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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재손금 Nov 20. 2024

멈춰야 보이는 것들

끔찍하고 슬픈 일

친구야, 들어봐.

 
9월의 어느 날 있었던, 조금은 끔찍하고 무서운 이야기야.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 마시려던 찰나에 출동 지령이 떨어졌어. 차대 차 교통사고라는 내용이었고, 사고 현장이 센터에서 멀지 않아 금방 도착할 수 있었지.

현장에 도착했는데,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더라고. 도로 전체에 부서진 차량 잔해가 흩어져 있었고, 25톤 덤프트럭이랑 1.5톤 용달 트럭이 부딪힌 사고였어. 용달 트럭에 타고 있던 두 분이 많이 다쳤는데, 한 분은 의식을 잃었고, 다른 한 분은 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었어. 충돌의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덤프트럭은 사고 직후에도 약 50미터를 더 내달렸고, 그 과정에서 추가 사고까지 이어졌는데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어.


사실 우리 소방관들이 가장 자주 출동하는 사고 중 하나가 교통사고야. 특히 고속도로나 도심지에서 차량 간 충돌 사고는 긴급히 대처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사고 규모가 클수록 피해도 크고, 출동 인력도 더 많이 필요하지. 이날처럼 대형 차량이 얽힌 사고를 볼 때마다 생각하게 돼.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 하루에도 몇 번씩 교통사고 출동을 나가다 보면 안전운행의 중요성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어.

이날은 구급대가 다른 사고 현장에 출동 중이라 인근 센터 구급대가 오기 전까지 우리가 응급조치를 해야 했어. 부상자들에게 목 보호대를 착용시키고 머리와 등에 난 출혈을 지혈하면서 최선을 다했지. 시간이 조금만 더 지체됐다면 생명이 위험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손이 떨리더라. 다행히 구급차가 금방 도착해서 부상자들이 병원으로 빠르게 이송됐어.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간절히 빌었지. “제발 무사하시길…”

솔직히 이런 사고 현장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져. 한순간의 실수나 방심이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수 있다는 걸 매번 느끼거든. 그러다 보니 이런 장면을 반복해서 겪으면서 나 스스로 괜찮을까 하는 걱정도 들어.

밤에도 출동이 이어졌어. 대학교 앞 큰 도로에서 50대 여성이 무단횡단을 하다가 20대 여성이 운전하던 차에 치이는 사고가 났어. 사고자의 상태가 너무 위중해서 경찰도 제대로 된 조사를 할 틈이 없었고, 구급대원들이 응급처치에 최선을 다했지만… 병원으로 이송되는 모습을 보면서도 마음이 무겁더라. 사고 현장은 정말 처참했어.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충격과 죄책감에 얼어붙어 있는 운전자의 얼굴이 잊히지 않더라. 그 젊은 운전자도 그날의 또 다른 피해자였던 거야. 법적인 책임을 떠나 그날의 기억과 죄책감이 평생 그녀를 괴롭힐 수도 있겠지.


무단횡단, 횡단보도를 조금 더 걸어서 건너는 그 몇 초를 아끼려다 두 사람의 인생이 바뀌었어. 무단횡단은 단순히 법을 어기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목숨을 위협하고, 또 다른 누군가의 삶에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걸 꼭 기억했으면 해. 길을 건널 땐 한 번 더 생각하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무사히 돌아가기 위해서라도 말이야.

우리 같은 소방관들은 참혹한 장면을 자주 목격하다 보니 마음에 상처가 남는 경우가 많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는 게 바로 이런 걸 거야.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으로는 사고 현장의 기억이 계속 떠오르고 불안감과 무력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아. 나도 처음 참혹한 사고를 목격했을 때 며칠 동안 악몽에 시달렸던 기억이 있어. 그런데도 동료들에게는 말하지 못했어. 괜히 약해 보일까 봐.

사실 이런 건 혼자 이겨내기 쉽지 않아. 체계적인 심리 치료나 동료들 간의 지지가 정말 필요한데, 아직은 그런 부분이 부족한 것 같아. 우리도 결국 사람인데, 감정을 억누르고 견디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잖아.

그날의 사고들을 겪으면서 다시 한번 느꼈어. 조금 늦더라도 안전운행을 하자. 바쁘더라도, 급하더라도, 속도를 줄이고 주변을 잘 살피는 게 결국 내 삶과 타인의 삶을 지키는 길이라는 걸 말이야. 그리고 혹시라도 이런 사고 현장을 마주하게 된다면, 소방관들도 강인한 영웅이기만 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우리도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도 깊은 상처를 입는 사람들이라는 걸 말이야.

“조금만 더 천천히, 조금만 더 조심히.” 이 다짐 하나가 결국 모두를 지키는 방법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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