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그해에 방영된 드라마 <낭랑 18세>와 영화 <어린 신부>는 많은 10대들에게 결혼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다. 나 역시 그 시절, 이 작품들을 보며 결혼에 대한 환상을 키웠다.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 20대 후반쯤 아이 셋을 낳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은 그때의 나에게 당연하고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었다.
당시에는 결혼이란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합을 넘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 같다. 대학교에 들어가니 점점 삶은 치열해졌고 '결혼'이라는 단어가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고 막연했다. "언젠가 누군가 때가 되면 하겠지 아님 말고"라는 생각만 있었고 더 이상 '결혼'이 나에게 행복의 필수 조건도 삶의 필요조건도 아니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면서 어느덧 서른 살이 되던 해 지금의 신랑을 만나 열심히 사랑했고 서로의 타이밍과 여건이 맞아떨어지면서 우리는 결혼이라는 새로운 단계를 선택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신혼의 설렘 속에서 즐거운 순간들이 많았지만, 그와 동시에 정말 많이 싸우기도 했다. 서로의 습관과 가치관이 충돌하면서 갈등이 생겼고,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신혼 1년 차가 지나고 가장 큰 문제는 '임신'이었다. 신혼 초 까지 우리는 서로 '임신', '아이', '출산' 이런 단어에 대해 이야기해 본 적은 없었는데 가족들은 우리의 2세 계획을 궁금해했고 가끔씩 물어보는 정도였다. 우리 부부는 그때 까진 그런 질문들이 큰 부담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신혼 2년 차가 지나고 3년이 되어가니 점점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고 주변의 기대와 압박이 나에게 부담으로 다가와 '임신'이라는 고민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우리 부부는 딩크족이 아니다. 둘 다 아이를 원했고, 특히 신랑은 아이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원했지만, 지나가는 아이를 보고 이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그저 큰 관심이 없는 정도였고 '이런 상황과 마음가짐으로 내가 아이를 낳는 것이 정말 맞는 건가?'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바라보는 나라는 사람은 이기적인 사람이라 '내가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이다'라며 자기 중심적인 사람으로 생각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면 달라질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런 나의 고민에 많은 사람들은 "호르몬으로 인해 모성애가 저절로 생겨 아이를 낳으면 달라진다" 라며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자신들의 생각을 나에게 가스라이팅 한다고 생각했고, 절대적으로 공감하지 못했다.
내 마음가짐은 준비가 안되었는데 '내 아이는 다르다' 라며 왜 '임신'을 강요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이를 재촉할 때 마다 속으로는 '키워주실 것 도 아니면서', '애 봐주는 건 절대적으로 싫다'라고 하시면서 온전히 희생은 엄마 인 내가 해야 하기에 내 선택이 가장 중요한데 '왜 생떼 부리시는 것 같지?'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나는 나와 아이를 생각하면 아직 내가 미성숙한 정신상태라 준비가 안 돼서 성숙한 정신으로 준비가 되고 내 마음가짐이 되었을 때 낳고 싶었다.
이런 상태에서 신랑과 '임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신랑은 금전적인 이유로 망설이고 있다고 했다. 결혼 당시 나는 잘되던 사업이 코로나19로 인해 망했고, 일자리를 잃은 상황에서 신랑 혼자 외벌이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지방에 살고 있어 대출을 받아 내 집 마련은 해결했지만, 나머지 생활이 매우 빠듯했다. 집 대출금, 각종 보험료, 공과금, 생활비를 지출하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어 저축은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 아이가 생긴다면 막막한 생활을 해야 할 것이라며 신랑의 걱정이 컸다.
아이는 부의 상징 같아.
'맞벌이하고 육아휴직 내면 되잖아!', '나라에서 지원 많이 해주잖아!' 요즘 뉴스를 보시곤 어른들이 이런 소리를 많이 한다. "우리 때는 애 키우라고 돈 안 줬다. 오히려 애 많이 나으면 세금 더 내라고 했지", "요즘은 좋은 세상이다. 육아휴직에 돈 1억씩 준다더라.", " 지역마다 애 낳으라고 몇 천만 원에 애 돌보미도 보내 준다더라." 그런데도 왜 애를 낳지 않느냐 타박하며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너무도 스트레스받아했다. 정말 육아휴직을 눈치 안 보고 턱턱 낼 수 있고, 나라에서 1억씩 현금으로 주고, 애 키우는 돌보미도 지원해 주고 그러면 내가 고민을 안 할 텐데 아니라고 말씀을 드려도 뉴스 말은 들으시면서 내가 하는 말은 잘 모르고 떠드는 소리라고 생각하시니 미칠 노릇이었다.
뉴스에서 떠드는 지원금 1억? 몇 천만 원?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 내가 잘 살기 때문에 안주는 게 아니다. 지역마다 지원금이 다르고 회사마다 눈치 주는 게 다르기 때문인데 내가 살고 있는 지방은 인구소멸 위기지역 인 강원도 라도 정말 따로 주는 건 없다. 전국적으로 다 지원해 주는 부모급여, 아동수당, 출산지원금, 첫 만남지원금 이렇게 주는 게 끝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왜 지원을 안 해주는지 모르겠지만 서울, 인천에서 지원해 주는 교통비 지원, 돌보미지원, 육아지원금 이런 거 일절 없다. 물론, 아예 없는 것보단 도움은 확실히 되겠지만 뉴스에서 나오는 이야기처럼 외벌이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데 왜 애를 낳지 않느냐 타박하면 정말 속이 답답하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제일 큰 문제는 육아휴직, 출산휴가, 아이 돌봄인데 신랑은 육아휴직 쓰면 퇴사해야 한다. 만약, '나라에서 휴직 할수있게 해주라고 했다' 법을 이야기하면서 쓰게 되면 무급 6개월에 돌아와도 자리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남자가 육아휴직 쓴 적이 없고 당연히 말도 못 꺼낸다. 그리고 지방권이라 일자리 구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점도 있다. 지방은 쿠팡 물류센터나 식당 아르바이트 같은 단기 알바로 하는 일자리 아니면 공무원 밖에 없는데 이렇게 일자리를 구해 맞벌이로 돈을 모으다 아이가 생기면 엄마 인 나는 육아휴직, 출산휴가는 꿈도 못 꾸고 그만두어야 한다. 결국 경제적 문제는 다시 돌아와 신랑 혼자 외벌이를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수도권은 다를까? 서울에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서울은 더 치열하고 막막한 현실을 담아내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지방은 2~3억이면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어 부부가 서로 맞벌이로 3년 차면 대출을 받아 충분히 내 집마련을 할 수 있지만 서울의 경우 집값이 기본 10억대 이상 이기 때문에 내 집 마련을 위해서는 맞벌이로 10년을 벌면 살까 싶다가 아파트 가격이 또 올라 힘들다고 했다.
그렇다고 전세, 월세가 저렴한 것도 아니라서 전월세를 내면 월급의 반이 나가 외벌이는 생각도 못하고 맞벌이를 계속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이가 생기면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휴직계를 써야 하는데 말이 좋아 요즘 나라에서 육아휴직을 준다고 하지 실질적으로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퇴사를 결심해야 한다고 했다. 당연히 이렇게 살다 보니 아이는 생각도 못하게 되는 게 현실 이라면서 "아이는 부의 상징 같아"라는 다소 공감되면서 충격적인 말을 던졌다.
70-80년대 반려견이 있으면 부의 상징이었다는 소리는 들어 봤는데 '아이가 부의 상징 같다'라는 친구의 하소연에 나는 공감이 되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쩌다 우리의 현실은 이렇게 되었을까. 2004년 방영했던 드라마와 영화 속처럼 젊을 때 결혼해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사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 모든 게 환상 같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결혼 3년 차, 우리 부부는 아이를 원하지만 어쩔 수 없이 비선택적 딩크의 삶을 살자고 의견을 맞추고 있었다. 더 이상 현실을 이야기해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른들께는 아이에 대해 말씀을 드리지 않고 잔소리를 해도 묵묵히 조용히 듣고 흘렸다. 그게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