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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공원 Oct 22. 2023

가방의 무게

머리가 무거울 땐


이십 대의 마지막에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누구를 따라다닐 줄만 알았지 스스로 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다. 머리를 비우려고 떠난 여행이었기에 특별한 일정 없이 제주도의 산간지방 깊숙이 자리 잡은 숙소에 며칠간 머물렀다. 집에서 가져온 책을 읽고 있던 내게 숙소의 주인은 서울에서 많은 걸 가지고 오면 제주도에서 담아갈 게 없다는 말을 내게 해주었다. 그 말은 내가 읽고 있던 책을 포함하여 서울에서 이곳까지 짊어지고 온 마음의 짐 모두를 가리키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말을 곰곰이 되새기고 나서야 책을 덮고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가방의 무게로 내 상태를 점쳐 보곤 한다. 가방이 유독 무거운 날은 머리가 복잡하다는 신호. 머리를 비우진 못해도 가방은 비울 수 있으니까 되도록이면 짐을 덜어내고 가볍게 길을 나선다. 그리고 그런 날은 평소보다 많은 걸 가지고 돌아오게 된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들 수 있는 짐의 무게도 줄어들 거라 생각한다. 삶을 긴 여행이라고 한다면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짐을 줄여가고 싶다. 그게 인생을 제대로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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