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고통

by Hoho


갑각류는 뼈가 없어요. 바깥 껍질이 단단해요. 근데 그렇게 단단하면 어떻게 커요? 성장을 할 때, 갑각류가 크려면 어떻게 커요? 허물을 벗어요. 아무리 힘이 쎄던 왕가재, 게라도 허물을 벗고 나오는 순간은 말랑말랑해서 누구에게라도 잡아먹힐 수 있고, 상처받기 가장 쉬운 순간이에요. 내가 성장할 수 있는 순간은 오직 내가 가장 약해지는 그 순간인거에요.

- 장동선 교수


삶을 전적으로 바꾼다는건 이렇게 아픈 일인가보다. 내가 바뀌는 것 뿐만아니라 내가 관계맺던 사람들까지 바꿔야하는 것이다. 이제는 더이상 기존에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과 함께 지내기가 힘들어졌다. 대화 주제가 다르고, 대화의 결이 다르고, 생각하는 방향이 다르다. 함께 있는 시간이 즐겁지 않은 것을 넘어, 불편하다. 친구를 만나면 보통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한다. 처음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즐거웠다. 공감대가 형성되고, 같이 깔깔거리며 웃으니까 즐거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런 대화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이유없이 누군가를 뒷담화하는 내용이 죽 이어질때면 그 공간을 나가고 싶어진다. 그 시절에만 머물러있는 대화가 더이상 변화가 없다고 느껴질 때쯤, 사람들을 만나는게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현재의 나는 5년 전, 10년 전과 비교하면 많이 달라졌다. 혼자만 잘 사는 삶을 지향했다면 공동체, 사회가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고, 어떻게 더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생태적인 삶은 어떤 삶인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부딪혀보는 많은 이들에게서 영감을 받기 시작했다. 많은 사회적 문제들을 보면서 공부하고, 토론장에 참여해보고, 더 나은 사회의 사례를 찾아보기도 했다. 고통스러운 진실을 마주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주노동자의 현실, 데이트폭력 여성의 현실, 장애인들의 현실, 축산 동물들이 당하는 현실. 불편하고 많이 힘들었다.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문제를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더이상 외면할 수 없는 당사자들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면 그들의 문제는 나의 문제로 각인된다. 나는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이 깨지는 경험을 수 차례 했다.


비건이 된 것도 공장식 축산/어업이 야기하는 심각한 환경 파괴의 문제에 더해, 그들에게 인간이 가하는 잔혹함을 목격한 순간, 내가 알고 있던 안온한 세상이 와르르 무너져내렸기 때문이었다. 내가 밟고 있는 한 줌의 땅만 남겨두고 모든 것이 쓸려내려갔다. 배신감을 넘어선 충격, 공포, 그리고 방황의 시작. 내가 알고 있던 세계에서 만난 사람들과 더이상 같은 세계를 보지 않게 되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 '데미안' 중


나는 불편할 것을 알았지만 일부러 진실을 목격했다. 나의 세계를 깨뜨려버렸다. 그러면서 만난 새로운 세계에서 나는 취약한 존재가 되었다. 다시 처음부터 성장해야 하는 아기새가 되었다.


불안했다. 두려웠다. 다른 아기새들과의 연대를 통해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기존에 만나던 모든 사람들과 만남을 원만하게 이어나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환경 문제는 모두의 생사가 걸린 문제이다. 그러니 이념을 떠나, 내 주위 사람들과 잘 지내면서도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쳐 크고 작은 환경 실천에 동참하게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함께 변화를 만들어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틀린 말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관성에 따라 살고 있다. 그들에게 일상적인 언어가 변화한 나에게 상처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냥 그렇게 살아오던 모습이 변화한 나를 배제하는 행위가 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과거에 했던 발언들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었을거라고 생각하니 괴로웠다.


환경 운동을 시작하고 5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관계를 놓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가 발전하면 상식도 변화한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상식도 변화할거라 생각했다. 그것은 나의 큰 착각이었다. 변화하는 것은 세대이다. 사회 구성원이 바뀌면서 사회적 담론이 변한다. 어른 세대는 아직도 자신이 살던 시절에 머물러 있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 사람들도 자신이 자라오면서 배웠던 가치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가정을 꾸리면서 더 보수적으로 변하는 경우도 있다. 그 사이에서 나만 혼자 바뀐 것 같았다.


어쩌면 내가 노력하면 그들도 변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나는 편견으로 가득한 가시돋힌 말을 듣고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이제는 나 혼자만 상처받는 집단 안에서 온전히 서있을 힘이 없다.

더이상 나를 소모시키는 관계에 쓸 에너지가 없다.

그동안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에너지를 감정노동에 쓰고 있었기에 나아가는데 쓸 힘이 없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 것이다.


진정으로 배운다는건 단지 알고 있는 지식이 늘어나는 것 뿐만이 아닙니다.
이미 알고 있는 무언가가 죽음을 맞이하고, 변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대부분의 진정한 배움은 고통스럽습니다.
- 조던 피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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