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호 -
나는 버리지 못하는 병에 걸렸다. 최근 두 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방 정리를 했다. 청소와 정리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정리는 '덜어내기'에 가깝다. 필요 없는 물건들을 버리기 위해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곁에 두고 시작해 한 번당 장장 8시간 가까이 소요했다. 쓰레기 한 보따리가 나왔지만 여전히 내 방 수납공간엔 빈자리 하나 없다. 나는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다. 한 물건을 버리기까지 정말 그래도 되는 것인지 최소 세 번은 고민했다. 그럴 때면 그 물건을 갖게 된 순간을 추억하면서부터 미래에 어떤 쓸모가 있을지 상상하기까지 했다.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다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기 일쑤였다.
그 세 번의 고민은 내 머릿속 여러 기준 절차를 통과하는 수순과 같다. 우선은 비용이 마음에 걸린다. '이 물건을 얼마 주고 샀기 때문에 버리기 아깝다.' 따위의 생각이 들어 버리기를 주저한다. 그다음엔 이 물건이 훗날 필요하게 될까 걱정한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나 '유행은 돌고 돈다'와 같다. 실제로 어떤 것을 버렸다가 나중에 애타게 찾은 경험이 있기에 더 그렇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걸림돌은 그 물건이 지닌 추억이다. 방 한편에 유치원생 때부터 쓴 일기장들을 모아놨다. 종이 먹는 벌레가 생길까 뭘 잡아먹는 하마같은 걸 놔둬야 할 정도로 오래됐지만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 어린 날에 뭘 안다고. 마음에서 우러나 쓴 것도 아니며, 학교에서 숙제라고 하니까 꾸역꾸역 영혼 없이 써놓은 기록들. 심지어 어떤 날엔 정말 '밥을 먹었다. 맛있었다.'가 끝인 장들. 20여 년 살아오면서 한 두 번 펼쳐보고 말았던 글들. 그럼에도 정리에서 살아남아 방 한편을 차지하는 것들. 내가 버리지 못하는 건 일기장이 거쳐왔을 시간이다. 엄마와 문방구에 들러 일기장을 골랐을 시간, 그 일기장이 어린 내 손에 채워졌을 시간, 담임선생님의 참 잘했어요 도장 같은 시간들 말이다. 돌이킬 수도, 가질 수도 없기에 손에 쥘 수 있는 걸로 대신하고 있다. 이 버릇은 필름 사진을 시작하면서 더 심해졌다. 버리지 않고 남겨뒀던 것(필름 카메라)이 훗날 빛을 발하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요즘은 거기서 나아가 더 사 모으기까지 하고 있다. 이제는 몇 종류 남아 있지 않은 필름이 차례차례 단종되어가고 있다. 언제 어떻게 없어질지 모르니 그전에 최대한 써보고자 다양하게 사고 있다.
지난해 유독 눈에 띈 두 시류가 있다. 미니멀리즘과 복고다. 차분한 색감과 단순한 구조를 지닌 인테리어 가구들이 주목받으면서 이케아, 무인양품과 같은 미니멀리즘 숍이 인기를 끌었고, 서점가에는 어떻게 하면 잘 버리고 심플하게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패션계에는 복고 바람이 불어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을 실감케 했다. 장롱에서 20년 전 부모님이 입던 옷을 꺼내 입어도 무색하지 않았다. 사진 업로드 SNS인 인스타그램이나 시중에 출판된 사진집을 살펴보면 집안 깊숙한 곳 묻혀 있던 필름 카메라를 꺼내 든 사람들이 눈에 띈다. 이토록 상충되는 개념이 또 있을까. 한쪽에선 버리라, 한쪽에선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간직해라, 하고 있다.
그러니 답은 없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 말고는. 미니멀리스트가 되기 위해 수도 없이 도전했지만 결국 내가 맥시멈리스트임을 인정하기로 했다. 버린 걸 후회하는 건 돌이킬 수 없지만 버리지 않아 후회하는 건 앞으로 언제든 버릴 기회가 남아있다, 는 식으로 합리화하고 있다. 어느새 물건들이 좁은 수납장을 비집고 나와 책상 위까지 점령해가고 있다. 오늘도 밤을 새고, 책상 귀퉁이, 시간이 켜켜이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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