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위의 산책
휘슬러 가는 길
휘슬러 빌리지
올림픽 공원
나인폴스 올라가는 길
**See to the Sky — 바다에서 하늘로**
밴쿠버에서 자동차를 렌트해
북쪽 **휘슬러(Whistler)**로 향했다.
99번 하이웨이, 일명 **Sea to Sky**.
정말 이름 그대로였다.
바다가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길.
나는 그 한복판에 있었다.
창문을 활짝 열자,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쓸고 지나갔다.
짙은 소나무 향과 짠 바다 냄새가 뒤섞여
온몸이 살아 있는 듯했다.
도로는 끊임없이 굽이치며 산을 껴안고,
왼편에는 숨결 같은 바다가,
오른편에는 하늘의 그림자가 함께 달렸다.
그 두 사이를 달리는 순간,
나는 천천히 **공기 속으로 녹아드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두 팔을 벌렸다.
차창 밖으로 쏟아지는 바람이
마치 나를 안아주는 것 같았다.
그때, 내 심장이 바다처럼 출렁였다.
아, 살아 있구나. 정말 살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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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에선 밴쿠버 방송이 흘러나왔다.
음악은 익숙했고, 도로의 표지판도,
주유소의 색감도, 차선의 냄새까지 —
모든 게 내가 이미 알고 있던 세상의 일부 같았다.
캐나다와 미국은 거의 하나처럼 닮아 있었다.
국경은 그어져 있었지만,
공기의 온도는 하나였다.
순간,
‘이곳이 캐나다일까, 아니면 미국의 끝자락일까?’
그 생각이 스쳤다가 바람에 흩어졌다.
여행은 어쩌면,
지도를 넘어서는 일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땅을 밟는 게 아니라,
내 안의 감각을 다시 깨우는 일.
그 길 위에서
나는 캐나다의 자연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시간도, 목적지도 잊은 채
세상 한가운데에서 **숨 쉬는 나 자신**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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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숙소는
휘슬러 빌리지 한가운데 있는
작은 로지형 에어비앤비였다.
창문을 열면 숲 냄새가 들어오고,
저녁이면 사슴이 마당까지 내려왔다.
휘슬러는 계절마다 완전히 다른 언어로 말을 건다.
겨울의 휘슬러가 속도와 경쟁의 장소라면,
여름의 휘슬러는 숨 고르기와 관찰의 시간이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커피를 손에 든 여행자,
호숫가에 앉아 책을 읽는 아이들,
그리고 그 곁을 지나가는 곰 한 마리.
산은 눈 대신 초록의 피부로 빛났고,
마을은 쉼표처럼 고요히 숨 쉬고 있었다.
휘슬러는 하나의 마을이지만,
계절마다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아간다.
이곳에서의 하루는,
**계절의 조각을 하나 얻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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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우리는 다시 북쪽으로 향했다.
길은 점점 가팔라졌고,
하늘로 이어지는 듯한 구불구불한 도로 위에서
잠시 숨을 고르듯 차를 멈췄다.
**나인 폴스(Nairn Falls)**를 보기 위해
나는 40분 동안 산길을 올랐다.
길은 꾸불꾸불했고, 생각보다 가팔랐다.
숨이 차올라 몇 번이나 멈춰 서야 했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끝까지 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다시 발을 내디뎠다.
왼쪽으로는 옥빛의 빙하 강이 흘렀다.
그 물빛은 이상하게도 나를 위로했다.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물소리가
마치 “조금만 더, 다 왔어요.”
하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스며들고,
발끝엔 흙과 물의 냄새가 섞였다.
그 냄새를 따라 한 걸음, 또 한 걸음.
헉헉대는 숨과 함께 시간도 흘러갔다.
그리고 마침내 —
나인 폴스 폭포에 도착했다.
작고 소박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 어떤 폭포보다도 웅장해 보였다.
세상에 크고 작은 것은,
**보는 이의 마음 크기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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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가 추천했던 *조프리 레이크(Joffre Lakes)*는
그날 하루 방문 인원이 이미 마감돼 있었다.
우리는 방향을 틀어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차는 점점 더 높은 곳으로 향했고,
도로는 좁아지고, 하늘은 가까워졌다.
그렇게 달리던 중 —
모든 걸 멈추게 하는 풍경이 나타났다.
**더피 호수(Duffy Lake)**.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호수만 바라봤다.
산이 비치고, 구름이 흘러가고,
내 마음의 결도 조금씩 가라앉았다.
더피 호수엔 수천 년 전 빙하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했다.
그 말이 맞는다면,
지금 내 안에 남은 감정도
조금은 오래가도 괜찮지 않을까.
그곳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그 차가움 속에서 오히려 마음은 따뜻해졌다.
얼음의 호수 위로 내 숨결이 섞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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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내려오는 길,
작은 마을에 들러 햄버거 하나를 시켰다.
간판은 작았고, 주차장도 좁았지만
햄버거는 놀랍도록 컸다.
그리고 놀랍도록 비쌌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 거대한 햄버거 한 입이
왠지 모르게 위로가 되었다.
> 예전의 캐나다가 아니다,
> 하지만 여전히 사람의 온도는 남아 있었다.
조금은 실망했던 폭포,
도착하지 못한 호수,
뜻밖에 만난 더피 호수,
그리고 커다란 햄버거 하나로 마무리된 하루.
우리는 오늘,
**계획하지 않았기에 더 오래 남을 하루**를 달렸다.
> 오늘 나는 또 한 번
> 자연에 감동했고,
> 캐나다를 부러워했다.
> 그리고 알았다.
> **여행의 완성은 도착이 아니라 —
> 머무는 마음이라는 걸.**
나인 펄스 폭포
더피 호수
나인펄스 들어가는 계곡
휘슬러 빌리지. 햄버거가 참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