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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다 Aug 21. 2023

나를 만들어준 사람들

어렸을 때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우리 집에는 엄마가 가져온 어린이 책이 많았기 때문에 읽을 책이 넘쳐났었다. 그래서 정복하는 느낌으로 읽어가곤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했던 책은 세계 명작동화 전집이었다. 심심할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읽었다. 전집을 거의 다 읽어갈 때쯤에는 재밌게 읽었던 앞의 이야기를 다시 읽었다. 워낙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에 끝 번호 책을 읽다 보면 앞번호 책의 내용이 아련해지기 때문이었다. 『작은 아씨들』, 『비밀의 화원』, 『집 없는 소녀』가 좋아해서 다시 읽었던 책들이다.


그랬던 내가 12살에 어떤 책을 만나게 된다. 바로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인데, 거의 처음으로 접했던 어른의 책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어른의 책의 신선함에 반하게 된다. 그래서 같은 저자 미치 앨봄의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를 찾아 읽었다. 그 책은 심지어 앞의 책보다 더 좋았다. 감명을 받은 나는 그 책에 나오는 좋은 구절들을 노트에 적기도 했다. 그 책은 자기계발서 책이었기 때문에 그 후로 자기계발서를 읽기 시작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책 읽기는 계속되었다. 나는 도서관의 제일 끝에 있는 자기계발서 코너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코너의 책에서 고른 자기계발서 책을 한 권 가지고 나와서 사서 선생님께 대출증과 함께 내밀었다. 그때 사서 선생님이 책을 빌려주시면서 말씀하셨다.

“넌 왜 자기계발서만 읽니?”

그것이 그 선생님과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도서관에 올 때마다 자기계발서가 아닌 다른 책을 추천해주셨다. 어떤 날에는 책을 마침 다 읽으시고 너무 좋았다며 바로 나에게 추천해 주시기도 했다.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책들은 나도 너무 재밌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이런 장르의 책들을 찾아서 읽기도 했다.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선생님과 책을 공유했다.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책들은 주로 명작소설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어린이용으로 짧게 읽은 이야기를 원작으로 보기도 했다. 그래서 그때 내가 사랑하는 『빨간 머리 앤』을 전집으로 읽었다. 앤이 대학에 가고, 길버트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의 이야기까지 모두 말이다. 그 외에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 『나니아 연대기』가 그 시절 정말 좋아했던 책들이다. 나는 이런 장르의 책들이 가진 따뜻한 세계관이 좋았다. 그리고 나도 이런 가치관으로 살아가고자 했다. 정말로 이때 읽었던 책은 내 정신세계의 반 정도를 이루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에도 그랬다. 이 책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래서 사서 선생님께 감사 편지를 썼다. 선생님은 이렇게 답장을 하셨다.

‘주은이의 편지가, 사서로서 제일의 보람인 상장 같은 거구나.’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어떤 책을 계속 읽어왔을지, 그 책들은 나를 또 어떤 사람으로 만들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면 그때 그 책들로 만들어진 가치관의 선택들로 지금의 내가 되었듯, 다른 책들은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게 했을 것 같다.


대학생 때도 이런 일이 있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예능 보는 것을 정말 좋아해서 방송에 관심이 많았다. 또 내가 중학생 때 관심 있어서 잠깐 영상 편집을 배웠었는데, 그 당시에는 편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어서 UCC 만드는 과제가 생기면 모두 내 담당이 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영상 편집에도 흥미가 생겼다. 그래서 부전공으로 영상을 선택했었다. 처음 부전공 수강 신청을 할 때 전에 교양수업으로 들었던 미디어 강의가 좋았던 기억이 있어서 그 교수님 강의를 선택했는데, 그 후로 전에 들었던 교양강의와 합쳐서 그 교수님 강의만 5개를 들었다. 다 교수님 강의가 재밌었던 탓이다. 교수님은 영상 중에서도 영화를 가르치셨다. 그래서 방송이나 영상 편집 수업을 들을 줄 알았던 나는 어쩌다 보니 영화 강의만 엄청나게 들었다. 교수님이 나를 영화의 세계로 들어오게 해주신 거다.


내가 특히 재밌게 들었던 강의는 ‘영화감독론’, ‘장르영화론’, ‘한국영화사’였다. ‘영화감독론’은 영화감독의 영화들을 보며 그 감독의 표현방식이나 세계관을 분석하는 강의였다. ‘장르영화론’은 소극장 강의실에서 각 장르의 영화 중 대표작들을 줄거리 파악 식으로 짧게 보면서 각 장르의 특징을 알아가는 강의였다. 마지막으로 ‘한국영화사’는 한국 영화가 시작했던 때부터 그 시대들의 경제, 사회, 문화적 특징을 공부하고 그 시대에 나온 영화가 그것들을 어떻게 반영했는지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대학 시절을 돌이켜 보면 빛나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런 영화 수업을 들을 때였다. 그 수업을 듣던 순간들이 진짜 행복했었다.


내가 ‘영화감독론’을 들을 때였다. 이 강의가 끝났을 때가 마침 친구와 점심을 먹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매시간 강의에 감명을 받았던 나는 친구와 만나면 강의에서 들었던 내용을 허겁지겁 이야기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저번 주에 얘기했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이야기 기억나지? 오늘 그 감독의 표현방식에 대해 들었는데 그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이런 장면들이 사실 … ’

어느 날 친구는 그 시간을 회상하며 편지에 이렇게 썼다.

‘네가 눈을 반짝이며 영화 얘기, 감독 얘기해 주는 거 듣고 있으면 정말 관심 분야를 찾아갔구나 싶어서 나까지 기분이 좋고 또 대단하다고 늘 느낀단다.’

편지 글을 읽으며 내가 정말 그 수업들을 좋아했었다는 것을 알았다.  


대학 시절 영화의 세계를 공부했던 것은 내게 좋은 영향을 많이 주었다. 신선한 질문들을 던지고, 예술적인 표현을 하고, 깊이 있는 고찰을 하는 영화의 세계는 내 사고능력을 전보다 성장할 수 있게 했다. 덕분에 한참 공부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미래를 고민하던 시기에, 더 깊은 사유를 할 수 있게 했다. 그렇게 길러진 사유의 힘은 내 삶에 계속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사서 선생님과 교수님은 그렇게 나의 성장에 큰 영향을 주셨다. 두 분은 나를 이렇게 만들려고 일부러 노력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그들이 사랑하는 것에 열정을 다하고 있었는데, 주변에 있던 주파수가 맞는 내가 그 열정에 감염되어 버렸던 거다. 그들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나의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열정을 감염시킬 수 있을까? 그래서 내가 성장하는 데 좋은 영향을 끼쳤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그런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어쩌면 사서 선생님과 교수님만큼의 열정을 가지고 있어야만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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