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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hn Mun Jun 09. 2019

<자기 앞의 생> 로맹가리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나요?

작가는 ‘로맹가리’이자 ‘에밀 아자르’ 이다.

 

‘자기 앞의 생’은 1975년 출판된 에밀 아자르의 장편소설이다. 에밀 아자르는 이 책으로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에밀 아자르라는 작가에는 숨겨진 비밀이 하나 있다. 바로 당대 최고의 문호였던 로맹가리가 자신을 숨기고 새롭게 창조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자신에게 씌어진 문단의 프레임을 벗어나고 싶었던 로맹가리가 완전히 새로운 인물인 에밀 아자르를 만들어 낸 것이다. 로맹가리는 이미 공쿠르 상을 수상한 적이 있는데, 에밀 아자르가 또다시 공쿠르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공크루상을 두 번 수상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로맹가리는 사망한 후 6개월 뒤에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이라는 소책자를 발간하였는데, 여기서 자신이 에밀 아자르임을 밝혔다. 그 어떤 평론가도 두 사람을 동일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음을 비웃고 있는데, 당시 프랑스 문학계의 충격이 매우 컸다고 전해진다.


‘자기 앞의 생’의 주인공인 모모는 창녀의 아들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기구한 생이 자기 앞에 놓여 있는 인물이다. 주인공은 프랑스에 사는 아랍인으로 이름은 모하메드, 주변 사람들은 그를 ‘모모’라고 불렀다. 그의 어머니는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여성이었는데, 의도치 않게 모모를 갖게 되었다. 창녀는 아이를 키울 수 없기에 모모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게 되는데, 그 사람이 또 다른 주인공인 ‘로자’였다.

로자는 유태인이다. 그리고 과거에 그녀 역시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었다. 나이를 먹은 뒤로는 창녀들이 맡기고 간 아이를 대신 키워주며 자신의 생을 이어 나갔다. 그녀는 괴기할 정도의 화려한 옷과 화장을 좋아하고, 머리카락도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거구의 할머니이다. 이런 로자와 모모 앞에 놓인 생이 결코 거라 생각하긴 힘들 것이다.

‘자기 앞의 생’에서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모모의 관점에서 풀어나간다. 객관적이고 지적인 말투로 자신의 생을 덤덤히 읽어나가는 척하는 모모에게서 느껴지는 슬픔이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를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모모지만, 오히려 그런 부정이 모모가 사랑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으로 느껴지게 한다. 죽어가는 로자를 보며 모모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 없이 살 수 없는 것이지 계속해서 되묻는다. 그리고 죽은 로자 곁을 3주간이나 홀로 지키는 모모를 보며, 그 앞에 놓인 생이 마음에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 살 수 없다.


반대로 말하면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 덕분인 것 같다. 자신의 생을 영위하게 위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나의 생이 모모나 로자처럼 기구하거나 아랍인과 유태인의 그 누구와도 다르겠지만, 로자를 떠나보낸 모모의 생이 슬프게 다가오는 건 나 역시 생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말이 슬프지는 않지만, 잔잔한 슬픈 여운이 오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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