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삐용 파자마를 입고 뒤뚱거리며 아침 첫 소변을 보고 일어나니, ‘아, 이게 이슬이란 건가?’ 싶은 것이 떨어져 있었다. 첫 아이 분만 예정을 5일 정도 앞둔 그날 아침, ‘우리 돌콩이가 나오겠구나’ 하는 직감이 와 긴장감이 몰려왔다. 손발이 차갑고 저려오는 듯했고, 심장도 하루종일 콩닥콩닥거렸다. 그래도 남편 말곤 의지할 데 없는 미국에서의 나의 산후조리를 도와주시려 엄마도 와 계시고, 그간 한국, 미국에서 받은 분만, 육아 준비 지침서를 차분히 읽어 온터라 미리 싸 놓은 분만실행 캐리어를 다시 확인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병원에 전화하여 간호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이것이 아이가 나온다는 신호가 맞는지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외국인 산모임을 알고 친절하게 천천히 설명해 주었던 간호사는, “오늘이나 내일 아이가 나올 수 있겠어요.... 진통이 오는 간격이 5 ~ 10분 이내로 짧아지면 그때 오세요” 하며 첫 분만을 하는 산모가 너무 일찍 병원에 올까 봐 따뜻한 말투로 주의도 주었다. 언젠가 방송에서 우아한 여배우 김미숙씨(나 너무 연식 있어 보이나?)가 늦은 결혼과 출산을 했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자기는 출산을 하러 가기 전에 아기에게 예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화장도 했었다고 한다. 나는 화장은 패스. 하지만 벌렁이는 가슴을 다독이곤 흥얼거리며 우아하게 샤워를 하고 돌콩이 맞이를 준비했다. 세상 곰 같은 남편은 애 낳으러 갈 때 고기 먹는 거라고,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소고기를 사 왔다. 고기를 구워 주며 배 안 아프냐고, 언제 진통이 오냐고, 나도 알 수 없는 걸 고기를 씹을 새도 없이 물었다. 샤워도 하고 고기도 먹었는데, 어쩌나... 민망하게 진통은 종일 소식이 없었고 밖은 어둠이 내렸다.
엄마 옆에 누워 자다 깨다 반복하고 있는데 9시쯤 되었을까? 살살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아, 이게 진통인가? 엄마가 나 낳을 때 26시간 걸렸다고 했는데 뭐. 나도 한참 걸릴 테지’ 하며 여유 있게 진통 간격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답답한 모범생 어디 가나 싶게 책에서 본 걸 곧이곧대로 따르며, 배가 아프기 시작할 때마다 시와 분을 썼고, 배가 좀 많이 아프다 싶은데도 웬걸... 진통 사이에 잠이 왔다. 세상에 산통이 오는 와중에도 잠이 오다니. 진통으로 힘이 드니 피로감에 밀려오는 잠이었나 보다. 그래도 여전히 시간 간격을 기록했고, 급기야 너무 아파서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도 참으로 미련 맞게 계속 써나갔다(손이 떨려 구불구불한 숫자가 쓰인 그 수첩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쓰면 뭐 하나, 아픔과 졸림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는지 간격이 얼마나 짧아졌는지 계산은 못 하고 있었다. 미련 맞은 딸 옆에서 자던 엄마가 놀라, “간격이 이제 너무 짧은 거 아냐?” 나는 그제야 “으응, 병원에 가야겠지?” 하며 일어났다. 옆방으로 가 집 전체를 드르렁드르렁 울리며 코를 고는 남편을 깨우니 끔쩍 놀라 일어난다. 그리곤 진통이 와 오만상 찌푸리며 옷을 입는 나를 보고는 남편은 또 한 번 놀랐다.
밤 12시가 오락가락하는 시간, 깜깜한 도로에는 우리 차만 종합병원이 있는 옆 도시로 내달리고, 나는 병원에 가는 사이에도 여러 번의 진통이 와 손잡이를 부여잡고 몸을 뒤틀었다. 병원에 들어서니 분주히 움직이는 간호사들이 나를 휠체어에 태워 분만실로 옮겨주었고, 빠른 손으로 분만 준비를 했다. 침착하고 친절한 간호사 선생님이 내진을 하더니,
미국에서는 다 무통 주사 맞는다길래 나도 좀 맞아 볼랬더니 틀렸다. 오밤중이라 내 담당 의사가 아닌 당직 의사가 분만실로 들어와 밝게 인사를 해주었다. 주치의는 은퇴가 가까운 듯한 꽤 나이 많은 남자였는데, 젊은 여의사가 들어와 얼마나 반갑던지. 의사는 진통이 올 때 신호를 주면 숨을 두 번 들이쉬고, 몇 초 동안 세게 힘을 주자며 매우 간단하고 구체적인 매뉴얼을 제시했다. 점점 진통이 강해지니 배가 들썩거려 내 작은 몸뚱이가 덩달아 들리는 듯했다. 간호사들과 의사, 그리고 나는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는 오케스트라처럼 진통-호흡-힘 주기를 여러 번 반복했고, 딸의 고통을 바라보기 힘들어 저만치 떨어져 앉은 엄마와 뭐 마려운 개 마냥 안절부절못하는 내 옆의 남편도 모두 그 순간을 함께 했다.
진통이 잠시 간 사이 의사가 아기의 머리가 보인다며, “오, 아기 머리가 길어요. 만져 볼래요?” 한다. 웃으며 “그래도 돼요?” 하니, 의사는 “그럼요!” 한다. 나는 아기 머리가 있을 만한 곳을 더듬어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두피를 느꼈고, 젖어 있는 머리카락도 만져 보았다. 지금도 손끝에 닿았던 아기의 정수리 느낌이 살아 있는 것 같다.
마침내 마지막 강한 진통을 파도 타듯 넘으며 우리의 첫아기 로나가 세상에 나왔다. 이 세상 위대한 모든 엄마들은 아시리라. 방금까지 보이지 않던 새로운 생명체가 세상에 나와 크게 울고 꼬물거리는 그 순간이 얼마나 큰 환희로 가득했던지. 가슴이 벅차 어디 자랑할 데를 찾다 자축이라도 하자 싶은 마음으로, 남편에게 "축하해" 했다. 남편도 떨리는 목소리로 "응, 축하해" 한다. 귀엽게 입을 삐죽거리며 우는 로나의 모습이 무척이나 익살스러웠다. 남편은 로나의 우는 모습이 지 엄마 닮았다며 내심 좋아했고, 친정 엄마는 나 태어날 때 몸무게랑 로나의 몸무게가 거의 비슷하다며 괜히 또 끌어다 붙이신다. 자그마한 동양인 산모가 오밤중에 병원에 오더니 순식간에 순풍 아기를 낳아서 그런가, 의사와 간호사들은 너무 잘했다며 계속 칭찬을 했다. 집에서 얼마나 미련 맞게 숫자를 쓰다 왔는지 그 속도 모르고 민망하게.
로나, 안녕?
병원에 있는 2박 3일 동안 새로운 생명체의 존재에 설레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옆에 있는 아가를 바라보느라 유축을 계속하는데도 배가 부른 듯했다. 로나와 집에 오던 날, 병원 밖으로 나왔더니 밝은 하늘에 하얀 눈이 바람에 날리며 아름답게 내리고 있었다. 꽃잎이 날리는가 착각을 할 만큼 예뻤는데, 한껏 고양된 내 기분 탓이었으리라. 곧 다가올 슬픔과 충격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온 세상이 우리를 축하해 주는구나'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부푼 가슴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