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수도에서 오래 산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그녀도 기차역들에 제각각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기차역은 황홀한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관문이다. 우리는 기차역을 통해서 모험과 햇빛 속으로 나아갔다가, 슬프게도 다시 돌아온다. (...) 런던 사람으로 기차역들에 대해 어떤 인간적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자, 그 감정이 미약하게나마 두려움이나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는 자는 아주 냉담한 사람이리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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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 M. 포스터, <하워즈 엔드>
그런 관점에서 나는 아주 따듯한 면이 있는 사람이다. 기차역이 시사하는 바는 아마 여행일 것이다. 여행기의 시작점이자 경유지이자 도착점이 될 그곳을 나는 매우 좋아한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을 보았을 때 기차역의 의미는 현재의 공항 정도의 무게를 지닌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기차역이든 공항이든, 아무튼 나는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을 좋아한다. 딱히 뭔가를 하는 게 아니지만, 딱히 뭔가를 하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 그 장소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실제로 나는 비행기 이륙 3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한다. 당연히 딱히 뭔가를 하지 않고 그저 마구 헤집고 다닌다. 나올 것이 없어도 화장실에 들르고 책을 이미 가져왔어도 서점에 들르고 배고프지 않아도 공차에 들러 망고스무디에 알로에 펄 추가를 외친다. 그리곤 이륙하는 혹은 착륙하는 비행기가 잘 보이는 곳에 앉아 알로에펄을 추가한 망고스무디를 살금살금 마시는 것이다. 쭉 훑어보고 있으면 사람들도 한두 명을 유심히 보게 되는데, 하나 같이 모두 홀가분한 표정을 하고 있다. 공항 밖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그것들이 공항에 모여 있는 것을 보면 행복한 사람들만 공항에 오는 것인지, 공항에 오면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인지 생각한다. 모든 수속을 마친 채 쾌적한 곳에서 시원한 음료를 들이키며 아무 생각이나 하는 것이다. 월세나 생활비 따위의 생계문제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을 보며 나롤로 갑을논박을 벌이는 일은 녹록지 않은 일상에선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일상으로부터의 해방이 시작된다는 것 혹은 일상으로 무사히 회기 했다는 사실이 주는 묘한 해방감과 안도감이 서려있는 그곳을 나는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