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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다 Sep 30. 2023

여름 (上)

여름이었다. 나는 s에게 연락을 했다. 공연을 보러 가자고 말이다. 우리는 그 무렵 만나 알게 된 사이었고 그가 나를 싫어하거나 불편해하지 않기 때문에 진짜 일이 생긴 게 아니면 응해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 s를 많이 알고 있는 상태는 아니었기에 나에겐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의 경우의 수가 많이 없어서 조금 긴장되었었다. 다행히 그는 응해주었다.


그 공연은 그 무렵 우리가 한창 이야기했던 밴드의 공연이었다. 나는 그 밴드를 좋아하던 3년 동안 그 밴드를 좋아하는 건 고사하고 관심 있는 사람조차 만나볼 수 없었는데, s가 나타났다. 그 밴드의 이야기를 꺼낸 사람이 내가 아닌 경우는 s가 처음이었고 새로 나온 곡을 들으며 의견을 주고받은 것도 처음이었다. 그는 그 밴드와 같은 결의 음악을 좋아했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음악의 결을 함께 만지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늘 만져보라고 권했었지 함께 만지던 사람은 그가 처음이어서 기뻤다. 우리는 많은 부분이 다른 듯했으나 그 시간 속에서는 꼭 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한 사람의 뇌에서 다른 생각이 대립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공유하는 세계는 같았던 것 같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s가 여자가 아니여서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s가 여자였으면 우리는 절친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당신을 만나는 것에 숨겨진 목적이 있는 게 아닙니다’를 설명하는 것은 다른 이성과의 관계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나이 차가 나면 더 그렇다. 그렇다면 가까운 공간이거나 무리 안에 속했기 때문에 생기는 의도하지 않은 어울림의 시간이 있으면 좋은데, 아쉽게도 s와는 그런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럴 때면 합당한 이유가 있는 연락과 만남이어야 한다. 이 공연은 아주 알맞은 이유였다. s는 자신이 내가 이 밴드의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내가 같이 보러 가자고 했을 때 그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숨겨진 목적을 가졌었다. 그것은 어느 날 s가 내 말을 모조리 기억해준 탓이다.


그 공연은 바다에서 했다. 나는 모래를 푹푹 밟으며 노래가 들리는 곳으로 갔다. 사람들은 이미 많이 모여 있었고 나는 카메라들이 모여 있는 곳 뒤에 섰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덜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밴드 공연이 끝이 나고 우리의 밴드가 올라왔다. s는 오고 있는 걸까 생각이 들다가 느낌이 이상해 뒤를 돌아보니 s가 나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노래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기에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다시 앞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 후의 시간은 지금 생각해보면 낭만적이지만, 그 당시에는 불편함이 컸었다. 그것은 우리의 밴드가 얌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적이고 감상적인 노래를 부르는 밴드였다면 그날 바다와 모래와 하늘과 바람, 그리고 내 옆의 사람, 그 모든 것들을 북돋아 주는 노래를 깊이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조금 더 마음이 동그랗고 몰랑거렸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겠지. 하지만 우리의 밴드는 분출해 줘야 했다. 나는 노래를 들으며 8개월 전 뛰던 나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고 있는 옆의 사람들을 보았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밴드와 s를 공평하게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민이 아주 많이 되었다. 하지만 역시 아직 살짝 어색한 사람 옆에서는 조심스러워진다. 하지만 노래가 너무 좋다. 결국 가만히 있었지만, 공연 내내 밴드와 s의 존재감을 동시에 느끼고 반응하느라 힘들었다.


그렇게 공연이 끝나고, 무리와 함께 바다를 빠져나오던 우리에겐 어색한 기운이 흘렀다. 공연을 다 봤기 때문이다. 애초에 우리가 만난 이유는 공연을 같이 보기 위해서다. 우리는 목적을 달성했고 헤어지는 게 합당하다. 하지만 마침 저녁 먹기 좋은 시간이었다. 각자의 식당으로 빠져나가는 무리를 바라보며 우리는 어색하게 걸었다. 그 와중에 더 어색하지만 토론도 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의견을 주고받다 s가 “음 그럴 수도 있겠네.” 라고 말하면서 끝이 났다. 그리고 s가 이어서 말했다. “저녁 먹을까? 내가 오면서 봐둔 식당이 있거든.” 나는 다른 목적이 있었지만, s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었다. 그를 내 인생에서 오랫동안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s가 헤어지자고 하면 깔끔히 떠날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 그런데 먼저 같이 더 시간을 보내자고 얘기해주다니, 그것도 공연 오기 전부터 생각했었다니. 나는 식당을 향해 걸어가면서 마음을 숨기느라 힘이 들었다.


식당에 도착해 앉았다. 어쩐지 그 시간은 그날 우리가 지나왔던 그리고 지나갈 시간 중에 가장 어색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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