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겪은 일이야. 언젠가부터 누군가의 집에 간다는 게 왠지 모르게 불편한 일이 됐어. 옛날엔 그냥 자연스럽게 들러서 인사하고 차 한 잔 나누던 게 참 흔했다고 하잖아? 그런데 요즘은 초대받지 않고 누군가의 집을 방문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린 것 같아. 괜히 문턱을 넘으면서부터 어색하고, 상대방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신경 쓰이는 게 많아져서 그런가 봐.
그런데 그날은 그런 불편함을 넘어 억지로 누군가의 집에 갈 일이 있었어. 출동 지령을 받고 도착한 아파트 6층.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안에서는 아무 반응도 없었지. 대신 문틈으로 매캐한 냄새가 새어 나오고 있었어. 구조대가 문을 따는 동안 우리는 옥내 소화전에서 수관을 준비하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했지.
문이 열리자마자 뜨거운 연기가 얼굴을 때리며 코를 찌르는 매캐한 냄새가 훅 밀려왔어. 숨이 턱 막힐 정도였고, 눈앞은 연기로 가득 차서 몇 발자국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더라. 바닥에는 그을음이 얇게 깔려 있었고, 천장은 연기로 물들어 검은 자국이 점점 퍼져가는 게 보였어.
주방으로 가까이 다가가니 열기가 더 강하게 느껴졌어. 가스레인지 위에 커다란 냄비 하나가 있었는데, 이미 바닥이 새까맣게 타들어 간 상태였지. 냄비 겉면은 심하게 그을려 원래 색깔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색됐고, 바닥에는 고열로 눌어붙은 자국이 선명했어. 타다 남은 기름과 잿더미가 냄비 안에 엉겨 붙어 있었고, 그 틈에서 희뿌연 연기가 계속 피어오르고 있었어. 조금만 더 늦었으면 불꽃이 냄비에서 번져 주방뿐만 아니라 집 전체를 집어삼켰을 거야.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안쪽 방에서 연로하신 할머니가 주무시고 계셨다는 거야. 방 안도 연기가 서서히 차오르고 있어서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어. 급히 방으로 들어가 할머니를 깨웠는데, 잠에서 깬 할머니가 멍한 얼굴로 "어디 불났냐?"라고 물으시더라. "할머니 댁이에요!"라고 말씀드리니 그제야 상황을 이해하시는 눈치였지.
그런데 할머니의 멍한 눈빛과 손끝의 떨림에서 단순히 잠에서 깬 게 아니라, 뭔가 혼란스러움과 두려움이 느껴졌어. 순간 치매 초기 증상처럼 기억이 혼란스러운 게 아닌가 싶더라. 집안 환경도 그 생각을 더 강하게 했어. 물건들은 그대로 있었지만, 정리정돈이 전혀 안 되어 있었거든. 낡은 신문지와 각종 잡동사니가 거실 한쪽에 쌓여 있었고, 주방은 설거지하지 않은 그릇과 음식물 쓰레기가 그대로 방치돼 있었어. 주방과 방, 거실 할 것 없이 오랫동안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
특히 집 안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어. 고요하고 정적인 분위기, 그리고 먼지가 쌓인 흔적들은 할머니 혼자 이 집에 방치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지.
이 일을 겪고 나니까 단순히 음식 조리 중 자리를 비우면 안 된다는 교훈을 넘어서,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에 대한 걱정과 안타까움이 더 깊어졌어. 누군가 곁에 있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홀로 지내셨을 할머니의 시간이 참 막막하게 느껴졌거든.
화재를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분들이 안전하고 따뜻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우리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 노인 고독사라는 단어가 점점 익숙해지는 사회에서, 이런 일이 결코 남의 일로만 느껴지지 않더라.
혹시 주변에 혼자 계신 어르신이 있다면, 한 번이라도 찾아뵙고 안부를 물어보는 게 어떨까? 우리의 작은 관심과 손길이 누군가의 삶을 지키는 가장 큰 안전망이 될 수 있다는 걸 오늘 뼈저리게 느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