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리스본에서 길을 잃었고, 온기를 찾았다

지도보다 마음이 먼저 반응했던 도시,

by 헬로 보이저
리스본 항구 독일 신사

트램 28번 출발지점 골목길



리스본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하지만, 그 길 끝에서 온기를 찾았다


새벽 6시, 리스본 항구에 도착했다.

새벽 공기가 유난히 신선했다.

대서양을 건너온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도시는 물빛 속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그 순간, 이 도시는 나를 잠시 잃어도 되는 곳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크루즈 갑판 위, 독일 신사분에게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라이즈는 어디일까요?”
그 독일 신사는 잠시 웃으며 대답했다.
“노르웨이 로포텐 제도… 그 하늘은 정말 잊을 수 없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없었지만 발길은 자연스럽게 벨렝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언덕길, 돌바닥, 굽이굽이 이어진 골목.

중간에 트램 28번에 올라 리스본의 숨결을 느끼기도 하고,

전망대에서 잠시 멈춰 주황빛 지붕과 파란 강을 바라보기도 했다.


몇 번을 골목에서 방향을 바꿨는지도 모르겠다.

익숙한 지형이 아니니, 마음도 점점 조급해졌다.

그러다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과 함께

어지럼증이 밀려왔다.

주변의 모든 것이 빙글빙글 돌고,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가까운 벽에 기대어 천천히 숨을 고르며

다시 한 걸음을 떼기까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는다는 건

단순한 방향의 문제가 아니라

몸과 마음 전체가 동시에 흔들리는 일이었다.


그날 우리는 8km를 걸었다.

하루 종일 리스본을 걸으며 이 도시의 숨결과 결을 천천히 느껴갔다.


긴 골목과 트램길을 따라

도시의 무늬를 밟아가듯 걷다 보니,

리스본 강가에 위치한 타임 마트가 눈에 보였다


그곳에서 나는 망설임 없이 문어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노릇하게 구운 문어 위로 부드럽게 뿌려진 마요네즈,

바삭한 감자칩과 함께 나온 그 한 접시는

하루를 조용히 감싸 안는 위로였다.


아… 이건 하루를 통째로 위로해 주는 맛이야.


그 조용한 위로의 방식.

그것이 바로 리스본이 주는 다정함이었다.


산타 후 스타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땐

오래된 철골 구조물이 시간을 들여다보는 망원경처럼 느껴졌다.

돌계단을 오르며 숨이 차올랐지만,

그 순간조차 이 도시의 리듬에 맞춰진 듯했다.


알파마 지구.

비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

바람에 펄럭이는 세탁물,

창문마다 흐르던 파두 음악.

그곳에서는 풍경이 아니라 감정을 수집하게 된다.


산타 루치아 전망대에서 본 리스본은

주황빛 지붕과 푸른 강, 그리고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트램.

그 풍경을 조용히 가슴에 담았다.


알파마 지구 언덕 중턱,

리스본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인 리스본 대성당(Sé de Lisboa)에 들어섰을 때,

잔잔한 기도가 흘렀다.

12세기에 세워진 이 성당은

지진과 전쟁 속에서도 꿋꿋이 서 있었던 도시의 기억이었다.



리스본은 수많은 시간을 견뎌낸 도시다.

1755년, 대지진과 화재, 쓰나미가 도시를 삼켜버렸고,

그 충격은 유럽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폐허 속에서 리스본은 다시 일어섰다.

직선거리와 넓은 광장이 있는 계획도시로,

바로크에서 계몽주의 도시로 변모한 그 순간은

포르투갈 근대의 서막이었다.


그리고 1974년.

리스본은 총성이 울리지 않은 혁명을 경험했다.

사람들은 군인의 총구에 붉은 카네이션을 꽂았고,

그 꽃은 독재를 끝낸 상징이 되었다.

그날의 무혈혁명은 지금도

카페, 서점, 성당 안에 조용히 스며들어 있다.


해가 저문 뒤,

전망대에 앉아 리스본을 바라봤다.

주황빛과 보랏빛이 겹쳐진 하늘 아래,

도시는 조용히 하루를 마감하고 있었다.


이 도시는 작지만, 15세기엔 세계 지도를 다시 그리던 곳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지금의 리스본은 아픈 과거를 끌어안고,

시간의 무늬를 타일처럼 껴안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날의 리스본은,

잠시 나를 잃어도 괜찮았던 하루였다.

어쩌면 나를 다시 찾아준 도시였는지도 모른다.


프라카 두 코메르시우산타 후 스타 엘리베이터 피게이라 광장 기마상

타임아웃 마켓 R. Ribeira Nova 50

Ponte 25 de Abril 벨렝 예술 조형물 타구스 강가 돌탑



리스본 꼭 가야 할 감성 명소 10곳

1. 알파마 지구 – 리스본의 가장 오래된 구역, 골목마다 시간이 겹쳐진 기억의 마을
2. 산타 후 스타 엘리베이터 – 도시의 언덕을 관통하는 수직의 시간 통로
3. 상 조르제 성 –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주황빛 지붕과 강, 그리고 바람
4. 트램 28번 노선 – 덜컹이는 리듬과 함께 도시를 한 폭의 그림처럼 스치는 노란 선
5. 리스본 대성당(세 대성당) – 로마네스크와 고딕이 조용히 겹쳐지는 고요한 성소
6. 벨렝 지구 – 항해와 발견, 제국의 영광과 그늘이 공존하는 시간의 항구
7. 제로니무스 수도원 – 섬세한 장식과 하늘을 닮은 아치, 기도보다 깊은 침묵
8. 파두 박물관 – 이 도시의 슬픔과 노래가 어떻게 하나의 문화가 되었는지 알 수 있는 곳
9. 미라도우루 다 세뇨라 두 몬테 – 해 질 무렵, 도시 전체가 물드는 고요한 전망대
10. 타임 아웃 마켓 – 여행자와 현지인이 함께 나누는 미각의 광장, 감정도 맛처럼 흐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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