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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양연화 May 08. 2024

떠나온 사람이 떠나는 사람을 배웅하는 풍경

창밖은 가을, 장편소설

궁금한 건 연재도 많았다. 하지만 현이 맥주 사 올 시간에 다 물을 순 없었다. 일단 어제 일어난 일에 관해 브리핑하듯 요약했다. 굳었던 제하의 얼굴이 펴지며 고개를 숙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가늘고 긴 숨을 천천히 길게 내쉬었다. 마치 요가할 때 그런 것처럼. 때마침 현이 맥주를 사서 들어왔고 연재는 얼른 국자를 다시 집으며 화제를 돌렸다.   

  

“반찬이 김치밖에 없어서 어떡해”     

제하는 떡만둣국에 김치면 완벽하다며 손을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현이는 주방 싱크대에서 손을 씻고, 연재가 떠 놓은 국그릇을 식탁으로 날랐다. '전시 보고 싶다고 해서 불렀는데 괜히 불렀다'며 투덜거린다. 제하가 손을 씻고 나와 현이 사 온 맥주를 냉장고에 넣었다.

이를 본 현이 어이없는 얼굴로

“뭐야? 맥주 마시고 싶다며?”

“추워 죽겠는데 무슨 맥주야?”

“소시오패스야? 마시지도 않을 걸 왜 사 오라고 난리야!!!”

“주말에 와서 마실 거야”     

제하는 식탁에 앉아 현이 그릇과 자기 그릇을 번갈아 보더니 현이 그릇에 만두가 더 많은 것 같다며 바꾸자고 한다. 연재에게 기시감이 드는 장면이었다. 연재는 냄비에 만두 많으니 먹고 더 먹으라고 말하다가 느닷없이 목이 멨다. 그 말도 늘 연재가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기 때문이다. 제하도, 현이도 묻지도 않는데 연재는 물을 한 컵 마시고 성대가 말라서 그런 거라고 둘러댔다. 제하가 크게 한 입 만두를 베어 물더니 뜨거워서 말은 못 하고 양손으로 엄지 척! 을 한다. 현이 이런 제하를 보더니 앞접시를 가져다 제하 앞에 무심히 놓았다.

   

연재는 제하에게 화환 보내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제하는 인테리어 하느라 전시 시간에 못 와서 아쉽다며 이달 말에 인테리어 끝나면 다음 달에 정식으로 오픈한단다.

"요가원 이름은 뭐예요?" 연재가 묻자

"디야나 요, 힌디어로 명상이란 뜻이에요"

디야나, 뭔가 영어 느낌이 나는 힌디어라고 연재는 생각했다. 제하는 요가원 이름 후보로 아카샤, 타트샤, 디야나를 고민했고 최종적으로 외우기 쉽고 요가와 가장 밀접한 디야나를 골랐다며 각각의 뜻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제하가 기어이 설거지했다. 공짜로 밥을 얻어먹었으니, 그거라도 해야 마음이 편하다는데 어쩔 수 없다. 연재가 피곤해 보였는지, 궁금한 게 해결이 돼서인지, 설거지 끝낸 제하가 서둘러 가방을 들었고, 현은 제하에게 전시를 보여주고 퇴근하겠다며 함께 나갔다. 둘이 나가자, 연재는 바로 양치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전시실에 켜 놓은 불빛이 안방 창까지 올라와 불을 꺼도 깜깜하진 않았다. 피곤해 눈을 감았지만 쉬 잠들지 못했다. 한참 후 안방 창이 어두워졌다. 현과 제하가 이제야 가는 모양이다. 연재는 제하와 현이 어떤 관계인지 궁금해졌다. 분명 연재가 알지 못하는 세계가 두 사람 사이에 있었다.


                                *

수찬이 일찍 출근해 현을 따라다니며 일에 관해 설명을 들었다. 수찬도 소풍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익히 알고 있기에 적응이랄 것도 없이 금세 손발이 척척 맞았다. 수찬이 쉬는 날은 목과 금, 기타 수업은 그날에 몰았다. 이로 월화는 현이, 목과 금은 수찬이, 주말엔 연재가 쉬기로 하고 소풍은 전시 기간 내내 돌아간다. 연재는 평소에도 하루 두 끼만 먹은 터라 점심시간이 필요치 않았고, 현과 수찬은 근처 한식집에 월계산하기로 계약하고 그곳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연재가 만든 레몬 생강청이 다 떨어졌다며 현이 자기가 주말 장사에 쓰던, 식자재 도매 마트에서 구매한 레몬청을 팔자고 했다.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뿐인 카페에 카페인 음료를 마시지 않은 사람을 위해 뭔가는 필요했다. 연재는 청 대신 캐모마일 같은 차를 제안했다. 당이 부담스러운 사람들도 있기 때문인데, 그렇게 따지면 당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며 청과 티를 한 가지씩만 추가하자는 현의 제안에 연재도 동의할 수밖에 없다.  

    

메뉴가 늘면 직원이 힘든 법인데, 항상 현이 일을 늘이고 연재는 최대한 억제하는 역할을 하다 보니 누가 사장인지 모르겠다. 여하튼 메뉴는 4개로 늘었고 가격도 오백 원씩 인상키로 했다. 가장 큰 이유는 사실 보험료다. 전시하면서 혹시라도 있을 작품 훼손이나 분실에 대해 보험 가입하는데, 이번 전시 보험료로 연재가 지급한 금액은 사백만 원.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안 현이 음료 가격 인상을 적극 추진했고, 인상해도 주변 카페에 비하면 저렴했다. 가격이 올랐다고 뭐라는 사람은 없었지만, 연재는 주문받는 동안 진땀이 났다.     


전시장에 윤희가 왔다. ‘엘레강스’ 화분 옆에 우아하게 서서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과 인증사진을 찍었다. 사진사는 연재, 사진을 찍는 열에 아홉은 손으로 브이를 했다. 눈 감지는 않았는지 사진을 확인하고 핸드폰을 돌려주는데, 확실히 브이를 한 사진이 안 한 사진보다 표정이 자연스럽다. 손가락 브이에는 안면근육까지 펴는 힘이 있는 모양이다.      


윤희도 생각보다 많은 관람객에 놀랐다. 겨울 방학이라 엄마랑 온 학생들, 친구끼리 온 사람들, 실내 데이트가 필요한 젊은이들이 많았다. 연재가 선재 갤러리에서 윤희 그림을 봤듯이 윤희는 2년에 한 번은 춘하에서 전시회를 열었는데, 그때 지금처럼 손님이 많지 않았다. 아무래도 갤러리에서 하는 전시와 복합문화 공간에서 하는 전시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갤러리라고 하면 그림을 잘 모르는 일반 사람들은 선뜻 들어서기 어려운 장벽을 느끼는 데 반해 소풍은 입구부터 카페고 장소도 호수 앞이다 보니 진짜 소풍 온 것처럼 가볍게 들르기 편한 거다. 윤희는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를 잡듯 이러다 그림까지 팔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말이 연재에게 부담으로 작용할까 봐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날 오후, 아이들을 데리고 온 엄마와 관람객 사이 작은 소란이 일었다. 유치원 아이가 전시장을 뛰어다니다 다른 관람객과 부딪히는 바람에 들고 있던 음료를 쏟은 것이다. 전시장에 왜 아이를 데리고 왔냐는 질타가 이어졌고, 노키즈존이란 팻말을 붙이라는 원성도 들렸다. 연재는 우선 손님께 사과하고 바닥의 음료를 닦은 다음 아이가 뛰지 않게 엄마에게 주의를 부탁했다. 아이 엄마도 당황한 얼굴로 ‘죄송합니다’ 하며 연신 허리를 굽혔다. 손님께는 다시 음료를 제공하는 걸로 일은 마무리 지었지만, 아이들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윤희는 연재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다. 전시실에 음료를 들고 들어가게 만든 사람의 방안이 해결책이 된다면 윤희도 벤치마킹하고 싶기 때문이다.

 

연재는 아이를 키워본 입장에서 육아가 얼마나 고된 일인지 잘 안다. 진짜 위로와 힐링이 필요한 오직 한 집단만 고르라고 한다면 육아 중인 엄마가 1순위일 것이다. 하지만 육아만 힐링이 필요한 건 아니라는 것도 안다. 카페에서, 전시장에서, 어디서든 방해받지 않고 문화생활을 누릴 권리 또한 누구에게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안내문을 써 붙였다. 조용히 전시 관람을 마친 10세 이하 어린이는 비눗방울 기구를 나눠준다고. 정원에 나가 마음대로 비눗방울을 불며 놀아도 된다고. 하지만 소란을 일으키는 아이는 예외라는 규정을 달았다. 엄마를 따라온 아이들은 빨리 전시를 둘러보고 비눗방울 기구를 들고 정원으로 달려 나갔다. 전시장 안은 평온해졌고 비눗방울 기구 때문에, N차 관람하는 엄마들도 생겼다.  연재의 방안을 본 윤희는 연재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다. 사실 전시를 시작하면서 불안했던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닌데, 생각보다 훨씬 잘해 나가고 있다.


                            *

전시가 시작된 지 3주가 흘렀고 오늘 저녁은 특별 이벤트가 있는 날이다. 신년 맞이 김지영 작가 초청 북토크가 열리기 때문이다. 참가 신청을 올리자마자 50명 정원이 금방 찼다. 소풍에서 지역 작가가 진행하는 글쓰기 수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이미 스무 자리 넘게 신청했고 대기자까지 줄을 섰는데, 최대한 대기 인원까지는 참여할 수 있게 의자 배열을 촘촘하게 해 결국 60명이 자리를 매웠다. 북토크는 7시인데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지영이 도착했다. 연재가 달려 나가 지영을 맞았다. 지영은 내리자마자 호수 전경을 둘러보더니 좀 더 빨리 올 걸 그랬다며 아쉬워했다. 겨울 저녁 6시라 벌써 어둑어둑했다.      


조명이 반짝이는 나무에 걸린 그림을 본 지영은 예쁘다고 감탄하며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현이 달려와 둘이 같이 현수막 앞에 서라고 한다. 이런 센스쟁이. 사실 연재도 지영과 사진 찍고 싶었는데 초면에 어색해 차마 나서지 못했는데 이렇게 자연스레 멍석을 깔아주다니. 지영이 연재의 팔짱을 꼈다. 좋아하는 작가 옆에 서니 십 대로 돌아간 듯 떨리고 설렜다. 이래서 나이 들어서도 덕질을 하나보다 싶었다. 연재는 지영을 전시실로 안내했다. 지영은 소외된 사람,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글을 똑 부러지고 흡입력 있게, 야무진 어투로 써 왔기에 투사의 이미지가 있었는데, 실제 지영은 웃음 많고 평범했다. 전시장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음을 특히 좋아했는데, 그림 앞에 설 때마다 감탄하는 모습이 소녀 같았다.


금세 북토크에 온 팬들로 둘러싸인 지영은 그들이 들고 온 책에 사인하고 이야기 나누느라 정신없었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연재는 행복했다. 북토크 시작할 시간, 군중들을 이끌고 연재와 지영은 3실로 올라갔다. 연재가 준비한 꽃다발을 선사하며 지영을 소개했고 지영이 마이크를 잡고 인사하자 큰 환호가 쏟아졌다. 팬들의 환대에 지영의 얼굴에 함박꽃이 피었다. 지영은 작가가 되기까지 긴 여정을 짧게 얘기하는 걸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 하는 대기업을 다닌 지 7년, 벚꽃이 만발한 어느 날 출근하던 지영은 버스에서 내렸다. 벚꽃이 눈처럼 흩날리는데 도저히 지나칠 수가 없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 순간을 느끼고 싶어 벚나무 아래 꽃비를 아니 꽃눈을 맞으며 하염없이 서 있었다. 내면에서 온갖 소리가 올라왔다.      

“빨리 택시 타고 지금이라도 회사에 가! 아직 늦지 않았어!”

내면의 소리와 반대로 몸은 벚나무를 따라 공원 안으로 깊이 더 깊이 들어갔다. 또다시 소리가 올라왔다.

“빨리 회사에 전화 걸어 몸이 아프다고 해. 병원에 들렀다가 간다고 한두 시간 늦겠다고 해! 그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지영은 내면의 소리대로 전화를 걸었고 그렇게 말했다.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두 시간 늦게 회사에 도착했다. 사무실에 앉았는데 눈물이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삶이 내가 원하는 삶인가’에 대한 회의가 쓰나미처럼 덮쳐 대성통곡을 했다. 동료 직원들은 지영이 어디 많이 아픈 모양이라고 월차를 쓰고 들어가 쉬라고 했다. 다시 가방을 싸서 사무실을 나왔고 그것이 회사 생활의 끝이었다.    


크게 슬픈 이야기는 아닌데, 관객 중 누군가 자기도 그런 적 있었다며 울먹였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다시 회사에 들어가긴 했는데 현실은 퍽퍽하고 꿈은 멀기만 하다며 끝내 눈물을 터트렸다.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프다더니. 지영이 덩달아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눈물을 닦으며, 누가 울면 덮어 놓고 따라 우는 불치병을 앓고 있으니 울지 말라고 했다.  지영까지 우니까 여기저기서 눈물 닦는 사람이 속출했다. 슬픔이 전염되어 퍼지는 사이 공기가 달라졌다. 작가 한 사람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찼던 공기는 서로의 슬픔을 공감하는, 그리고 여기까지 온 각자를 위로하는 쪽으로 포화도가 기울었다. 지영이 '여기 온다고 미용실 들러 머리하고 오랜만에 화장까지 했는데 망했다'라고 하자 모두 웃었다. 울다 웃으니 분위기가 따뜻해지면서 몰입도가 더 생겼다.


후회한 적 없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모아둔 돈 다 떨어지고, 글 써서 먹고살기 힘들어 식당에서 설겆이 알바 했는데, 그때 중학생 딸을 데리고 온 엄마가 지영을 보며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고 했을 때 잠깐 후회했다고 했다. 안타까운 탄성이 나왔다. 그때 지영은 사십을 바라봤고, 선크림 살 돈이 아까워 지인들이 버리는 샘플을 모아 썼다며 그러니 꼴이 엉망이었다고. 처음부터 고상한 작가였을 것만 같았던 지영의 입에서 저런 이야기가 나오다니, 연재는 놀랐다. 그리곤 지영 작가가 더 좋아졌다.      


첫 책을 내기 위해 출판사 백여 곳에 원고를 보냈고 겨우 한 곳에서 출간 제의를 해와 겨우 천 권을 찍었지만 그나마 팔리지 않았다. 출간하기만 하면 무조건 십 쇄는 찍으리란 자신감이 있었는데, 망상이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책까지 팔리지 않자, 작가로서 재능이 없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 절망감을 끄적인 블로그 글이 어느 편집자 눈에 들어 출간 제의가 들어왔고, 지영은 마음대로 하라고 내던지듯 허락하고 다시 작은 회사에 들어갔다. 어차피 안 팔릴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역시나 이변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책이 팔리기 시작했다. 웬일인가 했더니 칸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어느 유명 배우가 그 책을 읽고 과거 자기가 힘들었을 때 꼭 자기 심정 같아서 울었다며 SNS에 올렸단다. 책은 삽시간에 팔려 진짜 십 쇄를 찍었다. 책 제목대로 된 것이다.

“이런 십 쇄!”

지영의 외침에 모두 폭소를 터트렸다.     


재능이라는 게 꾸준함이고 그걸 세상이 알아봐 주는 건 운이라고도 했다. 사람들이 알아주니 더 좋은 글, 사회에 꼭 필요한 글감을 찾게 되고, 글감을 찾으면 글에 심혈을 기울이게 되고, 다행히 그렇게 쓴 책이 팔리니 다음에 또 그럴 수 있는 경제적인 여건이 만들어져 그것들이 계속 선순환되었다고. 


그놈의 운이라는 게 늘 절망 끝에 오는 게 문제라고 했다. 그러니 아직 운이 오지 않았다면 아직 바닥은 아닐 수 있으니 더 절망하시라고 해 여기저기서 원성 섞인 한숨이 나왔다. 그 한숨에 또 웃다 보니 두 시간은 KTX보다 빠르게 흘러 어느덧 끝낼 시간. 모두 아쉬워하며 단체 사진을 찍었다.      


지영이 참가자들과 일일이 개별 사진을 찍는 동안 연재는 지영의 말을 생각했다. 운이라는 게 늘 정말 끝에 온다는 말. 지금, 이 순간, 연재의 눈앞에 벌어지는 이 기가 막힌 이벤트가 연재의 절망 끝에서 시작되었으니 그 말이 정말 맞다 싶었다. 열 시 반 기차표를 끊었다는 지영을 춘하 역까지 연재가 차로 바래다주었다.     

지영은 어떻게 이런 공간을 만들었는지 물었다. 연재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저도 벚꽃 때문이었어요.”      


지영은 더 묻지 않았다. 신호대기에 차가 멈추고 두 여자가 눈을 마주쳤다. 마치 블루투스를 연결한 것처럼 연재의 생각이 고스란히 지영의 가슴으로 이어지는 것 같았다. 순간 연재가 눈물을 글썽였다. 삶의 고통을 통과한 자들이 느끼는 공감이었을까? 지영은 또 불치병이 도졌다며 휴지로 눈물을 닦았다. 춘하 역에 도착할 때까지 더는 대화가 없었지만 편안했다. 처음 느끼는 희한한 감정이었다. 기차에 오른 지영이 창가에 앉아 손을 흔들었다. 연재도 조심히 가시라고 손을 흔들었다. 기차가 플랫폼을 빠져나가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연재는 그대로 서 있었다.


떠나온 사람이 떠나는 사람을 배웅하는 풍경이 마치 오래된 흑백영화처럼 아련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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