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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의미는 없다

by Hoho
"넌 중요하지 않아"라는 말은 아버지의 모든 걸음, 베어 무는 모든 것에 연료를 공급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너 좋은 대로 살아." 아버지는 수년 동안 오토바이를 몰고, 엄청난 양의 맥주를 마시고, 물에 들어가는 게 가능할 때마다 큰 배로 풍덩 수면을 치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게걸스러운 자신의 쾌락주의에 한계를 설정하는 자기만의 도덕률을 세우고 또 지키고자 자신에게 단 하나의 거짓말만을 허용했다. 그 도덕률은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p.57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에서. 작가가 아버지에게 "인생의 의미가 뭐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의미는 없다"였다. 우리는 지구의 개미만도 못한 존재일 수도 있으며, 우주의 점 위의 점이라는 것이다. 그런 암울한 현실이, 아버지에게는 오히려 인생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아버지가 크고 대범하게 살도록 만들어줬다. 우리는 우주의 티끌이고, 우주의 시간에서 볼 때 그저 스쳐 지나가는 존재일 뿐이다. 우리가 하는 파괴적인 행태도 결국 지구의 정화작용으로 다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플라스틱으로 죽이고 있는 해양 생태계 또한 지구에겐 작은 상처일 뿐이다. 그렇다면 왜 나는 환경운동을 하는가?


어쩌면 나 또한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를 누리고자 하는 욕망으로, 내가 잘 살고자 하는 욕망으로 이 운동을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존재일 뿐인데, 왜 좋은 환경을 포기하고 자본을 축적하며 편리함의 이름으로 게으르게 살다가 병들어 죽어야 하냐는 질문이 나의 눈앞에 나타났다. 현대인의 중대 질병은 탐욕의 질병임이 명백한데, 사람들은 암세포를 그저 우리가 정복하지 못한 어떤 미지의 악당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스스로의 거주지를 부수고, 파내다가 그곳을 무덤으로 만들어 버리는 바보같은 짓을 반복한다. 나는 어쩌면 나의 안온한 삶을 위해 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암울한 인류의 미래가 이렇게 정해진 마당에 아이를 낳는 것은 나의 욕심이라는 고민 또한 우주에게는 문제도 아니다. 우리가 집안에 침입한 개미와 모기를 죽이듯이, 지구는 자기 몸 위에 침입한 성가신 존재들을 몰아내는 방법으로 생존을 위협하는 극한 기후라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지구를 위해서라면 우리가 함께 협력하여 잘 살아보자는 것도 귀찮은 일일 뿐이다. 어쩌면 빨리 사라져 주는 게 답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기후위기 문제는 이제 매우 개인적인 차원으로 작아졌다. 나는 나의 생존을 위해서 싸운다. 나는 아프고 싶지 않다. 죽을 때 평온하게 죽고 싶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까? 우리의 몸을 아프게 하는 많은 것들은 바로 독소이다. 나쁜 공기, 오염된 물이 몸에 쌓인다. 소와 돼지, 물살이들이 몸에 쌓았던 독소들이 우리 몸속에도 똑같이 쌓인다. 특히 요즘은 가축에게 독으로 무장한 사료를 먹이고, 항생제를 과다하게 투여하니, 그 또한 우리에게 쌓인다. 불필요한 육식을 끊고 약을 치지 않은 다양한 채소들로 식단을 바꾸니 몸이 아픈 게 사라졌다. 채소를 키우려 밭에서 노동을 하니 몸이 건강해졌다. 건강한 미생물군이 내 몸속에 들어온 느낌이랄까. 똥을 쌀 때 가장 크게 느낀다. 막힘없이 스윽하며 흘러나오는 건강한 똥. 남편에게 오늘 팔뚝만한 똥을 쌌다며 자랑한다. (보여주고 싶지만 보여주진 못 한다.) 가끔은 너무 길거나 양이 많아 변기를 막는다. 아... 밖에서 똥이 마려울 때가 잦아졌다는 게 유일한 흠이다. 내 건강한 똥을 다시 분해해서 밭에 거름으로 주고 싶지만 아직 그런 시스템까지는 만들지 못했다.


몸 곳곳에서는 노폐물이 빠져 군살이 사라졌다. 30대 초반에는 허벅지 안쪽, 옆구리, 팔뚝 아래 살이 느껴져 나이 들었구나 했는데, 30대 중반을 향하고 있는 현재는 운동을 많이 안 해도 유지되는 몸매를 보며 이것은 나잇살이 아니라 독소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운동도 정말 중요하다. 주 3회 수영을 다닐 뿐이지만 운동량을 더 늘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언제?) 이런 삶을 꾸준히 유지하고 사고로 죽는 게 아니라면 나는 죽을 때도 아프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건강한 삶이, 지구의 환경을 건강하게 하는데 기여하는 방식이다. 뿌듯함이 배로 늘어난다.


아직 세상에 쏟아지는 사사로운 유혹거리들을 쳐내는 데 노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사람들은 정말 똑똑하다. 무분별한 쇼핑도 나쁜 먹거리 유혹도 많이 끊어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한번 쇼핑몰에 가게 되면 또 새로운 것이 내 시선을 끈다. 계속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는 것이 경쟁 사회에 적응한 인간의 특징일까? 하루에도 수천, 수만 개씩 쏟아져 나오는 정보의 범람에 휩쓸려가지 않기 위해 땅 속을 붙잡고 있는 나의 뿌리는 더 멀리 뻗어나간다.


세상은 마치 급류같고, 나는 그 속에서 버티는 어린 나무같다. 아니 지금은 어느 정도 버티는 방법을 터득한 중견 나무정도 된 것 같다. 그러나 종종 나약하다. 그냥 부러져서 급류에 몸을 맡겨버릴까 하는 충동. 그러나 이 급류는 나를 어지럽게 한다. 내 정신이 온전히 서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내 옆을 흘러가는 저 유목들은 이미 온전히 서기를 포기했거나, 이 급류의 어지러움에 적응했거나. 지구도 빠른 속도로 돌고 있지만 아무도 그 속도를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누구에게도 잘못은 없다. 그저 세상은 떠다니는 유목들과 버티는 나무들과 그 모든 것에서 탈출한 자들의 움직임과 마찰과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닐지.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저자의 아버지에게는 하나의 도덕률이 있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에게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는 본능. 그러나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지금, 우리 삶은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삶을 파괴한다. 내가 편리하게 집에서 클릭 한 번으로 주문하는 저렴한 물건은, 중국의 대기를 오염시키고 노동자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버려지는 쓰레기로 국경없는 바닷속 생명들을 죽인다.


세상의 흐름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내가 나이 들어 힘이 없어질 때쯤이면 급류에 저항하기 위해 버틸 필요도 없어지길 바란다. 흐름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그저 물에 뜬 채 누워서 몸을 맡기기만 하면 평온한 삶을 누릴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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