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5일
나는 따지자면 여행 스타일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여행하며 만난 사람이든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가든 트러블 없이 잘 지낸다. 딱히 무엇이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없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건 아니라서 의욕적인 사람과 함께면 같이 의욕적 이어진다. 일행이 오른쪽으로 가고 싶으면 같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가고 싶으면 같이 왼쪽으로 움직인다. 반대로 가지 않았다고 아쉽다거나 그렇진 않다. 대신 한 지역에 적어도 한두 가지는 꼭 해 보고 싶거나 먹어보고 싶은 건 있다. 호주 캐언즈에서 야간 스쿠버 다이빙하기나 태국에서 게커리 먹어보기 등. 그런 경우 일행과 상의 해 같이 하거나 하루 정도는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보통의 경우는 어딜 가지 않아서 아쉽다기보다 하지 않아서 아쉬운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관광지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누군가와 여행을 가기 전 그 사람의 성격보다는 여행의 성향을 먼저 체크해본다.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지, 사진을 많이 찍는 사람인지, 인증샷 남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지, 사람들 만나는 걸 좋아하는지. 그리고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하는지,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지. 나머진 내가 다 맞출 수 있지만 딱 하나 맞추기 힘든 건 예산이 없는 여행이다. 돈을 많이 벌든 적게 벌든 의미 없이 돈만 많이 쓰는 여행은 처음부터 내가 거절한다. 아무리 그렇게 여행해도 나에겐 사진만 남는 껍데기 여행이 될 뿐이다.
일행과 싸우지 않는 법은 간단하다. 욕심이 없으면 된다. 각자 하고 싶은 게 타협이 되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한다. 상대방이 하고 싶은걸 하나 포기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해 줬으면 나도 하나쯤은 상대방을 위해 포기해 줘야 한다. 그렇다고 내가 이 만큼 해 줬으니 너도 당연히 이 만큼 보답해야지 하는 마음은 이기적인 생각이니 접어두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진 남기는 걸 좋아한다.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분명 몇 년 뒤 내가 찍어 준 사진을 보고 추억에 잠길 것이다. 당장 어제 일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우리가 추억에 잠길 방법은 관광지에서 포즈 잡고 찍은 사진 한 장 보단 밥 먹는 모습, 길에서 웃음 터진 모습처럼 일상적인 사진이다. ‘우리 이때 지도 잃어버려서 트럭 쫓아갔잖아. 기억나?’처럼 스토리가 있는 사진이 더 기억에 남는다. 그걸 찍어주고 기록해주는 사람과 여행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사진 찍을 때 우울한 표정을 짓는 사람은 없다. 그 당시 상황이 별로 즐겁지 않았어도 남겨진 사진들을 보며 ‘행복해 보인다’며 좋은 의미의 기억 조작을 할 수 있다. 사진 속 웃고 있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보고 추억에 잠길 미래의 나를 위해 지금 열심히 사진으로 남기고 또 남겨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