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물건들에 둘러싸여있다. 꼭 필요해서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 있는 반면 필요하지 않지만 가지고 있는 물건들도 많다.
대게 이런 물건들은 안 쪽에 꼭꼭 숨어있다. 선반 안이나 팬트리 안을 들여다보면 이런 물건들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낯선 물건들이 있다. 빵부스러기가 쌓인 토스터기, 1년에 한 번도 쓰지 않는 깔때기, 김치 보관용으로 산 대형 유리용기 등등. 하나같이 사용한 지 오래되어 뿌연 먼지가 희미하게 덮여있다.
팬트리를 보면 더 다양한 상품군이 함께다. 뜯지도 않은 새 상품 그대로의 해충제거제, 사진을 인화하면 담으려는 사진첩 두 개, 언젠간 달아야지 하고 남겨둔 파라솔에 솔장식까지. 처음 곁에 온 모습 그대로 화석화되고 있는 새 상품들이다.
또 신발장 찬장에 공구용품에는 가전제품들의 사용설명서와 보조부품들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다. 이 많은 사용설명서 중에 찾아본 적은 딱 한 번으로 기억한다. 그것도 에어프라이어 처음 개봉하고 청소방법을 찾아볼 때 딱 한 번이었다. 그 뒤로 더는 들여다본 적 없다. 나머지들도 모두 마찬가지 신세다. 진지하게 쓰지도 않을 거란 걸 알면서 왜 버리지 못하는 걸까?라고 물어보면 답은 뻔하다. 언젠가 쓸지도 모른다는 개미 다리만큼 희미한 가능성 때문이라는 것을.
실제로 언젠가 쓸지도 모르기에 남겨둔 여분의 선물 포장지와 포장 리본은 다음번 생일날 잘 쓰게 된다. 언젠가 반드시 찾아오는 생일날 같이 1년에 한 번은 꼭 쓰게 되는 실용적인 물건이 아니고서야 그 언제가 언제가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물론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 중에 특별한 물건들도 존재한다. 바로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다.
오랫동안 함께하던 오디오가 있었다. 신혼 초 미니멀라이프를 입문하게 되면서 식탁을 추가로 사는 대신 이케아 테이블을 책상 겸 식탁으로 쓰기로 했다. 특별한 한 두개를 제외한 가전 가구에 돈을 들이지 않기로했지만 오디오만큼은 좋은 것을 사고 싶었다. 음질도 좋고 디자인 적으로도 예쁜 야마하 오디오가 눈에 쏙 들어왔다. 13평 작은 집의 단출한 테이블이었지만 이 오디오 하나만으로 하루의 만족감은 올라갔다. 오롯이 나를 위한 나만의 취향이 반영된 첫 가전제품으로 의미가 깊었다. 텅 빈 집에서 버튼을 누르고 흘러나오는 음악은 감미롭고 부드럽게 내면을 채워주었다. 나와 남편의 노래 취향으로 가득 흐르던 오디오는 어느덧 아이 둘이 태어나면서 아이들의 취향까지 더해갔다. 평일 낮에는 내가 좋아하는 감성 팝송, 오후에는 아이들을 위한 동요, 주말 낮에는 남편이 좋아하는 발라드까지. 이사를 하고 어디를 가든 우리 식구와 함께였다.
그러다 작년부터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생의 끝에 나타나는 징후였으리라. 점점 버튼 반응 속도가 느려지더니 언젠가부터 아예 전원이 켜지지 않았다. 그 지연의 간격이 늘어나면서 오디오는 생과 거리 뛰우기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가끔 켜지기라도 하면 오디오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대타로 들인 플레이어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소리다. 오래도록 우리의 귀와 함께한 음색은 어떤 것도 대신 흉내 낼 수 없는 그 기계만의 고유함이다. 여러 번의 시도만에 1번 발현되는 소리의 출현일지라도 감히 그 단어는 떠올리지 않았다. '고장'이라는 말을 입밖에 꺼내는 순간 오디오와 모든 관계가 끝난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되는 것 같아서. 말할 수 없었다. 그저 몇 번을 몇 번을 전원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는 수밖에.
그사이 해가 바뀌고 4계절을 더 보냈다. 이 오디오를 떠나보내는데 1년의 시간이 걸렸다는 뜻이다. 다른 기계들이 고장 나면 뒤도 안 보고 비워냈던 내가 똑같은 기계인데 무려 1년이라는 시간을 끌던 배경은 바로 추억일 테다. 우리의 처음인 신혼 때 나의 취향이 처음 반영된 가전이고, 이 작고 아담한 기계 안에는 만 9년간 우리가 함께 흘려들었던 노래와 추억들이 고스란히 배어있었다. 이 기계를 버리는 것은 9년간 농축된 과거의 추억을 비우는 것과도 같은 크기와 무게로 내면을 흔들었다.
예전의 나였으면 창고 구석에 고이 보관해 두었겠지만 이제는 안다. 보내주어야 한다는 걸. 이 글을 쓰면서 오디오와 함께한 사진들을 찾아보았다. 사진들 속에 소리는 흘러나오지 않지만 우리 가족과 함께했던 그 시절 그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 나온다. 아 이때 무슨 노래를 들었었지. 그때는 이 가수의 이 노래를 좋아했었지. 아이들은 동요를 들으며 함께 춤추고 노래도 흥얼거렸어. 그 모습을 보고 나도 함께 껄껄 웃고 했지...
물건을 버린다고 함께한 과거 시절의 기억과 내재된 추억의 향수까지 사라지는 것이 아니란 것을 이제는 안다. 추억이 그리울때면 사진을 찾아본다. 그때의 정취와 정서가 시간의 틈을 뛰어넘어 현재로 재현된다. 추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 기억속에 별로 점철되어 영원히 우리와 함께 반짝이기에.
또한 언젠가 쓸지도 모른다는 실가닥처럼 희미한 가능성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안다. 설사 2년 만에 사용할 일이 생겼다 하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 하나로 세상은 무너지거나 격변하지 않는다. 단지 필요하면 그때 새로 구입하면 그만이다. 2년간 보관하면서 자리차지하고 관리하는 기회비용보다 새로 사는 것이 더 저렴할 테다.
우리에게는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이 많다.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은 결국 우리의 버리지 못하는 마음들이다.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을 비우기 위해서는 결국 버리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 먼저 관리해야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건에 대한 집착이고 감정을 향한 두려움이다. 오래된 야마하 오디오, 더이상 무거워 쓰지 않는 대형 유리용기, 꺼내볼일이 없는 사용설명서등을 비운 것은 내게 집착과 두려운 감정을 관리하는 방법을 연습하고 그만큼 가벼운 공간과 마음을 획득해 가는 과정이었다.
깔때기는 아직 비우지 못했다. 올해는 꼭 딸기청을 만들어 홈메이드 딸기라떼를 즐겨먹으리라는 작은 다짐을 위해 남겨두었다. 작은 깔때기 하나정도는 괜찮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