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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다.

글연습(1) - '시와 산책' 오마주

by Hoho

나는 곧잘 길을 잃는다. 걷다가 길을 잃으니 앞을 보지 않아서는 아니고, 대개는 발 밑이 아닌 너무 먼 곳만 바라보다가 그렇다. 서두르는 마음이 외려 발을 거는 것이다. 걸으면서 저 먼 산을 보고, 누군가 만들어놓은 집도 구경하고, 하늘까지 보니, 돌부리에 걸리는 일도 잦다.


앞만 보며 타박타박 걸어가는 일이 내게는 어렵기만 하다. 세상에는 재밌는 일들이 많다. 그림 그리는 일도, 악기를 연주하는 일도, 제2의 언어를 구사하는 일도, 영화를 찍어보는 일도, 멋지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도, 호숫가 오두막도.


이런 형편이니 이제는 길을 잃어도 감정의 동요가 없는 편이고, 불안을 감내하는 것에 대해서도 익숙하다. 얼마간 통증을 겪고 마음에 흉터가 새겨져도 개의치 않는다.


그런데 딱 한 번, 내가 가던 길에 갑자기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뿌연 안개가 나타났을 때는 평정심을 잃었다. 내 발 앞이 가시덤불로 가득할지, 낭떠러지일지 도통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고비는 어떻게 넘어야 하나요? 다시 뒤로 돌아가야 하나요? 이 길의 끝에 있을 것 같은 목적지에 이르지 못하면 내 삶은 어디로 이어지나요?


처음에는 남편에게 나의 불안을 털어놓았다. 내 길을 남편이 찾아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주절주절 이야기했다. 그다음에는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 철학 강의를 듣게 되었다. 인간이 무언가 다른 종에 비해 특별해서,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고. 그냥 환경에 적합한 개체들이 남아 살아가게 되는 거라고, 다윈은 이야기했다.


삶은 우연의 연속이며 절대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계획이 크면 클수록 틀어질 확률이 높아진다. 어쩌면 길을 잃는 것이, 아니 그냥 길을 모르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좋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누가 이미 곱게 닦아놓은 길만 찾아 걷는 것도 편하고 좋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두가 다 다른 길을 걷고, 모두가 자신의 길을 만들고, 장애물을 만난다.


길이 보이지 않는 불안을 다잡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는 법을 배우기까지는 2개월. 뿌연 안갯속을 천천히 반 발자국씩, 혹은 반의 반 발자국씩 걸어가는 법을 익히기까지는 수개월. 긴 회복기였지만 조바심 내지 않고 보냈다. 마음에서 두려움이 사라지는 만큼, 내가 조금 더 어려운 길을 헤쳐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고도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는 미미한 불안은, 그 끈기를 봐서라도 몸에 머무르게 해 줘야지 어쩌겠어.



*위 글은 책 [시와 산책 - 한정원]에서 [잘 걷고 잘 넘어져요] 편을 재밌게 읽고, 흉내 내어 적어본 글입니다. 글쓰기 훈련을 위해 좋아하는 책의 구절을 내 것으로 바꾸어 적어보는 연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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