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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흐 함 Aug 13. 2024

디자인이 (그리고 디자인 연구가) 쓸모 있어지려면

질적 데이터와 양적 데이터가 디자인에 필요한 이유

정말 디자인 연구는 쓸모없을까? 디자인이 핀터레스트를 둘러보고 유행하는 혹은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골라서 그럴싸해보는 결과물을 만드는 일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빠르게 싸고 쉽게 만들 수 있는 AI를 이길 수 없다. 그렇다면, 디자이너의 수명은 정말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디자이너는 새로움을 만들기 위한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연구는 새로움을 만드는 의사 결정을 하는 근거자료, 스토리, 지지자를 만드는 과정이다. 과정 없이 결과물만 존재하는 디자인이라면, 감히 나는 일회성 디자인이라고 하겠다.



'디자인 연구가 쓸모없어지는 경우'에서 언급했다시피, 디자인 연구가 쓸모 없어지는 데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의사결정권자의 리더십으로 방향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크다. 반대로 디자인 연구가 쓸모 있게 되기 위해서는 의사결정권자가 납득할 근거가 필요하다. 나는 이것이 디자인을 직접 사용할 사용자 데이터라고 생각한다. 즉슨, 무엇이 필요하며, 왜 다르게 접근해야 하고, 어떻게 다르게 할 수 있을지를 짜임새 있게 '다시 Re 찾는다 Search'과정을 통해 사용자 니즈의 논리와 논리의 근거가 되는 데이터 조각을 모으며, 이 이 프로젝트를 공감해 줄 첫 번째 지지자를 찾고 테스트하며 디자인 결과물을 포지셔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참여한 잠재 사용자는 참여한 만큼 프로젝트도 잘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은 탄탄한 스토리가 된다. 그리고 이는 디자인 결정 여러 과정의 기준을 세워준다.



내가 뜻하는 '새로움'이 눈이 휘둥그레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어마어마한 현실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뜻하지 않는다. 상품, 서비스, 방향은 모두 변해가는 시대 맥락과 목적에 맞는, 차별화된, 새로움을 뜻한다. 사용자 중심 디자인은 디지털 프로덕트 (예를 들면, 앱)를 만드는 데에 자주 이야기 되지만, 그 외의 건축, 공간, 가구, 시각 등의 디자인에서는 여전히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 (혹은 프로젝트의 의사결정자) 중심으로 감각적인 (유행에 맞게 그럴싸한, 사장님 취향에 맞는) 결과물을 만드는 데에 많은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경우를 많다. 아마 한국에서 '시장 조사'의 이름이던, 사용자를 고려한 리서치가 가장 통합되어 보편적으로 알려진 분야는 '브랜딩'이지 않을까 싶다. 특히, '브랜드'를 '로고 디자인'으로만 본다면, 다시 일회성 디자인의 굴레에 빠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로고는 '브랜드', 즉 상품의 정체성 역할을 하는데에 한계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브랜딩은 의사 결정 기준을 만드는 과정이다. 더하여 이러한 새로움을 만드는 과정은 '소수의 개인'사용자보다는 '여럿의 사용자'를 타깃으로 어떤 공공 혹은 민간 이익을 내야 한다는 전제를 한다.



사용자의 니즈를 파악하고 디자인 논리를 뒷받침하는 데이터 조각은 숫자 중심의 양적 데이터와 문자 중심의 질적 데이터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양적 데이터는 빅데이터 Big data, 질적 데이터는 Thick data라고도 한다. 각각은 다른 역할을 하며 디자인 의사 결정과 논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둘 다 필요하다.



숫자, 즉 양적 데이터는 크기와 규모를 가늠할 수 있도록 한다. 비교가 용이하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세울 때에도 소통을 할 때에도 목표를 정할 때에도 규모를 파악하고 시간과 자원을 분배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즉슨, 숫자는 범위와 목표인 '무엇'을 할지 비교하고 판단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무엇에 집중할지 결정했다면 '어떻게' '왜'를 판단하도록 도와주는 것, 인터뷰, 관찰, 데스크 리서치 등의 질적 데이터 qualitative data이다.



최근 감사한 기회에 진행했던 건축 공간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콘셉트를 도출하는 일의 경우, 초반에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확보하는 양적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에 집중했었다. 부동산 가격 인상 폭이라던가, 편향된 산업군이라던가 감으로만 느끼고 있던 부분을 숫자로 하나하나 증빙하였다. 사실, 증빙에 초점을 두다 보니, 이미 아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결과밖에 되지 않기에 프로젝트를 구체화하고 진행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때 도움이 되는 부분은 '왜 그런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지' '타깃 사용자는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듣는 과정이었다. 지역 경제는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큰 방향은 공공 데이터와 보고서로 확인 가능하다. 그리고 잠재 사용자와의 인터뷰와 그들의 공간에 방문함으로써 어떤 갈증이 있고,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이해함으로 기존 공간과 어떻게 포지셔닝해야 하는지, 사이트의 어떤 부분을 장점으로 활용될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낸 사람이 공간의 의도에 공감한다면, 공간이 만들 지기 전부터 이미 공간을 응원하고 지켜보는 첫 번째 잠재 사용자 및 지지자가 될 수 있다.



다른 간단한 예로는, 놀이 공원을 만든다고 했을 때, 숫자는 '동 시간에 n명의 수용인원으로 n원 수익으로 환산할 수 있는 n개의 놀이기구와 상점을 만들자'라고 도달해야 하는 목표 규모를 설정한다면, 질적 데이터는 '2050년 일상생활을 경험하는' '동심을 자극하는' 등의 '어떤' 사용자가 '왜' 놀이 공원을 찾는지, 그 니즈를 놀이 공원이 '어떻게' 충족시켜 줄 수 있을지 디자인 방향 (콘셉트)을 설정하는 기준과 근거가 된다.



대부분의 디자인은 연구타령이나 하고 있을 정도의 예산과 시간이 넉넉한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빡빡한 예산과 시간이 팽배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디자인이 무언가를 새로 만드는 기획을 할 때에 이미 결정된 마지막 과정으로서 결과물만 만드는 역할이라면, 과정의 남는 시간과 예산 맞출 수밖에 없다. 즉, 결과물 중심으로만 생각한 디자인은 예산과 시간뿐 아니라, 또한 의견을 내는 목소리도 확보하기 어렵다. 더 안타까운 것은 결과물이 가장 눈에 띄기 때문에 과정 속에서 목소리도 적었던 디자이너는 비난도 가장 많이 받게 된다. 근거 없는 비난을 적게 받기 위해서는 이미 결정된 결과에 범위 내에서 결과물 그래도 그려주는 툴러 (툴을 다룰 줄 아는 사람) 역할을 하게 된다. 건축에서는 같은 맥락에서 허가방이 되기도 한다. 톨러는 효율성에 초점이 맞춰져 시간과 예산과의 싸움이 된다. 물론, 이미 이러한 인식이 팽배한 디자인을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과정 자체도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요구하기 쉽지 않다. 그렇기에 더욱더 과정으로서 디자인 단계를 설명하고 사용자 중심 근거로 증빙하며 인식을 끊임없이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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