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어느 날, 펀딩을 시작했다. 시작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2년 전부터 내가 찍은 사진과 좋은 글을 가지고 달력을 만들었는데, 올해는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팔아보자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다른 하나로는 올해를 이대로 보내기 아쉬웠던 게 있다. 올해 이직 준비하고 입사한다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은 한 달을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함으로써 의미 있게 마무리 짓고 싶었다. 꽤 큰 일을 꾸며보는 것이지만 주변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 펀딩금이 채워졌을 때 알리고 싶었다. 물론 있어보이기 위해서다. 나와 관련 없는 사람이 얼만큼 내 작품을 좋아해 줄지도 궁금했었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비밀스럽게 펀딩을 오픈하기로 했다.
달력이었기 때문에 1월 초 전에는 펀딩을 성공시켜야 하는데, 나는 12월 초에서야 펀딩을 시작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라 일정이 굉장히 타이트했다. 준비 없이 너무 급하게 시작하는 게 무모한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도 나는 무모한 도전보다 의미 없이 흘려보내는 시간이 더 싫었다. 20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급함 때문이기도 했다. 20대의 시간이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젊고 자유로워 해보고 싶은 거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간이다. 물론 30대에도 그런 시간은 여전히 주어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만큼 보장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른이 될수록 책임이 늘어나기 마련이며, 알 수 없는 우리 인생, 당장 내일 어떤 제약이 주어질지 모르니까.
오픈 날짜를 정해두고 이틀 전에 예약 알림을 받았다. 그것은 펀딩 사이트에 썸네일이 노출되어 있는 것을 보고 관심 있는 사람들이 오픈 날 알림을 받기로 신청을 하는 것이다. 펀딩 성공 후기에서 이 알림 신청이 많이 되어있으면 노출이 더 많이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동생에게만 따로 홍보를 부탁했다. 동생의 지인들이 많이 유입된 것인지 아니면 내 썸네일이 매력적이어서였는지 열댓 명의 사람들이 알림 신청을 했었다. 처음으로 나와 관련 없는 사람들이 내 작품에 대해 반응해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었다. 어쩐지 이 배가 순탄히 성공까지 이르게 될 것만 같았다.
이틀 후 오픈하고도 하트와 공유 횟수는 어느 정도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후원을 안 했다. 내 달력과 엽서 정말 예쁜데 상세페이지에서는 그게 보이지 않는 걸까? 그래서 성공한 프로젝트의 상세페이지를 분석하면서 며칠 동안 다양하게 구성해봤다. 그래도 여전히 무소식이었다. 어쩌면 너무 아무도 후원을 안 해서 더 꺼려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좋은 물건을 발견했는데 후기나 좋아요가 없으면 의심이 들면서 섣불리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실패의 요인이라 생각해 결국 아주 가까운 친구들에게 부탁을 했다. 5명이 후원을 해줬다. 펀딩 성공 금액에 비해서는 적은 퍼센트이긴 하나 그래도 누군가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를 보여주고 있으니 이제 의심이 갔던 분들도 조금 더 용기를 내어 후원해줄 수 있겠지. 그런 기대를 안고 매일 들어간 내 펀딩 사이트에는 늘 숫자 ‘5명’만이 손을 흔들며 나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매일 실패를 맞닥뜨리는 경험을 했다. 그것은 마치 엄마가 쓴 감기약을 먹여주듯이, 매일 아침 펀딩 사이트를 볼 때마다 입을 벌려 실패를 떠먹임 받고, 하루 종일 그것을 꾸역꾸역 넘기는 일이었다.
그 무렵이었다. 경연 프로그램 ‘싱어게인2’에 내가 너무 좋아하는 ‘윤덕원’님이 나오셨다. 윤덕원님은 정글 같은 음악세계에서 초식동물로써 생존을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해왔지만 현실에 줄곧 매몰되는 듯했고, 계속 도망치고 안전한 곳에 머무르려고만 한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초식동물이지만 정글에 발을 내디뎌보고 싶어서 참가했다고 했다. 윤덕원 님은 결국 탈락하셨지만 심사위원들은 그의 용기에 큰 응원을 보냈다. 그 후에 윤덕원 님은 인스타에 이렇게 글을 올리셨다. 어떻게 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도전해봤어야 했다는 후회보다 나은 것 같다며, 이번 도전을 통해 좀 더 잘 실패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말이다. 나는 그 글에 댓글을 달았다. '... 덕원님도 저도 무궁무진한 도전과 성장으로'라고 입력하고 마지막에 어떻게 마무리할지 한참 고민하다 이렇게 적었다. '.. 아름답게 살아가요.'. 실패한다는 것은 도전한다는 것이고, 도전한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며, 살아있다는 것은 아름답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인칭 단수'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한참 나중의 일이다. 그에 이르기까지, 1968년부터 1977년까지 십 년 동안, 나는 실로 방대한, (기분상으로는) 거의 천문학적 횟수의 '지는 경기'를 지켜봐 왔다. 다시 말해 '오늘도 또 졌네'라는 것이 세상의 이치로 여겨지도록 내 몸을 서서히 길들여갔다는 소리다. ... 잠수부가 오랫동안 주의 깊게, 수압에 몸을 길들이듯이. 그렇다. 인생은 이기는 때보다 지는 때가 더 많다.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지혜는 '어떻게 상대를 이기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잘 지는가'하는 데서 나온다.'
그의 말이 맞다. 우리는 웬만해서 실패할 것이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의미 있는 삶을 살려고 하면 할수록 말이다. 하지만 실패를 겪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볼 수가 없는 것 같다. 실패하면 어쩼든 무언가 하나를 배우는데, 그것은 실패하지 않았다면 알기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정상이 너무 멀고 어떻게 가야 할지 아득하지만, 실패를 겪으며 알게 되는 방향을 따라 한 걸음씩 걷다 보면 어느 날 눈을 들었을 때 조금 더 가까워져 보인다. 그러니 기꺼이 실패를 겪으며 익숙해지는 태도와 실패 후 배울 점들을 잘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펀딩은 이렇게 실패로 마무리되는 줄 알았다. 매일 실패의 감정을 맛보며 이렇게 묵상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것도 의미 있었다고 생각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중간에 지인들에게 오픈 후 많은 응원과 후원을 받았고, 끝나기 며칠 전 내가 모르는 사람들도 한꺼번에 후원을 하였다. 결국 주변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성공하게 되었고 남은 정산금을 후원함으로써 아름답게 도전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사실 처음 목표에 비하면 실패에 가까운 성공이었다. 그리고 중간에 지인들에게 오픈하는 과정에서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질까 봐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다. 3주간의 시간 동안 정신과 감정의 소모가 참 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전하길 잘했다란 생각이 든다. 그동안 내 작품을 팔아보고 싶단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 경험으로 어떤 것이 부족하고 또 필요한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원함으로써 의미 있는 일을 했던 것도 그렇다.
몇 달 후 봄에 콘서트 장에서 만난 윤덕원 님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싱어게인 1라운드에서 탈락한 윤덕원입니다." 그 말의 운율에서 실패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느껴졌다. 실패를 가볍고 유쾌하게 대하는 태도 말이다. 그 음정에서 당연히 실패할 수도 있고, 앞으로도 실패해보려고 한다라는 말이 들리는 듯했다. 그에게서 실패에 대한 마음가짐의 운율을 배운다. 그는 그 운율로 앞으로도 실패를 노래할 것이다. 그의 운율로 나도 계속해서 실패를 노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