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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우 Jan 21. 2020

학교를 다닐 때 필요한 것들


학교 다니려고 하잖아요!


  2012년에 신사의 품격이라는 드라마가 했습니다. 드라마의 여주인공은 서이수라는 인물로 열혈 교사이지요. ‘윤리 여신’ 서이수는 말썽쟁이 학생들을 맨날 잡으러 다니고, 시도 때도 없이 경찰서에 불려 다닙니다. 아이들을 엄청 혼내지만 아이들은 선생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걸 아니까 부모님 대신 선생님을 더 의지합니다. 사고를 치고는 경찰서에서 꼭 선생님 연락처를 대지요. 말썽쟁이 동협이는 오토바이를 타고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그만 사고가 납니다. 서이수는 병원으로 허겁지겁 뛰어가 학생이 공부는 안 하고 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이렇게 다치느냐고 막 화를 냈습니다. 이때, 동협이 하는 말이 참 마음이 아픕니다.


  “학교 다니려고 하잖아요. 학교 다니려면 운동화도 있어야 하고, 책가방도 있어야 하고, 애들이랑 떡볶이도 사 먹어야 하고.”


  정확한 대사는 기억이 안 나지만 제가 기억하는 대사는 대략 이랬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떠올랐지요. 저는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꿈이 있고, 진로가 명확해서 특성화고등학교에 오지만 학비가 없어서 오는 학생들도 적지는 않았습니다. 특성화고등학교는 학비를 국가에서 지원해주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교복이나 운동화를 살 수 없는 아이들이 많았고, 생활비나 용돈을 반드시 벌어야 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들 얼굴이 떠올라 눈물을 또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2016년도부터 인문계 고등학교로 옮겨 장학과 복지 업무를 하면서는 정부에 엄청 화가 났습니다. 서류를 검토하면서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어려운 환경에서 학교를 다녀야 하는데 정부에서 학비를 지원해주지 않는 게 너무 화가 나서 말입니다. 그래도 고등학교까지는 학비와 교과서 대금은 지원해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사연들이 많은데 누군가는 학비 지원을 받고, 누군가는 못 받아야 해서 마음이 아프기도, 분노하기도 하면서 겨우 서류 정리를 했습니다. 야근을 하며 눈물이 범벅이 되어 퇴근을 해야 했습니다.


  학교에 다니려면 학비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복도 있어야 하고, 책가방과 신발도 있어야 하고, 필기구도 있어야 합니다. 여학생들은 생리대가 있어야 학교를 다닐 수 있습니다. 생리대가 없어 학교에 결석하는 아이들 기사가 나왔을 때, 사람들이 거짓말일 거라고 하더군요. 아프리카 같은 데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구요. 제가 교직에 있는 동안에도 여전히 학교에는 생리대가 없어서 한 달에 며칠씩 학교에 안 오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다른 구에서 걸어서 학교에 왔습니다. 걸어서 오는 데만 두 시간, 통학을 하면 네 시간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저는 페이스북의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내가 가르쳤던 학생 중에도 생리 때문에 학교에 못 오는 학생이 있었고, 학생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해 정책 마련과 당장의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보지 못 하는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은 너무도 많고, 보려고 하지 않으면 잘 볼 수가 없답니다. 우리는 늘 어린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사치스럽다?


  어른들은 언제나 자신의 기억에 의존하여 학교생활에 대해 판단합니다. “우리 때는 책가방도 없이 학교에 다녔는데 뭐가 그렇게 많이 필요하느냐, 공책이 없어서 공책에 연필로 글씨를 쓰고 지우개로 다시 지우고 쓰고를 반복했었다.”하는 말을 하면서 너희는 너무 사치스럽다고 말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제가 초등학교 6학년일 때, 이른바 메이커 상품들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습니다. 혹시 ‘건축학개론’이라는 영화를 보았다면 이제훈 씨가 맡은 승민이가 게스 티셔츠의 짝퉁을 입었다가 국민 첫사랑 수지 씨가 맡은 서연이가 비웃어서 몹시 상처 받은 사건을 기억할 것입니다. 극 중 승민의 어머니가 그 짝퉁 티셔츠를 나이가 들어서도 입고 걸레질을 하시는 모습을 보며, ‘완전 현실 어머니!’라고 생각했었지요.


  90년대에는 메이커 문제가 청소년 문제에서 조금 확대되어 사회 문제가 되었습니다. 메이커 옷을 입지 않은 학생을 따돌리고, 그래서 짝퉁 옷이 많아지고, 아이들은 집요하게 짝퉁을 찾아내서 짝퉁 옷을 입은 학생을 더욱 따돌리고, 그래서 명품 옷을 훔치는 학생들도 많아져서 뉴스에도 나올 정도로 큰 문제가 되었답니다. 그리고, 저도 그 피해자였습니다.


  저는 학비나 의료비가 없는 정도로 빈곤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메이커 옷들을 사기에는 다소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은 신체적으로 계속 성장해야 하는 어린이, 청소년이 비싼 옷을 사 입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셨고, 저는 메이커 옷을 하나 정도는 사고 싶었지만 부모님 설득에 실패했지요. 실은, 우리 가정형편에 대해서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 번 운을 떼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싸구려 시장 옷을 입는다고 놀리던 아이들이 점점 심해져서 나중에는 돌을 던지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부당한 일에 저항하고 싶었고, 그래서 아이들에 맞서 홀로 싸웠습니다. 다행히 남자아이들은 저와 대화도 하고, 놀아주기도 했기 때문에 아주 외롭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자 아이들과의 관계에 대해 큰 상처를 입었고, 누군가와 새롭게 관계를 맺는 것을 꽤 오랫동안 매우 어려워하게 되었습니다. 한 달 간의 따돌림 끝에 결국 아이들이 먼저 사과하며 사건은 일단락이 되었고, 우리는 곧 졸업을 하게 되었지요. 따돌림을 받았던 것은 가을께였는데 겨울에 사업을 하시던 작은아버지께서 조카들 생각이 나셨는지 최고급 운동화와 패딩 점퍼를 사주셔서 더 이상 따돌리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하튼 그 사건은 제게 오래도록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학교를 다닐  필요한 것들


  학교를 다니려면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어야 합니다. 운동화가 없거나 점퍼가 없거나 가방이 없으면 친구들과 잘 지내기가 어렵습니다. 휴대폰이 없으면 학교 생활도 어렵죠. 요즘엔 선생님도 학생들이랑 카톡으로 소통하고, 중요 공지사항을 전하니까요.


  아이들은 자신과 다른 것을 매우 빨리 찾아내고, 또 자신과 다른 것, 다른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부모님들은 옛날 자신의 학창 시절만 생각합니다. 실은 그때도 친구들과의 관계가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시간이 오래되면 나쁜 기억들은 바래지고 좋은 기억만 마치 앨범 속 사진처럼 남게 되니 부모님께 학창 시절은 예쁜 기억들로만 남아 있나 봅니다.


  아이들은 “지금” 학교를 다녀야 합니다. “지금”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른들의 관심과 최소한의 재정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혹은 조금 다른 사람들을 더욱 큰마음으로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어른들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나는 우리 사회가 무엇을 입었거나 무엇을 신은 것으로 타인을 평가하지 않게 되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할 일이지요. 그러나 어른들의 보살핌이 깊어지고 그래서 기꺼이 세금을 내고, 정부와 지자체와 학교가 노력해서 아이들이 좋은 운동화 한 켤레씩은 가질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우리 아이들이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걷게 되면 좋겠습니다. 뛰어노는 것만큼은 즐겁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혹시 같이 목소리를 낼 생각이 있나요?




이 글은 2016년 경에 썼습니다. 이제 고교 무료 급식이 시작되고, 교과서비와 등록금 등 학비 지원도 시작되었습니다. 다른 지원들도 조금씩 확대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세심한 돌봄이 필요합니다. 마을이, 도시가, 국가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함께 키워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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