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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네스코, 가장 오래된 성에서의 하루

페어몬트 밴프 스프링스 & 샤토 레이크 루이스에서의 하루

by 헬로 보이저
페어몬트 밴프 호텔

케스케이드 가든


우리는 로키 마운틴을 달려와

마침내 그토록 바라던 **밴프**에 내렸다.

공기는 차가웠지만,

그 속엔 묘한 설렘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기차는 느렸고,

그 느림이 지루함이 되기 직전에

우리는 도착했다.


“드디어 왔구나.”

오랫동안 마음속에 접어두었던 지도가

천천히 펼쳐졌다.


밴프의 산맥 한가운데,

돌로 지어진 고성이 있었다.

**페어몬트 밴프 스프링스.**

1888년에 세워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 중 하나.


그날의 나는 그곳에서 배웠다.

급하게 살아온 시간도

이 고성 앞에서는 천천히 숨을 고르게 된다는 걸.


그래서 결심했다.

**오늘만은 뛰지 않기로.**

카메라 대신 마음을 들고,

모든 장면을 내 눈으로 새기기로.

그건 여행이 아니라,

**머무름의 연습**이었다.


---


다음 날 우리는 **페어몬트 샤토 레이크 루이스**로 향했다.

그곳은 내 오랜 버킷리스트의 마지막 칸이었다.

하룻밤 숙박비는 1,200달러가 넘는다고 했고,

10월까지 모든 객실이 **풀 부킹** 상태였다.

하지만 우리는 믿기 힘든 행운을 받았다.

“방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그 한마디 덕분에,

예상치 못한 선물이 내게 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야호!”


그날의 나는 운이 좋았고,

행복했고,

세상에게 사랑받는 기분이었다.

창문을 열면,

에메랄드빛 호수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하루 종일

유키 구라모토의 〈Lake Louise〉를 틀어놓았다.


피아노 선율이 방 안을 천천히 감쌌고,

그 소리는 내 심장과 호수의 물결을 이어주는 다리 같았다.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었다.

빛이 방 안으로 들어오고,

호수는 내 방 안에 들어왔다.


나는 서 있었다가, 앉았다가,

그저 존재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배웠다.

‘**충분하다**’는 감정을.


음악, 빛, 호수, 그리고 나.

그 네 가지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


조금 떨어진 곳, **로레인 호수.**

레이크 루이스보다 더 푸르고, 더 고요했다.

하늘이 그대로 잠겨 있었고,

바람 한 점 없는 물 위로 구름이 미끄러졌다.

나는 카메라를 들었다가 이내 내렸다.

렌즈보다 마음이 먼저 떨렸기 때문이다.


그 순간만큼은

‘남기는 것’보다 ‘사는 것’이 중요했다.

그 풍경은 내 안으로 들어와

기억이 아닌 **체온**으로 남았다.


---


밤이 내리자,

성의 창마다 불빛이 켜졌다.

마치 별들이 호텔 안으로 이사 온 듯했다.


로비의 벽난로 앞에서

나는 조용히 하루를 정리했다.


밖은 어둠, 안은 불.

그 사이에 우리가 있었다.


나는 일기를 썼다.

> “이 하루를 잃지 않게 해 주세요.

> 내 인생이 다시 흔들릴 때,

> 이 호수의 색과 이 성의 온도를 기억하게 해 주세요.”


그 문장을 적으며 알았다.

이건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나를 다시 믿게 만든 시간.**


그날의 공기,

피아노의 잔향,

유리창에 부서지던 햇살,

그리고 떨리던 내 마음까지 —


나는 그 모든 순간을 지금도 마음 한편에 살려두고 있다.


그건 잊고 싶지 않았던 하루이자,

**아직도 나를 살아 있게 만드는 하루**였다.


밴프 산

밴프 타운

레이크 루이스

모레일 레이크


나는 지금도 이곳을 상상하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미소를 짓는다

또 언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지금도 벌써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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