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가에서 차에 치여 온 힘을 다해 절뚝거리며 도망가는 고양이.
주차장에 내리자마자 야옹-하며 울면서 먹을 걸 갈구하듯 다가오는 고양이.
허피스인지 범백에 걸렸는지 등뼈가 선명하게 드러난 채 진득한 침 한 줄기를 흘리며 다가오는 고양이.
야생과 인간 문명의 경계에 사는 이들. 그들은 인간 문명을 이해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부딪힌다.
아픈 이들을 품어주고 싶지만 나는 그럴만한 그릇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에 괴로운 날들이 이어진다.
하필 나는 근 몇 년간 고양이가 로드킬 당하는 현장을 세 차례나 목격했다. 이미 죽은 사체는 수도 없이 보았지만 로드킬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하는 것은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새겨진다.
나에게 '차도'란 야생과 인간이 맞부딪히는 '전선(front line)'이다. 개인적인 욕심에 나 또한 차를 타고 다니지만, 어서 떠돌이의 삶을 정리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터를 찾아 정착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전선을 달리는 마음은 언제나 불안하고 아슬아슬하다. 빨리 달려서 이곳을 벗어나는 게 나을지, 아니면 천천히 달려서 야생에서 돌연 튀어나올 존재들을 피할 시간을 버는 게 나을지, 통 모르겠다.
인간이 야생에 선포한 전쟁에 무참히 당하기만 하는 야생을 보며 나는 죄책감을 느낀다.
참회하는 마음으로 아픈 동물들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돌봄의 무게는 크다. 그 무게를 짊어지라는 벌이 나에게 내려진 것을 느낀다.
그렇지 않으면 전선에서 죽은 야생의 사체들이 자꾸만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내 몸 구석구석 새겨져 남기는 이 상처들을 설명하기가 어렵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