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03.
평소 술자리가 많아 365일 다이어트 보조제를 입에 달고 지냈는데, 그 달은 유독 술자리가 자주 있었다. 가족 모임이며 친구 모임까지 일주일에 4번 술을 마셨고, 살이 찔까 불안했던 나는 다이어트 보조제와 한약을 매일 복용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임신 소식에 나의 감정이 요동치고 있던 그다음 날, 문득 술을 마셨던 날들과 다이어트 보조제, 한약 등 임산부가 하면 안 되는 행동들이 떠오르면서 걱정이 시작되었다.
"임신 초기에는 조심해야 한다는데, 이 모든 행동들이 영향이 가는 건 아닐까?"
"혹시라도 아픈 아이가 태어나는 건 아닐까?"
불안한 마음이 커져갔고, 결국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하게 되었다. 임신을 알게 된 그 순간부터 조심하면 되니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마음속의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엄마가 될 준비가 되지 않은 나의 심리적 상태와 몸 상태는 두려운 고민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해 불안감이 커졌고,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변화할지 막막한 기분이었다. 이런 혼란스러운 마음을 해결하기 위해 이미 아이를 낳은 친구에게 이 소식을 전하며 나의 감정들을 쏟아냈다.
친구는 나에게 화가 나듯 생각보다 냉정하게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최소 1년에서 5년 넘게 불임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꺼내며, 그들이 얼마나 슬퍼하는지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의 불안하고 우울했던 감정들에 대해 화를 내고 있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내 가까운 지인 중에서도 결혼 10년 차인 선배가 있다. 그들은 불임으로 인해 난임 시술을 받으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연히 주사를 맞은 그 선배의 배를 본 적이 있는데, 멍이 들고 붓기가 심하게 들어서 정말 안쓰러웠다. 심지어 살이 20kg나 쪘다고 들었는데, 그 모습이 마음에 깊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내 감정에 집중한 나머지 주변을 생각하지 못했다. 친구가 나의 그런 모습을 지적하자, 매번 스스로 집에서 배에 과배란 유도 주사를 맞으며 온몸에 멍이 들고 딱딱해지는 고통을 겪고 있는 그 선배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너무나도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설렘과 행복이였을 '임신'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두려움과 불행의 단어였다는 사실에 머릿속이 복잡 미묘했다. 그들은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소식이 나에게는 이렇게 다가왔다는 것이 마음 아팠고 나보다 더 간절한 그들에게 좋은 소식이 가면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결과가 좋았던, 나빴던,
경험은 나를 성장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친구는 이미 임신과 출산의 경험이 있는데 자신은 경제적 능력만 된다면 아이를 하나 더 낳고 싶다고 했다. 친구는 항상 육아가 힘들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출산의 고통이 대단하다고 하면서도 다시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까지 선택하려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솔직하게 물어보았다.
"그렇게 힘들다면서 또 아이를 낳고 싶어?"
친구는 육아와 출산이 힘든 과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속에서도 소중한 경험이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느끼는 사랑과 기쁨은 힘든 순간들을 압도할 만큼 큰 보람을 준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공감하기 어려웠고, 친구의 이야기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내 표정에서 그런 혼란이 드러났던 것 같다. 그 모습을 본 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어떤 경험이든 한 번은 겪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 그게 결과적으로 좋은 경험이든 나쁜 경험이든. 그래야 성장하니까. 걱정되고 두렵지만 평생 한 번만 겪는 거고, 그리고 지금 아니면 어쩌면 평생 못 겪는 일이니까."
친구의 경험담이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아직은 두려운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100% 공감하고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누군가에게는 설렘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두려움 이 될 수 있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경험이 나를 성장하게 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마음에 와닿았다.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육아와 출산이 단순히 힘든 과정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배우고 느끼는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두려움과 설렘 사이에서 다양한 감정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혼란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것이 우리를 더욱 성숙하게 만든다. 그 혼란 속에서 우리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서로의 경험을 통해 더욱 깊이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이러한 각자 자신의 감정들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과정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 삶의 의미를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했다.
결국,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은 두려움과 설렘이 얽혀 있는 복잡한 감정의 연속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