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그놈과의 '상생 프로젝트'
예전 글 Ep 1. 솔잎이 싫어진 서른 살 송충이는 어디로 갔을까? 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24살의 내가 30대의 나를 상상하며 적어 내려간 꿈은 세 가지였어요.
1. 한국이 아닌 곳을 베이스로 삼아 스스로 개척한 삶을 살기 (되도록이면 샌프란시스코!)
2.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 다국적 글로벌 기업에서 유창한 영어로 밥벌이하기
3. ‘한국인이지만 한국인이 아닌 남자’ 만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랑에 빠지기
30대가 된 지금, 감사하게도 제 인생은 그때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멋지게 펼쳐졌지만, 아직 이루지 못한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유창한 영어’에요. 오늘은 이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저와 남편은 1년에 한두 번 싸울까 말까일 정도로 자주 다투진 않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첫 싸움의 원인이 바로 '영어'였던 것 같아요. 남편은 여러 나라를 오가며 자라서 영어를 모국어처럼 자연스럽게 쓰는 사람이고, 저는 한국에서 나고 자라 영어를 후천적으로 배운 케이스입니다. 남편은 한국어로 웬만한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어려운 한자어나 속담, 사자성어 같은 건 잘 몰라요. 그래서 저와 남편의 대화는 주로 한국어를 베이스로 영어 단어를 섞어 쓰는 콩글리쉬로 이뤄집니다.
어느 날, 유난히 회사에서 회의가 많아 8시간 이상 초긴장 상태로 영어에 시달리던 저는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왔습니다. 위로를 기대하며 “오늘 유난히 영어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라고 푸념을 늘어놓았죠. 그런데 MBTI ‘T’인 남편에게는 그날도 자기에게 입력된 ‘문제점’을 즉각적으로 ‘해결책’으로 바꾸려는 강박이 발동됐던 것 같아요.
“너가 여기 San Francisco에 살면서 designer로 일하는 게 꿈이었잖아, 그치?”
“그치.”
“그러니까 영어는 unavoidable 하고, 덜 힘들기 위해서는 English study를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 그 간단한 걸 누가 몰라? 내가 평생 얼마나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살아왔는데, 아무리 용을 써도 여기서 태어난 5살짜리 조카보다도 영어를 못한다고. 너처럼 어린 시절에 자연스럽게 영어를 습득한 사람은 이 좌절감을 절대 이해 못 할 거야.”
“근데 우리 팀에도 old 한 담에 미국에 온 coworker가 있는데, 매일 한 시간씩 English study를 한다고 하더라고. 너도 after work, 조금씩 해보면…”
“아, 싫다고! 하루종일 디자인에 치이고 영어에 치이다가 집에 와서까지 또 책 펴고 그걸 붙잡고 있고 싶겠어? 나 노력하는 건 정말 질리도록 했어. 이제 싫어.”
“근데 공부를 안 하면 영어는 improve 안 할 거고, 그러면 계속 영어 때문에 힘들어할 거고, 매일 complain 할 거고…”
“너한테 컴플레인 안 할게, 그럼! 내가 맨날 말하는 것도 아니고 백 번 중에 한 번 말한 건데… 너무 힘들어서 그냥 위로 한마디 바랐던 건데…”
“위로도 좋지만, 나는 너가 앞으로 덜 힘들길 바라서… 그래서 매일 조금씩 English study를 하면…”
“그만! 잉글리시 스터디 얘기 그만!!!!!”
이 대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제가 이번 편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영어 울렁증을 극복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열심히 영어를 공부하자는 게 아닙니다.
늦은 나이에 외노자로서의 삶을 선택한 이상 영어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고, 그래서 오늘은 제가 이 영어란 놈과 여태까지 어떻게 지내왔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그럭저럭 잘 지내는' 법을 나름대로 찾아가고 있는지, 그 고민의 과정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한국에서 ‘주요 과목’이라 하면 '국영수'잖아요? 그러니 영어는 한국인들의 교육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과목입니다. 어릴 때부터 극명한 문과 성향을 가졌던 저는 수학 빼고 국어와 영어는 둘 다 좋아했지만, 특히 영어는 뭔가 더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영어 유치원에 다니거나 할 정도로 영어 조기교육을 받은 건 아니었지만, 영어가 재미있어 공부에 빠졌고, 그래서 학창 시절 내내 ‘영어 좀 하는 애'로 통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 저는 정말 ‘한국식으로’ 영어를 공부했어요. 중간고사, 기말고사 때는 교과서에 나온 영어 본문을 통째로 외우고, 학원에서는 성문 종합 영어 책의 문법 공식과 예시들을 낱낱이 암기했죠. 또 토플을 공부할 때는 수첩에 적어 다니며 영단어를 하루에 400개씩 외우곤 했습니다.
대학 입시 때쯤, ‘글로벌 전형’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이건 해외에서 살다 온 친구들만 지원할 수 있는 전형이더라고요. 그들이 상대적으로 쉽게 대학에 들어가는 걸 보고, ‘나는 왜 어린 시절 해외 경험이 없어서 이 전형에 지원조차 못하지?’하며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대학에 들어가니 그런 유학생 친구들이 참 많더라고요. 이미 영어가 너무 편해, 내가 영어 공부에 쏟아야 하는 시간을 아끼고, 대신 놀거나 다른 과목에 집중할 수 있는 친구들. 또다시 배신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순수 국내파’로 여기까지 온 것에 자부심을 가지며 영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취업 준비에 필수였던 토익(TOEIC)과 오픽(OPIc)도 열심히 공부해서 높은 점수를 받았고, 구술 능력 평가 시험인 오픽에서는 심지어 최고 등급인 ‘AL’을 받았어요. 다들 원어민도 받기 힘든 등급이라며 놀라워했지만, 사실 그것도 한국식으로 무식하게 공부한 결과였어요. 저는 예상 질문들을 모두 뽑아내서, 그 모든 질문들에 대한 저만의 답변 스크립트를 다 작성했고, 그걸 달달 외워서 시험을 봤었거든요.
스무 살 초반에 떠난 샌프란시스코에서의 교환학생 생활은 제 ‘잘난 줄 알았던 영어’가 얼마나 쓸모없는지를 처음으로 뼈저리게 깨닫게 해 준 경험이었습니다. 영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사람들 속에서, 처음에는 ‘하이’나 ‘땡큐’ 같은 쌩 기본적인 표현조차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 완전히 벙어리가 된 기분이었죠. 미드 속 등장인물 같은 사람들이 눈앞에서 활보하는데, 모두들 제 구린 영어를 듣고 비웃을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약에 취한 노숙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장면을 목격했는데, 그때 드는 생각이 “무섭다, 피해야겠다”가 아니라 “와, 저 사람도 영어를 나보다 훨씬 잘하네”였을 정도로 제 영어에 대한 불안이 컸던 것 같아요.
하루는 학교에서 ‘여가의 이해’라는 수업을 듣고 있었어요. 수업은 여가의 현대적 의미를 다루고 있었지만, 아무리 교양 수업이라고 해도 대학 수업치고는 놀라우리만치 유치해서, 모두 학점 채우기용으로 듣고 시간을 때우는 분위기였습니다.
어느 날 교수님이 “얘들아, 여가의 이해 수업이니까 오늘은 게임을 하자. 어떤 게임할지 아이디어 좀 내봐”라고 했고, 제일 앞에 앉아 있던 저에게 칠판에 나와서 학생들이 말하는 게임 이름을 적으라고 시켰어요. (‘대학' 수업 맞습니다…)
그때부터 학생들이 한 명씩 ‘Hangman’, ‘Pictionary’, ‘Charades’ 등등 게임 이름을 중구난방 외치기 시작했는데, 그들이 너무 빠르고 불규칙하게 말해서 발음을 정확히 들을 수가 없없어요. 게다가 미국식 게임 이름들은 저한테 너무 생소했죠. 그래서 계속 “뭐라고?”를 반복하며 철자까지 물어봐야 했습니다. 그러자 몇몇 미국 학생들이 “오 Shit, 쟤 대학생 맞아? 이 스펠링은 유치원생도 알겠다"라면서 비웃기 시작했어요. 그 순간 저는 마치 벌거벗은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끝까지 적어냈어요. 몇몇 학생들은 박수를 쳐주기도 했지만, 여전히 좌절감은 컸죠. 정작 제 시험 점수는 그들보다 훨씬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깟 게임 이름 좀 모른다는 이유로 똥멍청이 취급을 받았다는 게 너무 억울하고 서러워서, 수업이 끝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숨죽여 울었던 슬픈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날 이후로 영어와 저는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했어요. 교환학생 생활 10개월 동안 그놈과 죽도록 싸우고,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화해했다가, 또다시 싸우기를 징하게 반복했죠. 그렇게 영어와 저는 그야말로 애증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서른을 앞두고 석사 과정을 위해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온 지 어느덧 8년, 그동안 영어로 생활하며 밥벌이를 한 지도 6년이 되었네요.
가끔 한국에 갈 때면 지인들이 묻곤 합니다.
"미국에서 산 지 벌써 오래됐네! 이제 영어는 완전 원어민처럼 하겠다, 그치?"
아.니.오.
영어는 여전히 저를 괴롭히고, 하루도 빠짐없이 그놈 때문에 ‘이불킥’하다가 잠이 듭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아요.
하지만 영어와 지지고 볶으며 살아온 시간이 길어진 만큼, 이제는 그놈을 원망하고 싸우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그놈을 구슬리며 잘 공존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쉽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나아가야 할 긴 프로젝트죠. 그 과정에서 제가 배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영어를 쓰면서 자주 말문이 막혔던 이유는 머릿속에서 너무 많은 생각들이 동시에 오갔기 때문이었어요. 예를 들어, 회의 중 “왜 이 디자인이어야 하죠?”라는 질문을 받으면, 제 머릿속에서는 다음과 같은 생각들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습니다.
“왜 이 디자인이어야 하냐구? 음... 얼른 기억을 떠올려보자. 처음에는 A, B, C 세 가지 옵션을 고려했었지. 엔지니어 팀과 논의한 후, C 옵션은 다음 단계에서 다시 검토하기로 했어. A와 B 옵션 중 고민했을 때, A가 우리의 주요 목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서 A를 선택했어. 오케이, 이제 빨리 영어로 번역해보자. At first, we considered three options: A, B, and C. 여기서 문장을 한 번 끊어주는 게 좋겠지? 아, ‘three’ 발음 잘해야 되는데... ‘th’ 발음은 항상 문제라서. 그 다음에 ‘그러나’는 ‘However’가 나을까? ‘엔지니어 팀’... ‘engineer team’인가, 아니면 ‘engineering team’인가? 앞에 ‘the’가 붙어야 하나? ‘a’가 붙어야 하나? ‘다시 검토하다’... 사람들이 자주 쓰는 단어가 있었는데, 뭐더라… 아, ‘revisit’! ‘We decided to revisit option C’라고 하면 좋겠네. 그리고 ‘A, B 옵션 중 고민했을 때’, ‘고민’을 뭐라고 하더라? 그냥 ‘When choosing between options A and B’라고 해야겠다. ‘주요 목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어서...’ ‘it solved our main goal better?’ ‘better addressed our main goal’? 아 몰라, 이제 진짜 빨리 대답해야 해.”
이렇게 많은 생각이 한꺼번에 오가다 보니, 결국 대답할 타이밍을 놓치거나, 핵심에서 벗어나 아무 말이나 씨부리게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게다가 이런 식으로 머리를 계속 돌리다 보니 에너지가 고갈되고, 회의 자체가 점점 더 두려워지더라고요. 이러다간 진짜 제 명에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모든 걸 한꺼번에 생각하려 하기보다는 정말 중요한 부분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덜 신경 쓰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질문에 대한 핵심 내용’이고, 덜 중요한 것은 ‘발음, 문법’ 같은 부분이에요.
물론 ‘th’ 발음이 정확하면 좋고, ‘a’나 ‘the’를 제대로 쓸 수 있다면 훨씬 더 프로페셔널하게 보일 수 있겠죠. 하지만 아무리 혀를 굴려가며 발음을 연습하고, 문법책의 예문을 달달 외우면서 문법을 공부해도, 긴박한 상황에서는 결국 뭐가 맞는지 생각도 안나더라고요. 그래서 제 한계를 인정하고, ‘완벽한 영어’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는 것이 영어와 오랫동안 공존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연습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02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윤여정 배우는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한국인들의 가슴을 웅장하게 했어요. 그녀의 수상 소감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는데, 이는 그녀의 진솔함과 유머, 그리고 오랜 경력에서 우러나온 내공 덕분이었죠. 비록 '완벽한 영어'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말과 태도는 언어를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저는 최근 장안의 화제인 넷플릭스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의 에드워드 리 셰프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결승전 미션에서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건 요리를 만들었는데, 한국 떡볶이를 재해석해 고추장 카라멜을 곁들인 디저트를 선보였죠. 재미교포인 그의 한국어는 발음이 서툴고 문법도 엉망이었지만, 그의 스토리와 요리에 대한 진정성에 감동한 사람들은 그가 표현한 ‘한국의 따뜻함과 환대’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언어는 분명 중요한 의사소통의 기본 도구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언어 너머에 있는 근본적인 가치인 것 같아요.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완벽한 문장이나 화려한 언변이 아니라, 그 사람만이 가진 고유의 매력이니까요.
저 역시 늘 ‘영어 탓'을 하며 쭈뼛쭈뼛 뒤로 숨기보다는, 영어가 좀 부족하더라도 빛날 수 있는 저만의 스토리와 내공을 키우는 데 더욱 집중해보려 합니다.
이렇게 영어, 그놈과의 '상생 프로젝트'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계속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