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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다 Feb 13. 2023

찬실이는 복도 많지

저녁에 TV에서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막 시작하고 있었다. 마침 전부터 보고 싶었어서 집중해서 봤다. 이 영화의 주인공 찬실은 사람을 잃고 실직하고 오랜 꿈을 내려놓으려고 한다. 그렇게 초라한 날들만 계속되는 듯하지만 찬실의 곁에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찬실을 진심으로 아껴주는 사람들 말이다. 그들 덕분에 찬실은 많은 것을 잃은 듯했으나 사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던 것들을 발견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취향들과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시간. 찬실의 삶이 그것들과 계속됨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끝난다.


영화가 끝난 후 엄마와 아빠가 쓰레기 정리를 하려고 마당으로 나갔다. 나도 잠시 나갔다가 씻으려고 들어왔는데 엄마가 불렀다. 내가 좋아하는 아기고양이가 나왔다고 말이다. 아기고양이는 얼마 전부터 우리 집 주변에서 눈에 띄던 고양이다. 나는 쓰레기 정리를 도우면서 아기고양이와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다. 그날 ‘꼬망이’라고 이름도 지어줬다. 꼬망이가 놀다 숨어버리고 엄마와 아빠는 쓰레기 정리에 박차를 가하면서 우리는 새벽공기를 마셨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한참 떠들고 웃다가 집에 들어왔다.


사실 영화를 본 직후에는 찬실이의 ‘복’이 잘 해석이 안 되었다. 마지막에 ‘복’을 대표할만한 극적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쓰레기 정리를 하고 집에 들어왔을 때 그 ‘복’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건 내가 방금 보낸 시간이었다. 그러면 나도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 나의 사랑하는 것들과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고마워하기를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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