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고 있기가 도저히 힘이 든 날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주저앉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주저앉아 주위를 둘러봐도 이미 나는 내가 닦고 있는 길의 한복판입니다. 주위에는 도움을 청할 이가 없습니다. 길의 옆으로는 수풀이 우거져 사람의 흔적도, 건물도, 보이지 않습니다.
길을 잃는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요? 하지만 맞는 길은 어디일까요? 저는 저의 길을 직접 만들면서 가고 있는데. 그러니 애초에 길을 잃는다는 명제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길이 없다면 길을 만들면 되는 것이니까요.
큰 꿈을 가슴에 품고 근근이 나아가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친구들이 살아가듯이 그저 그렇게 순응하며 살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 그런 삶은 죽은 삶입니다. 죽기보다 나쁜 삶입니다. 각자가 품은 꿈이 다르니 그들의 삶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저는 저의 꿈이 있기 때문에 살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 그 꿈이 누군가는 망상에 가깝다고 말해도, 비현실적이라고 말해도 포기하지 못합니다. 생계에 지쳐 꿈꾸기를 잠시 멈추어놓더라도 꿈꾸기를 포기하지는 못합니다. 저의 생의 의지를 이끌어주는 것이 바로 꿈이니까요.
하지만 후회를 간직하고도 나아가야 한다는 걸 지금은 근근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간절하게 원하던 것을 잃고 나서도, 실패하고 나서도, 다시 꿈을 꾸어야 살 수 있다는 걸요. 성소란 운명처럼 주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운명을 지키려는 인간의 능동적인 의지이기도 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아요.
p.171 <시와 산책> 한정원 중
저를 자책하게 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나는 왜 항상 이러지?' 이런 생각은 나를 좌절하게 했습니다. 별 것 아닌 작은 실수임에도, 내 삶을 송두리째 의심하게 하는 엄격한 잣대를 나 자신에게 들이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생각에 매몰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내 허점을 인정하고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겠다 다짐했습니다.
때론 아름답고 따뜻하고 뭉툭하지만 때론 냉철하고 날카로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기대도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나무는 아름답고 편안하지만 단단하고 묵직합니다. 깊은 뿌리는 땅을 꽈악 붙잡고 있지만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가지는 유연합니다.
인간이 나무가 되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창밖에 보이는 저 큰 밤나무도 거센 바람의 공격이 힘이 들어 부러지고 싶을 때가 있겠죠? 새가 쪼고 개미들이 간지럽히는 것을 견디기 힘들 때가 있겠죠? 나무들은 땅속 뿌리로 손을 잡고 있다고 합니다. 저도 제가 손잡을 수 있는 동료 나무를 찾아다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힘든 것도 함께 버티면 조금은 수월할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