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읽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 소설을 읽을 때는 한국 소설을 선호합니다. 스토리의 익숙한 배경 때문인지 독서도 편안해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일상을 걷고 있는 편안한 느낌이랄까.. 그런 의미에서 '천 개의 파랑'은 딱 적당했습니다. SF소설이지만 너무 미래적이지 않았고, 우리가 사는 일상에 인체형 AI 로봇이 함께 있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일상의 편암함을 흐트러뜨리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이 소설의 다른 특징은 경마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주 뚜렷이 이 경마장이 과천 경마장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 번이라도 경마장을 방문해본 경험이 있다면 경마장의 묘한 분위기를 기억하실 겁니다. 탁 트인 공원과 생각보다 쾌적한 환경을 즐기는 이들, 땅이 흔들리는 진동을 전달하는 말들의 경주, 욕설과 고성이 난무하는 도박꾼들의 함성을 한 번에 느낄 수 있습니다. 기묘한 분위기에 압도당하면서도 새로운 경험을 주는 경마장은 상당히 신선한 장소입니다.
이런 기묘한 경마장이 소설에 배경이 되어서인지 소설을 읽고 장면을 상상하는 과정이 즐거웠습니다. 잔잔하고 마음 따뜻한 책 한 권입니다. 잠시 쉬어가고 싶을 때 읽기 좋은 책이 아닐까 생각 듭니다.
하늘은 파란색이었지만 가끔 보라색이나 분홍색, 노란색, 회색이 섞이기도 했다. 그렇게 섞인 색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몰라 콜리는 ‘파랑분홍’이나 ‘회색노랑’으로 단어를 합쳐서 불렀다. 세상에는 단어가 천 개의 천 배 정도 더 필요해 보였다.
갇혀 있지만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 문명사회 이후 쌓아온 말들의 기억 DNA는 초원보다 마방에 더 많을 것 같았다.
3%의 생존율로 살아남았던 보경은 이제 300%의 삶을 짊어지게 된 셈이었다.
때때로 어떤 일들은, 만연해질수록 법이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그 일에서 손을 놓아버리고는 했다. 은혜는 그런 것들을 꽤 많이 목격했다. 휠체어 보행환경의 불편한 지점들이 너무 많은 탓에 결국 모든 것을 손 놓아버린 것처럼 말이다.
세상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물건들이 각기 다른 몸값을 지니고 나왔다. 연재는 그것이 정말로 필요해서 생긴 것인지 생김으로써 필요해진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너무 빠르니까요. 조금 느려도 되지 않을까요?” 무엇이 빠르고 무엇이 느려도 된다는 말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궁금했으면서 왜 묻지 않았을까. 보경은 그 순간의 자신을 자주 탓했다. 그때 묻지 못한 죄로 그 말에 대한 궁금증은 영원히 미제로 남았다.
친절하지 못했던 이별처럼 그리움도 불친절하게 찾아왔다.
사람들은 그걸 선의라고 생각했다. 은혜가 ‘알아요’라고 차갑게 말하거나 대꾸하지 않으면 자신의 선의를 무시한 못된 인간이 된다. 그럼 곧장 인상을 찌푸리거나 대놓고 혀를 차는 경우도 있었다. 웃어야 한다. 사람들이 은혜에게 바라는 건 어떤 불굴의 상황도 웃음으로 이겨내는 긍정의 힘이었다.
콜리는 이 집의 다채로운 소리를 바닥과 벽을 통해 진동으로 느꼈고, 그로 미루어보아 이 집은 살아 있는 집이었다. 투데이가 시속 80킬로미터로 달렸을 때의 진동과 떨림. 그만큼 빠르게 살아가는 진동이 느껴지는 집.
“그리움이 어떤 건지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요?” 보경은 콜리의 질문을 받자마자 깊은 생각에 빠졌다. 콜리는 이가 나간 컵에서 식어가는 커피를 쳐다보며 보경의 말을 기다렸다. “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거야.”
사회는 개개인이 촘촘히 연결된 시스템이었고 그 선은 서로의 목을 감고 있었다. 살기 위해서는 끊어야 할 때 연결된 선을 과감하게 끊어야 하는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죽이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