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밖에 나오니 딱 기분 좋은 선선한 바람과 따뜻한 햇살이 나를 반깁니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봄날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은 실내에 갇혀 일을 하기 싫어서 이맘때쯤 자주 가는 벚꽃동산에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간식과 책, 노트북을 싸들고 벚꽃동산에 와서 가장 좋아하는 자리에 돗자리를 펴고 앉습니다. 벚꽃동산 입구에는 사람이 많이 가지만 이 안쪽까지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지 별로 들어오지 않아서, 혼자서도 자주 옵니다.
그러나 이내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통 집중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하늘색 꼬리가 아름다운 물까치들이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면서 뭐라 뭐라 떠들어대기 때문입니다. 불과 5미터 정도 앞에 보이는 빽빽한 소나무 안에서 찌익-찌익-대는 소리가 들리는데, 사진을 찍어보려 폰을 들었으나 그 모습은 전혀 보이지가 않습니다.
물까치는 정말 빠릅니다. 그 존재를 눈치채고 카메라를 들이대려 몸을 비트는 순간 슝하고 날아가버립니다. 밭 밑에서 사그락대는 찰나의 낙엽 소리조차 빠르게 인지하는가 봅니다.
위험을 알리는 소리인지, 서로를 부르는 소리인지, 왼쪽에서는 찌이이이익- 하다가 오른쪽에서는 찍, 찍, 찌익찍- 하다가 날개를 펄럭이며 내 눈앞을 지나갑니다. 쉴 틈 없이 이 나무 저 나무를 왔다갔다하며 울어대는 물까치 소리에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설상가상으로 바람에 저물어가는 벚꽃잎이 후두둑 무릎 위로 떨어집니다. 이미 바닥에는 벚꽃 카펫이 빽빽이 깔린 것을 보니 그동안 바람이 많이 불었나 봅니다.
물까치가 내 머리 위에 똥이라도 싸지는 않을지 두리번거리며 머리 위를 계속 살핍니다. 내가 기대고 있는 벚꽃나무의 가지 위에 한 마리, 이웃 벚꽃나무 위에 한 마리 앉아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입니다.
물까치에게는 이 이방인이 얼마나 얄미울까요. 내가 여기에 있음으로써 이 자리에 있는 맛있는 먹이들에게는 접근하지도 못하고, 이곳을 통해서 날아가지도 못하는 것이니까요. 뒤에서, 앞에서, 2시 방향에서, 왼쪽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날 때면 휙 고개를 돌려 바라봅니다. 나에게 익숙한 소리는 이방인의 발걸음이 내는 낙엽 밟는 소리인데, 지금 들리는 소리들은 새들이 이곳저곳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입니다. 혹은 바람이 낙엽을 움직여 존재감을 드러내는 소리입니다. 누군가가 나의 시선 안에 불쑥 나타나 휴식을 방해하지는 않을지 끊임없이 경계하는 것을 보니 나는 아직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모르나 봅니다.
자연 속에서는 모든 이가 서로에게 이방인이 됩니다. 돗자리를 까는 순간 나의 가방에 호기심을 보이는 작은 거미나, 날카로운 울음소리로 귀를 찌르는 물까치들이나,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이나, 나뭇잎을 움직여 소리를 내는 바람이나. 모두 이 벚꽃동산을 누리는 이들입니다. 그런 방해꾼들이 신경 쓰인다면 집안에 있어야겠지요.
요즘은 나로서 존재하기가 유행인가 봅니다. 사회에서 강요하는 획일적인 모습, 소위 꼰대문화에 대한 반발이자 개개인의 고유성을 무시하는 교육의 폐해를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겠지요. 그러나 나로서 존재하기에 성공한 이후에는 얽히고설켜 살아가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 사회는, 지구는 나 홀로 살아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홀로 있는 것이 좋고 편하지만, 때론 자연에서 얽혀있는 존재들을 보며 경탄합니다. 그들만의 네트워크 안에서 상생하며 기후위기를 버텨내는 모습을 보면 놀랍습니다. 아, 위기를 버텨내는 힘은 함께하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존재들이 하나의 세상을 이룰 때 그 사회는 더욱 단단합니다. 나 하나가 넘어져도 주위의 존재들이 도와 일으켜 주니까요. 다양성이 공존한다는 말은 참 이상적인 말처럼 들립니다. 다른 이들끼리만 있으면 싸울 것 같지요. 그러나 서로를 이해해 보려는 마음을 가지면 또 살아집니다. 적당한 거리는 항상 중요합니다.
벚꽃동산에서 나의 휴식을 방해하는 새들과 벌레들과 바람과 꽃잎들과 함께하며 나는 오늘도 자연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연습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