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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범위

by Hoho

처음 키웠던 고양이 하몽이가 떠난 지 7년,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어릴 적부터 동물을 좋아하던 나에게 아빠는 수의사가 되라고 했다. 일요일 아침마다 TV프로그램 '동물농장'을 보는 게 낙이었다. 나는 그냥 동물을 키우고 싶은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키우던 고양이가 아픈 줄도 모른 채로 떠나보내니 동물을 키운다는 것이 두려워졌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아이들이 아프면 천만 원씩 깨진다며 단단한 마음을 먹지 않고선 절대 키우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자꾸 버려지는 아이들이 많아서일테다. 정말 가족처럼 소중해질 반려동물들이 아플 때, 그러나 내가 능력이 부족할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생각하니 두려움이 엄습한다.


반려견을 키울 수 있을지 궁금해서 반려견 산책하는 알바를 했다. 중형견 두 명을 견주분 홀로 산책하는 것이 어려워 한 명의 알바를 구하는 것이라고 한다. 시바견을 닮은 누런색 털의 로미와 갈색 털이 살짝 믹스된 검은색 털의 고미였다. 생각보다 작다고 느꼈지만 여차하면 무섭게 돌변하는 개들을 본 적이 있기에 긴장했다. 내가 맡게 된 개는 검은색 고미였다. 이 친구도 낯선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니 긴장하는 눈치였다. 끈 하나를 사이로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감이 맴돌았다. 자동으로 늘어났다 줄어드는 리드줄을 생각했는데, 이음새가 단단한 밧줄 같은 리드줄을 보니 이 아이들의 힘이 꽤나 세겠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알바를 시작했을 때는 한반도에 갑작스러운 한파가 몰아치고 폭설이 쏟아지는 때였다. 습설이 두껍게 내리면 산양과 노루, 고라니 등 산속 야생동물들이 먹이 활동을 하지 못해 굶어 죽게 된다는 숲해설사의 말이 생각났다. 습설 또한 고온다습해진 바다와 눈구름이 만나 생긴 결과이니 기후위기이고 인간이 초래한 결과라고 한다. 그래서 강원도 인제에서는 겨울산행을 하며 꾸준히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3일쯤 되던 날부터 이렇게 추운 날도 산책을 가야 하냐는 안일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는데,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흥분한 개들의 모습을 보니 미안해졌다. 그리고 기구한 운명의 산속 야생동물들과 신난 반려견들의 상반된 모습이 겹쳐져 마음 한 켠이 불편했다.


하루는 추운 날씨에 기침과 콧물 증세가 생겨서 나가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는 아프면 병가를 낼 수 있지만 돌봄은 아플 새가 없었다. 두 개들은 실외배변을 하는지라 짧게라도 꼭 나가야 했다. 아파트 단지 안에 마련된 배드민턴장에 들어서 문의 걸쇠를 걸면 두 개들의 목줄을 풀어준다. 고미가 신나서 로미의 목덜미를 무는 시늉을 한다. 로미도 고미의 장난에 반응하며 서로 뒤엉킨다. 눈 쌓인 배드민턴장이 금세 반려견 놀이터가 되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개들이 울타리 가장자리에 가서 냄새를 킁킁 맡기 시작하면 견주분은 배변 신호가 왔다는 걸 직감한다. 그 자리가 그 자리 같은데 오랫동안 이리저리 냄새를 맡다가 똥을 싸는 자리는 항상 다르다. 무슨 기준으로 선택하는지 궁금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캣맘이 고양이 밥을 주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곳이 가까워지면 고미가 갑자기 줄을 잡아끈다. 고미가 달려 나갈까 놀라 순간적으로 팔뚝에 힘을 빡 주었다. 고양이를 만나면 대체 뭘 어쩌려고 그러는지 귀가 쫑긋해지고 눈이 땡그래진 채로 줄을 팽팽하게 잡아끌며 그 자리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잠시동안 줄다리기하며 서있다가 마지못해 이제 그만 가자며 줄을 잡아당겼다.


문득 이렇게 힘도 세고 목줄만 풀면 날쌔게 달려 나가는 아이들이 목줄에 묶여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안쓰러워졌다. 노인이건 아이들이건 돌봄에서 중요한 건 주체성을 인정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노인들 또한 기계적으로 밥과 치료를 제공받는 요양원보다 집처럼 자신의 선택권이 넓은 요양원을 좋아한다고 한다. 강원도 인제 신월리에 가서 사는 동안, 혼자서 산책하는 개들을 만난 적이 몇 번이나 있다. 물론 로드킬의 위험성도 있고 야생에서 개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지만, 이곳은 워낙 인구밀도가 적고 다니는 차들이 거의 없어서 가능한 모습이었다. 자연히 차들도 이곳에서는 속도를 줄이고 달리는 듯했다.


동물이 시민으로 받아들여질수록 통제되고 훈련된다. 이는 물론 인간의 규칙에 기반한 통제이다. 도시에서 인간들과 함께 지내려면 통제는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인제 신월리처럼 자연의 규칙에 인간이 함께할 수는 없을까? 아니면 독일의 경우처럼 전문 브리더에게 고도의 사회화 훈련을 받은 개만 입양이 가능하도록 하여 조금 느슨한 통제도 괜찮은 사회가 될 수는 없을까? 돌봄이란 오히려 각 개체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보호자는 꼭 필요한 최소한의 개입만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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