 달이 차오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