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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Feb 14. 2022

삶이 내게 기대하는 것

삶은 내게 그 어떤 무엇이 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마주하는 삶을 매 순간 어떤 태도로 임할 것인가에 대해서 스스로 돌아보기를 요구했다.


삶은 내게 기대했다. 나를 누르고 있는 감정들로부터 가벼워지기를... 마음의 그늘을 비춰줄 빛의 조각들을 매일의 삶에서 발견하기를... 삶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 나를 비춰주는 거울을 통해 나로부터의 변화와 극복을 기대하고 있었다.


문제에 대한 해결 자체가 본질이 아니라, 그 해결 과정에서 겪는 감정들을 경험하고 그를 거울삼아 스스로 단련하기를 원했던 게 아니었을까.


그러니, 삶에서 어떤 특별한 요소를 찾아 헤맬 필요가 없었다. 매일매일, 이 삶이 지속되고 있는 순간마다 나는 나를 표현할 기회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무엇이 되려 바둥거릴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삶에서 문제라고 생각되는 일들은 어떻게든 해결이 되었고 끝맺음이 있었다. 그 과정을 겪어내는 '나'라는 존재 그 문제를 어떻게 경험하였는가가 더 중요했다. 그리하여 나에게 그 '문제'라고 하는 일들이 무엇으로 남게 되었는가가 중요한 것이었다.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여러 번 같은 문제들이 반복되며 내게 전해주려는 배움을 펼쳐주어도 비슷한 실수들을 반복하는 것을 보니 나는 한 번에 척척 알아듣는 우등생은 아닌 것 같다. 뒤늦게 아차 싶었던 순간들 속에서 삶의 경험들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늘 특별한 무언가를 찾았기에 잔잔한 일상 속에서는 삶이 내게 걸어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삶은 내게 특별하거나 일상적이지 않은 일, 누구에게나 일어나지 않을 법한 소위 그럴싸한 일들의 모습을 하고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매일매일 마주하는 삶의 일상에서 내 안에서 발현되어야 할 무엇이 드러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있었다. 매 순간이 기회였다.


매일 함께 살아가는 나의 가족들과의 관계와, 내가 욕망하고 갈구하는 대상과 나의 관계를 통해서 나는 내가 이 삶에서 가고자 하는 상태로 변화할 수 있는 기회에 놓여있었다.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바라볼 수 있어야 했다.


감정의 알아차림, 그게 시작이었다.




감정들은 경험의 순환을 거쳐 여러 형태로 모습을 바꾸어가며 나타났다. 감정들은 때때로 옅어지기도 하고 제멋대로 짙어지기도 했으며, 늘 마주하는 친근한 감정들의 모습 또한 여러 형태로 나타내기도 했다. 사랑의 감정은 두려움의 얼굴을 하기도 하였고, 미움의 감정은 이해의 얼굴을 하고 있기도 했다.


스스로 정의 내린 어떤 상태에 대한 지점은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며 '나의 의미'를 향해 수렴해가고 있었다.



지금 나는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향해 가려하는가.

이 질문을 통해 나를 이끌어봐야 했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판단은 뒤로하고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도 제쳐두고, 지금 내가 가장 편안하고 기분 좋은 선택이 무엇일까를 생각했을 때 내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의 범주와 그를 대하는 태도는 이전과 상당히 달랐다.


나를 중심에 두는 것과 이기심은 달랐다. 나를 위해 살겠다던 다짐 또한 이기심과는 달랐다. 내가 기쁨을 느낀다고 하여 그만큼의 기쁨을 누군가로부터 가져와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만큼 다른 이의 행복을 빼앗아와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나의 슬픔과 고통을 참고 견딘다고 하여 그것이 무색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진정으로 나를 중심에 두는 것은 나의 생각대로 삶을 살아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나의 생각대로 살아간다 해서 내 삶이 존중받는다는 의미도 아니었다.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만나게 되는 나의 감정들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나에게도 최선이면서 타인에게도 최선인 방법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하는 것. 이에 따른 선택을 하고 행동한 후 나는 그 선택에 진심으로 만족할 수 있었는가 스스로의 양심에 비추어 물어볼 수 있는 것.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 던졌을 때 자신에게 일관성을 발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가 삶의 태도를 결정하는 요소가 아닐까.






지금, 이 순간에 나는 무엇을 하려 하는가.

지금, 이 순간에 나는 무엇을 느끼고 체험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이들이 향하는 지점을 알아차릴 수 있는가.



지난날의 내가 어떠했던지, 앞으로의 내가 어떻게 될지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고 '지금'에 집중하는 연습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걸음을 걸을 때는 걷는 행동 자체에만 신경을 써보고, 설거지를 할 때면 그릇을 뽀드득 닦는 일에만 집중했고, 아이와 놀아줄 때에는 함께 어린 마음이 되어 천진난만한 아이의 마음을 닮아보려 노력했다. 식구들과 함께 먹을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일 때면 내 손으로 만드는 건강한 한 끼에 집중했다.


지금의 순간에 집중하면서 삶에서 내가 감사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지 깨닫게 되면서 그저 이 자체로만으로도... 참...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데에는 아무것도 문제가 될 게 없었다.



어떤 방법을 알기 위해 반드시 문제를 겪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삶의 매 순간마다 나는 나의 최선의 것을 내놓을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내어주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랑과 감사가 돌아왔다.


아이와 도란도란하게 동화책을 읽는 시간을 가지면 아이는 내게 '엄마 사랑해~'를 말하며 목덜미를 꼬옥 껴안으며 사랑을 주었고, 오직 남편을 위해 차려준 밥 한 끼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그는 내가 좋아하는 커피 한잔을 내어주는 것으로 표현해주었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내게 바라는 것은 무엇이 되어 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나 역시도 내가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바라는 것이 아니었음을 느낀다. 무엇이 되어야, 그럴듯한 무엇이 되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마음이 점점 힘을 잃었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은 내가 행복하길 바랐고, 우리들은 그 행복 속에 함께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걸...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순간에 머물러서 살아야 함을 깨닫는다.


매 순간 삶이 요구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사랑을 드러내고 나누는 것이라 믿는다. 거창한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잘난 무엇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나누는 삶이야 말로 나의 최선이라는 것을 배운다.






매 순간이 사랑을 표현하고 실천할 기회였다.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였다.


내가 건네는 말 한마디, 타인을 향해 지을 수 있는 표정,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 하나를 줍는 마음, 우연히 만난 이웃에게 건네는 인사 한번, 맑은 하늘을 보고 감탄할 수 있는 마음, 아침의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는 시간, 반려식물에게 물을 주며 느끼는 언제나 초록빛을 잃지 않는 한결같음에 대한 감사...


오늘의 삶도 내게 말한다.


내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상을 당연하게 보지 않도록...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곳에서 감사함을 발견하는 시야를 주고, 과거와 미래로부터 오는 슬픔과 우울 속에서 한걸음 물러나 지금, 여기에서 나를 보라고.


지금 이 순간에는 아무것도 문제 될 게 없었다.  


삶은 내게 지금의 나로서 살아가길 기대했다.

그렇게 살면서 나라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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