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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재손금 Nov 30. 2024

전천후 소방관

우리 준비되어 있다고요!!

친구야, 들어봐.

소방관으로 일하면서 느낀 걸 솔직하게 얘기해 볼게.

많은 사람들이 소방관을 불 끄는 사람으로만 생각하잖아. 물론 불 끄는 게 우리 일의 중요한 부분이긴 해. 근데 그게 다는 아니야. 폭우가 쏟아지면 물에 잠긴 도로에서 사람들을 구조해야 하고, 태풍이 몰아치면 쓰러진 나무를 치우고 부서진 집들 사이에서 길을 만들어야 해. 여름엔 폭염과 폭우로 인한 사고도 우리가 책임져야 할 일이야.

며칠 전에도 폭설 때문에 정말 힘든 하루를 보냈어. 저녁부터 눈이 쏟아져 도로가 완전히 마비됐거든. 차량 수십 대가 고립된 상황이라 현장에 도착하니까 차 안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분들도 있었고, 미끄러져 엉킨 차량들로 혼란이 극심했어. 차를 밀고 길을 만들어주면서도 계속 걱정이 들더라. "혹시 더 큰 사고가 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 그래도 떨고 있는 분들을 보니 한 사람이라도 더 빨리 구조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뛰어다녔어. 우리도 손발이 꽁꽁 얼고 체력이 바닥날 정도였지만, 그땐 그런 걸 느낄 새가 없었어.


봄엔 산불, 여름엔 폭염과 폭우가 또 다른 도전으로 다가와. 폭염 땐 탈진으로 쓰러지는 분들이 많고, 전력 과부하로 발생하는 화재도 만만치 않거든. 거기에 폭우까지 더해지면 홍수로 고립된 사람들을 구조해야 할 일이 많아져. 물에 잠긴 차량이나 침수된 지하실로 구조 요청이 들어오면 물살을 헤치고 들어가야 해. 장비를 착용하고 뜨거운 여름날 구조 활동을 하다 보면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힘들지. 그래도 그 상황에서 한 사람이라도 무사히 구조하면 그게 우리가 이 일을 하는 이유라는 걸 다시 느끼게 돼.


근데 소방관이라는 직업이 특별히 더 힘들다거나 고생스럽다고만 생각하지 않아. 모든 직업이 다 중요하고, 우리도 그중 하나일 뿐이거든. 물론 위험한 상황에서 일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힘들 때가 많긴 해. 그렇지만 다른 직업들도 각자 나름의 어려움과 도전이 있잖아. 그래서 이제는 "소방관은 고생하는 직업"이라는 이미지에서 좀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싶어.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

사실 처음엔 안정적이고 의미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서 소방관을 선택했을지도 몰라. 그냥 평범한 직업 중 하나라고 여겼는데, 일을 하다 보니 점점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더라. 그 마음이 지금은 내가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가 됐어.

우리도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함께 움직여야 더 나은 세상이 만들어지는 거니까. 그래서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에도, 물에 잠긴 차 안에 갇힌 사람이 있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고민할 새 없이 바로 움직이게 돼. 허리까지 물이 차오른 도로를 걸어가야 하고, 빠른 물살에 발을 헛디딜까 긴장되기도 하지만 결국 그 사람에게 닿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 태풍이 몰아칠 때도 마찬가지야. 강풍에 휘청거리면서도 어디선가 도움을 기다리는 분들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멈출 수가 없어. 현장에 도착하면 처음엔 두려웠던 마음도 잊히고, 그냥 "구해야 한다"는 생각만 남아. 거기다 "수고했어" 같은 따뜻한 말 한마디 들으면 진짜 큰 힘이 돼. 현장에서 힘들 때마다 그런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몰라.

사실, 우리는 누군가의 영웅이 되고 싶어서 이 일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또 영웅이 될 수도 없다고 생각해. 우리도 결국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거든. 하지만 주어진 일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그로 인해 조금이라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참 감사해.

앞으로도 내가 현장에서 느낀 일들과 화재 안전 같은 얘기들 자주 나눌게. 같이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가 보자.

네가 안전해야 나도 마음 편히 일할 수 있잖아.

오늘도 건강하고, 안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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