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여자의 언어

by 임용철

올해로 쉰넷 인 막내 외삼촌이 스물아홉 살에 결혼하실 때만 해도 결혼은 건강한 남녀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통과의례 같은 거라고 하셨다.

"남들도 다하니까 나도 안 할 이유가 없는 거지. 전공의 시절 마흔이 넘은 독신 선배가 있었는데 좀 의아해했거든. 왜 결혼 안 하고 혼자 사시지?"

"외삼촌이 지금 스물아홉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결혼하시겠어요?"

외삼촌은 옆 테이블에서 수다를 떠는 외숙모를 슬쩍 보고는 빙그레 웃었다.

"제정신으로는 안 할 거 같다."

이든의 웃음소리가 커지자, 외삼촌은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외숙모가 잠시 돌아다봤지만, 별일 아닌 듯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너는 나랑 상황이 좀 다르지. 이완이도 결혼 생각이 없던데."

"형은 그냥 지금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싶대요."

이완은 외사촌들과 함께 카페의 잔디정원을 걸어 정자에 올라가고 있었다.

"결혼에 대한 네 솔직한 맘은 어떤데?"

"부담스럽긴 해요. 제 지금 형편도 그렇고. 엄마나 형도 걱정되고."

"매형만 살아계셨어도. 네가 이런 고민해도 될 텐데."

이든은 안경을 벗어 탁자에 내려놓고 엄마와 형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의 콧등에 안경의 코받침에 눌린 자국이 선명했다.


엄마 박 여사를 포함한 여자의 말은 늘 어려웠다. 이든은 여자의 언어를 누구라도 좋으니, 옆에서 통역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약사라는 말에 호감을 느끼고 다가온 여자들과 썸을 탈 때는 둘 중의 하나였다. 그 자신이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노빠꾸 직진해서 미적지근한 관계를 기어이 망쳤다. 아니면 끝내 험악해진 상황을 인지하지 못해서, 앞으로 다시 연락하지 말라는 말을 상대 여자에게 기어이 듣곤 했다. 분명 서로 모르는 사이일 텐데 약속이나 한 듯 이어진 여자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앞으로 제게 연락하지 마세요.’

조금 상태가 나았을 때는

‘앞으로 연락하지 마세요. 제가 다시 연락할 때까지는.’

물론 그게 그거였지만 말이다.

‘올해도 다 지나갔네요. 연말 남아 있는 시간 잘 마무리하시고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여자의 단순한 안부 문자에 이든은 “올해 당신과 함께한 모든 순간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내년에도 많은 시간 함께하고 싶네요.’라며 선을 넘는 급발진을 감행하곤 했다. 이든이 쓴 말에 엄지 척 이모티콘이 달리거나 읽씹을 당하거나 안읽씹을 당하곤 했다. 뭔가 자신에게 호감이 없다는 건 알겠는데. 당사자에게 그 이유를 듣고 싶었다.

어느 부분에서 여자의 역린을 건드린 건지 자세한 풀이 과정과 정답이 필요했다.

"시리(siri)야, 이 여자의 말을 좀 번역해 줄래?"

"동물들과 프랑스 명사에도 성별이 있지만 저에게는 없어요."란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더니 휴대폰 전원이 갑자기 꺼졌다.

"충전 중인데 배터리가 아웃되나? 조금 무섭다."


독서 모임에서 문학 얘기를 나누는 이든은 연애하는 그의 페르소나와는 달랐다. 무엇보다 그녀들에게 급발진할 일이 없었다. 그는 외줄 타는 어름사니가 되어 그녀들이 연주하는 곡에 맞춰 줄꾼이 되었다. 남자, 여자로 나뉘는 이분법을 버리고 나면 사람이 남았다. 그래서 모임에서 그녀들의 눈가에 번지는 눈물,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보는 공허한 눈빛과 제스처가 이해되었다.

이든은 '남성심리학은 아동과 같은 수준이라 연구할 가치가 없습니다.'라는 어느 라디오 진행자의 우스갯소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남자도 섬세하고 마음이 여린데…’

그에게 연애는 남미의 환상문학과는 결이 다른 열패감을 안겨주는 또 다른 정글이었다. 연애와 결혼은 타이밍 이랬는데, 그 타이밍이 늘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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