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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고 두려운 아저씨에게

by Hoho

"그 큰 개들 산책시키면서 입마개도 안 하면 어떡하나!"

"얘넨 법적으로 입마개 해야 하는 애들이 아니에요."

"걔들이 지금 혐오감을 주는데 그럼 해야지. 애들도 무서워할 텐데 말이야."

"혐오감 없는데요."

"그건 당신 생각인거고 내가 지금 혐오감을 느끼는데!"

"혐오감 느끼는 것도 본인의 개인적인 생각이에요."


중형 진도믹스 개 두 명 산책시키는 알바를 견주분과 함께 하게 됐습니다. 하루는 산책 도중 지나가던 아저씨가 삿대질을 하며 뭐라고 합니다. 폭력적인 언행이었고, 듣고 있다가 저도 화가 나서 대꾸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시기에 무시하고 돌아왔습니다.


큰 개들이 당하는 일상적인 차별. 본인의 존재도 혐오감을 일으키는데 숨어서 지내세요 하면 그럴 수 있나요? 덩치 큰 남성이 큰 개를 산책시키고 있었다면 입마개하라는 말을 그렇게 공격적으로 할 수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험상궂게 생긴 분들이 있습니다. 이 분들이 단순히 생김새가 공포심을 준다는 이유로 손을 묶고 다니게 한다면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일까요? 성폭행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킨다고 모든 남성들에게 추적장치를 달게 하면 그것 또한 폭력이 아닐까요?


본인의 안정적이고 불편함 없었던 일상에 웬 여성들, 성소수자들, 장애인들이 나타나서 불편하게 만들죠. 웬 동물들이 자꾸 거리에 기어 나와서 두렵게 만들죠.


근데 있잖아요, 사회적 약자들은 그런 불편과 두려움이 일상이라 실제로 숨어서 지냅니다.

그들의 등장으로 이제서야 불편함을 느끼는 이가 있다면 그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위에 있었던 겁니다.


저도 사실 위에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비건이 된 이후로 소수자가 겪는 일상적 폭력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고, 내가 여성으로서 받았던 일상적인 차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밤길이 무섭습니다.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 이후로 많은 공용화장실이 무섭고요. 어렸을 적 본인의 성기를 드러내는 이상한 아저씨를 만나 공포심을 가졌던 경험이 있습니다.


동물들이 겪는 폭력을 드러내는 것을 마치 비건을 강요받는 것처럼 느끼며 혐오하는데요. 비건은 육식을 일상적으로 강요당합니다. 뭘 빼달라고 하면 식당에서 거절당하거나 쫓겨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저 감춰진 폭력을 드러내고 사람들이 듣기 불편해하는 진실을 말하는 것일 뿐, 육식을 강요당한다고 육식주의자들을 혐오하지 않습니다. 비건이라고 하면 아무것도 안 해도 존재 자체로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죠. 또한 일부의 사례가 모든 집단을 대변하지는 않습니다. 성범죄자가 남성이라고 해서 남성들이 모두 성범죄자는 아니듯이요. 저는 혐오를 기반으로 한 비거니즘, 페미니즘 운동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솔직하게 고백하면 본인의 안정적인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적 약자들이 두려움과 불편함을 그대로 감수하고 살길 바라는 인간들을 혐오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제발 큰 벌을 받길 바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과 똑같은 악마가 되기 싫어서 혐오감이 들 때마다 억누르려 애쓰고 명상을 합니다. 혐오는 모두 닮아있으니까요. 오히려 내가 지향하는 가치관과 닮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연대와 돌봄의 가치를 되새기려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런 약자들을 짓밟았던 것이 인간의 부끄러운 역사입니다. 아직도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동물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모두가 등 돌리고 있는 세상에 나 홀로 확성기도 없이 말하는 느낌이죠. 그나마 개를 키우는 인구가 많이 늘어나면서 개에 대한 호감이 많이 늘어났다고 생각했지만 버스나 지하철에서, 식당과 카페에서 개가 보이지 않는 것은 의아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어떤 존재가 드러남으로써 본인의 일상이 깨지는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건 우리가 다양성이 있는 건강한 사회로 가고 있다는 증표입니다. 그러니 불편해도 조금만 참으세요. 다수의 이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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