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고 미지근한 슬픔

내가 사랑하는 김초엽작가님의 신작이 나왔어요><

by 에이치노트

현존감은 어떻게 느끼는 걸까?
나는 예전부터 살아있다는 그 오묘하고 기이한 감각을 느낄 때마다 불안해졌다.
내가 나이고, 이런 얼굴과 몸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아주 생소한 느낌. 그 느낌을 받을 때마다 존재가 바스러져서 사라질 것만 같아 매우 불안해졌다.
나는 무엇인가? 이 존재한다는 느낌은 뭘까? 몇번이고 되물었던 적이 있다.

소설에서 양자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그들도 존재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찾아 나선다.
그들의 언어를 빌리면 '고대의 세계'에서 물리적 육체를 지닌 나와는 다르게 그들은 큐비트로 이루어진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몸을 가지고 살았으니 물리적인 몸의 감각이 없는 그들은 나보다 얼마나 더 공허하고 불안했을까.

'양자역학의 특징을 알아차리는 것이 내가 존재한다는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이라는 말은 결국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아직 무엇도 되지 않은 불확정의 상태라는 것, 그러나 어떤 상태와 가능성을 확정하는 순간 그와 연결된 것들의 상태도 정해진다는 것. 결국 존재를 느낀다는 것은 달궈진 유리처럼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밤하늘의 오로라를 보며, 바다 위에 날아가는 철새를 보며, 같은 취미를 가진 다른 다이버들과 상호작용하며 그 모양이 잡혀진다는 것 아닐까.

초엽작가님이 양자의 세계에서 이야기를 풀어갔지만 이 이야기는 '고대의 존재'인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감각을 통해 상호작용하며 현존감을 얻고 존재하게 되며 모양이 잡혀가는 불확정한 존재들이다. 이런 우리들은 점점 비트의 세상으로 빠져들게 되고 - 아직 큐비트의 세상이 오지는 않았다. 그들은 먼 미래의 우리의 후손들이 되겠지 - 비트의 세상에서 살면서 현존감을 잃고 공허해진다.
우리는 연결되어야 한다. 아니, 사실 우리 모두는 이미 연결되어 있다. 그것을 감각하지 못할 뿐. 감각을 통해 우리는 주변의 존재들과 상호작용하며 우리는 우리를 느낀다.

나는 초엽작가님의 전 작품을 모두 읽었다. 초엽작가님은 감각 그 자체와 감각을 통한 연결에 아주 큰 관심이 있으신 듯하다. 감각과 연결은 작가님의 작품들에 전반적으로 사용된 소재들이다. 소재라고 말하기에 소재이자 주제가 될 정도로 매우 강력하고 커다란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사람과 사물의 경계를 허물고 존재하는 다양한 '것들' 사이에서의 분해와 연결과 통합은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p)이다.

나는 또한 개인적으로 초엽작가님의 감정의 물성이라는 단편소설을 매우 좋아한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소설집에 실려있는 단편이다. 감정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추상의 개념이지만 매 시간 우리를 지옥 바닥부터 천국까지 흔들어 놓는다. 그런데 그 감정이란 것이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물체라면? 볼 수도, 만질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있다면. 실체없이 휘둘리던 것에서 벗어나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물체가 된다면 나는 슬픔도 기꺼이 기쁘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감정의 물성이라는 글을 너무나 좋아한다.

감각을 한다는 것. 이를 통해 우리가 연결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살아있다는 축복이자 살아있음을 느끼는 단단한 존재감이 아닐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직업 소명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