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은 내가 만든 핑곗거리일 뿐

생각을 담는 글쓰기 7일차

by 양경은


처음으로 동치미를 만들어봤다. 예전에 배추나 무를 작게 잘라서 물김치를 만든 적은 있다. 두어 번 했는데 모두 실패했다. 블로그 레시피를 여러 가지 뒤져서 가장 쉬운 방법을 따라 통배추로 물김치를 담았다. 이상하게 배추 색깔이 갈색으로 변했다. 먹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고 몇 주 동안 김치냉장고에 보관했다. 한 달여를 기다렸다가 미련 없이 버렸다. 이후로 물김치는 만들지 않았다.



지난주에 남편이 동치미를 먹고 싶다고 했다. 하기 싫다고 몇 번을 얘기를 해도 남편은 요지부동이다. 나는 또 마음이 약해진다. 둘이서 채소가게에 재료를 사러 갔다. 무 다발이 매장 앞에 널려있다. 한 다발에 무가 다섯 개 정도 달려있다. 집에 와서 블로그 레시피를 뒤지며 간단한 방법을 참조해서 만들었다. 동치미를 완성한 후 김치통에 무 덩어리가 둥둥 떠있는 모습을 보니 나 자신이 대견스럽니다. 레시피대로 대추, 쪽파, 배까지 넣으니 그럴싸한 동치미가 되었다.















처음 해보는음식을 만들 때 인터넷 레시피를 수십 번을 보곤 한다. 한번 순서를 보면 기억을 할 수 없다. 이런 과정을 두어 번 거치면 다음에는 레시피를 보지 않고 만들 수 있게 된다. 내가 직접 만든 음식은 맛에 상관없이 자부심이 생긴다. 예전에 김치는 친정엄마나 시어머님께서 만들어주셨다. 가끔 옆에서 어른들이 만드실 때 도와드리기만 했었다. 왜 이 재료가 이 과정에 필요한지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되었다. 이제는 양가 부모님이 다 안 계시니 김치는 내가 만들어 먹는다. 처음에 혼자서 김치를 만들 때는 자신이 없었다. 음식 솜씨도 없는 내가 과연 김치를 만들 수 있을까 걱정이 가득했다. 여러 번 해보니 가끔은 기가 막히게 맛난 깍두기나 겉절이 김치가 탄생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가족들에게 자꾸만 들이대면서 "맛있지?"를 물어본다. 그럼 진짜로 가족들이 엄지 척을 날리면서 좋아해 준다. 원래 김치 하나 맛있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는 날도 있지 않은가



예전에 시댁이나 친정에 가면 음식을 바리바리 싸주셨다. 고춧가루, 생선, 말린 나물, 삶은 시래기, 콩, 팥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대부분 싸온 음식들은 냉동실로 직행한다. 언제 가져온 지도 모르는 음식재료들이 냉장고에 쌓여만 간다. 직장 다닐 때는 집 밥보다는 외식을 많이 해먹는 편이었다. 어쩌다가 집 밥을 먹을 때도 간단한 요리만 해먹었다. 어른들이 정성스럽게 싸주신 재료들은 사용하지도 않고 유통기한이 지나가 버린다. 가끔 냉장고 청소를 한다는 것은 묵혀둔 온갖 재료들을 버리는 것이다. 재료를 가져올 때는 어떻게 해먹으라고 말씀을 해주시지만 집에 오면 굳이 먹게 되지도 않고 어떻게 해먹는 건지 잘 몰랐다. 그런 것들이 얼마나 건강한 밥상에 소중한 재료인지 느끼지도 못하고 마구 버렸다. 직접 음식을 많이 만들고 가족들과 나눠야 온갖 음식재료의 소중함을 비로소 느끼게 된다. 지금은 누가 파, 마늘, 고춧가루를 준다면 얼른 달려가서 받아올 거다. 그런 식재료가 얼마나 다양하고 소중하게 쓰이는지 알게 되었다. 이제는 이런 재료들을 시기적절하게 사용해서 맛있는 음식으로 재탄생시킨다. 내가 만든 음식들이니 함부로 버리지도 못하고 끝까지 먹으려고 애쓴다. 어떤 때는 가족들에게는 한상 차려주고 나는 조금씩 냉장고에 남아 있던 음식만 혼자 먹는 경우도 있다.







자신감이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시작했던 김치 담기는 이제는 척척해낸다. 당연히 레시피는 필요 없다. 음식을 자주 하게 되니 온갖 재료의 필요성과 소중함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김치는 가정주부로서 큰 도전이었다. 남들은 어떻게 여길지 모르지만 왠지 한국에서 김치를 직접 담그면 요리 좀 하는 것 같은 자부심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김치가 도전이 되듯 우리 삶에는 크고 작은 도전의 연속이다. '나는 할 수 없다' 를 되뇌이며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도전 후에 느끼는 만족감은 영원히 내 것이 될 수 없다. 김치 그까짓 것이 뭐라고 이렇게 도전이라는 단어까지 쓰면서 말하냐고 따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 적어도 김치 담기는 음식 만들기에서 절대로 범접할 수 없는 대단한 영역이라 여기며 살았다. 남들이 우스워 보여도 당사자는 망설이다가 어렵게 시작하는 것이 새로운 경험이고 도전이다. 실패해서 버린 김치도 있지만 지금은 잘 해내고 있다. 난 음식 못해라는 고정관념도 결국은 내가 만든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 고정관념 속에 숨어서 도전을 피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내가 만든 고정관념이라는 핑곗거리에서 나와야 한다. 이렇듯 내가 만든 규정의 틀은 여러 가지가 있을 거다. 변하려고 날갯짓을 조금씩 하기 시작하면 다른 모습으로 바뀌고 있을 거다.







고정관념은 나를 우물 안으로 가둬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의문들을내부에서 사전 검열하도록
장치를 만들어 나의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알았다.


정회일 『읽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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