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해서 얻은 것이 이 정도뿐이라는 걸"

번아웃의 자각

by 정주구


노력에서 얻은 게 이 정도뿐이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듯이.
가만히 있는데 예상치 못한 명품 가방이 떨어질지도 모를 일이죠.
어차피 이상한 세상인데, 한 번쯤 낮은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보는 것, 이것이 저의 오늘에겐 마땅한 명분입니다.

드로잉


"나는 명품백을 좋아합니다. 근데 그거 하나밖에 없어요"
"그게 뭐"
"갖고 싶은 것과 갖고 싶은 것을 갖고 있는 것의 차이,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해, 그 욕망을 자양분 삼아 열심히 일했는데 고작 그거 하나예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죠?"
"세상이 너무 이상해. 이번엔 가만히 있어보겠어요"
"그래서 가만히 있겠다는 게, 그 말이 더 이상해"
"노력에서 얻은 게 이 정도뿐이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듯이. 가만히 있는데 예상치 못한 명품 가방이 떨어질지도 모를 일이죠. 어차피 이상한 세상인데, 한 번쯤 낮은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보는 것, 이것이 저의 오늘에겐 마땅한 명분입니다."
"존재하는 가능성이 아닌 거 같은데. 하늘에서 떨어진다고? 가만히 있는데? 뚝?
"뚝 떨어지든. 띵 떨어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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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가 체질 中]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하고 읍소를 하던 여자 주인공은 이내 '가만히 있기'를 택한다.

그리고 그 '가만히 있기'의 명분을 묻자, 위의 내용으로 대답한다.

어차피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어지러운 세상이니 가만히 있다가 하늘에서 뚝

하고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필자의 요즘을 얘기하자면(안 궁금해도 들어주시길),

잠에 편히 들 수도, 어쩌다 잠들면 개운하게 일어날 수도, 그러다 회사를 가면 쌓여있는 일에 헤엄치고,

능동적인 휴식을 위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려는데, 그마저도 일처럼 느껴져서 놓아버리고, 영화를 보려고 자리를 고쳐 앉으면 대부분의 장르를 내적으로 거부하여, 2분 이상 보지 못한다. 블록버스터, 잔잔한 일본 영화, 뻔하고 사랑스러운 90년대 서양 영화, 평소에 안 보던 한국 영화 등등 심심풀이 땅콩인 예능이나 심지어 유튜브조차.


이 상태가 꽤 오래 지속된 것 같은데,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괴롭다.

옛날에 고등학교 다니던 때를 생각해 보자(안 궁금해도 상상해 주시길).

약 1시간 30분 정도 되는 각 교시 사이마다 있던 짧은 10분 쉬는 시간들.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나?

아마 대부분의 학생들에겐 아니었을 것이다. 그 10분 쉬는 시간에 제대로 쉬었다면, 강의 시간이나 자습 시간에 조는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우등생은 지나가 주시길).

말 그대로 10분 쉬는 시간은 다음 교시를 듣기 위해 자리를 정리하고, 화장실을 갔다 오는 시간 정도이며 가끔 다음 교시 선생님이 늦게 들어오시길 바라며 5분 정도 허리디스크 유발 자세로 쪽잠을 자는 정도가 될 것이다.


위의 상태가 필자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일이 '10분 쉬는 시간'을 텀으로 이루어지고 다음 교시 선생님이 늦게 들어오길 바라며 엎드리는 순간,

웬걸, 내 생활 속 선생님은 너무 성실해서 적어도 3분은 일찍 수업에 들어오신다.

쉽게 다시 말해서, 못 쉰다는 얘기다.


스스로를 그런 상황으로 내몰며 했던 일은

일이다. 회사 일

그렇게 노력해서 얻은 것은 '승진'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들인 노력과 시간에 비해 대가가 적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괴롭고 그렇다.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다신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니 최선을 다하자' 류의 버거울 때마다 생각했던 명언들이 치사하게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먹지 않은 자, 일하지도 말라' 같은 말은 없지 않은 가. 이 세상의 대부분의 명언들은 세계의 보이지 않은 검은손에 의해 만들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의 검은손들이 굳이 왜? 이유는 간단하다.

필자처럼 바보같이 열심히 일 하려는 개미를 보존하여 세계 개미 질량 보존의 법칙을 만들기 위함이다. 개미들에게 명언이 최소 지푸라기로써 작용한다는 점을 야비하게 이용하여.



그렇게 일을 하고, 내 마음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는 시간들을 보내다가

저 대화를 듣고, 어 이거 내 얘긴데 했다.

멜로가 체질은 좋은 드라마인 게, 가끔 나도 모르는 내 상태나 심리를 말해준다.

조언을 주는 드라마는 확실히 아니고 자각을 하게 한다.

나는 조언보다 자각이 먼저라고 여기는데, 그걸 도와준다.

스스로 어떤 상태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금 알겠다.


이 글에서 뭐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 말할 수는 없다.

필자는 그저 오늘 본인의 상태를 자각했고, 이제 해결법을 찾아볼 것이다.


나의 자각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오늘도 찝찝한 잠을 급하게 재촉해보려 한다.




[작년 이맘때 어느 어지러운 평일 밤에 쓴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