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05.
언제 쓰나미로 바뀔지 모르는 파도 같았던 마음을 진정시키고 16주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드디어 각자의 부모님께 임신 소식을 알리게 되었다. 그동안의 불안과 고통이 조금씩 가라앉고, 안정감을 찾게 되자 더 이상 숨기지 않고 가족과의 기쁜 순간을 나누고 싶었다. 부모님께서 손자를 기다리고 계셨다고 생각했기에, 이 소식을 전하는 것은 나와 신랑 모두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임신 소식을 전할 때의 떨림과 설렘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부모님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기뻐할지 생각하니 마음이 두근거렸다. 비록 혼란과 고민의 시간이 있었지만 이 소식을 듣는 부모님들의 얼굴을 상상하니 더없이 행복했다.
친정과의 거리가 가까워 먼저 소식을 전하게 되었는데, 따로 이벤트를 준비하지는 않았다. 대신 가족이 모인 식사 자리에서 초음파 사진을 드리기로 했다. 그 순간이 정말 특별하게 느껴졌다. 엄마는 사진을 보자마자 너무나도 놀라며 기뻐하셨고, 연신 신랑에게 축하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모습은 정말 행복했고, 나도 그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어 좋았다.
반면, 아빠는 사진을 보고 너무 놀라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너무 말이 없으셔서 별로 기뻐하지 않으신 것 같았다. 의외의 반응이라 놀랐는데 나중에 알게 된 내용이었는데, 기쁜 감정도 있었지만 내가 걱정된다는 마음이 더 컸다고 하셨다. 아빠는 아이가 잘 클 수 있을지, 내가 건강하게 임신 과정을 잘 이겨낼 수 있을지 연신 걱정하시며 마음을 쓸쓸히 하셨다. 그런 아빠의 마음을 알고 나니, 찡했다.
부모님이 나를 걱정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지면서, 그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빠의 걱정이 나에게도 큰 의미로 다가왔고, 앞으로의 여정에서 가족의 지지와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깊이 느끼게 되었다. 이 모든 감정들이 얽혀 있어, 임신이라는 과정이 단순한 기쁨만이 아닌, 많은 생각과 마음이 담긴 여정임을 실감했다.
이후 친정 부모님의 반응에 기분이 좋아, 시댁에도 얼른 소식을 알리고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신랑과 나는 작은 상자를 준비해 임신 테스트기와 초음파 사진을 넣어 선물로 준비했다. 그 상자를 들고 직접 시댁에 찾아뵙기로 했다. 시댁에서는 친정보다 더 오랫동안 임신을 기다려 오신 것 같아서, 부모님이 얼마나 좋아하실지 내심 기대가 많이 되었다.
하지만 시댁에 임밍아웃을 하고 난 후, 내 마음에 쓰나미가 몰려왔다. 기쁜 순간이었지만, 동시에 많은 감정이 얽혀 있었다. 부모님이 기뻐하실 모습을 상상했지만, 그 기대와 다른 많은 부분들이 나의 감정에 불안감과 우울감으로 다가와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10개월 보관함의 쓸쓸함
시댁에 임밍아웃을 한 날, 선물 상자를 열자 시댁 부모님 모두 깜짝 놀라셨다. "어머, 웬일이니? 임신했니?"라는 말이 연신 쏟아졌다. 특히 시누이는 감동적이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 순간은 정말 기쁘고 특별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흥분도 잠시였다. 놀람이 가라앉자, 부모님은 아이를 위한 걱정과 엄마로서의 모성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혼자는 외로워 둘째 낳아야지" "매운 거, 밀가루, 커피 먹으면 안 되는데 먹었니?" "모유수유는 2년 해야 한다."와 같은 말씀들이 이어졌다. 친정과는 다른 반응에, 그동안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불안과 걱정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이해는 되었지만 내 마음에 슬픔을 더 무겁게 했다.
마치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어..
부모님의 모든 말들은 분명 우리 부부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1박 2일 시댁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마치 '10개월 아이 보관함'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족들의 기대와 사랑이 뱃속 아이와 나를 감싸고 있었지만, 정작 내 마음은 복잡하고 씁쓸하기만 했다.
나는 왜 아이에 대한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를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왜 나는 이 순간에 슬픔이 밀려오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임신을 축복으로 여기고, 자연스럽게 모성애가 생길 것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 감정을 느끼지 못한 것 같다. 임밍아웃을 하고 난 이후 그 순간에도 자연스럽게 느끼는 행복과 기대감이 나에게는 잘 와닿지 않았다.
이렇게 임신이라는 새로운 여정은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나는 무엇인가."
시댁에서의 모든 대화는 아이를 위한 것이었고, 나는 그 대화 속에서 점점 소외감을 느꼈다. 그 모든 이야기들이 나의 소멸에 대한 이야기로 느껴졌다. 내가 모성애가 없어서 그런 걸까 나는 왜 아이에 대한 걱정과 우려들이 속상하고 씁쓸할까 슬플까 임신한 지금 나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