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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메로나 Jun 05. 2024

미주신경성 실신(1)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하여

오늘 또 늦어? 아빠 빨리 오세요~ 해봐

빠빠~~ 오셔~~

알았어 최대한 일찍 와

애 얼굴도 못 보고 와서 잠만 자지 말고


어 알겠어 먼저 자고 있어 금방 갈께


남편이 늦는다는 전화를 했다


그런 날이 있다

한 번도 일어나지 않던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날.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인데도

몹시 이상한 기분이 들었던 그런 날.


남편은 포부가 크고 꿈이 명확한 사람이었다

이 나라 저나라 원하는 목표를 세워

가고 싶은곳에 가고, 하고 싶은 것들을

계획한대로 해나갔다

6년을 사귀는 동안 참 바쁘게 사는 모습이 좋았다


우리 아빠는 학교 교직원이셨다

항상 6시반이면 퇴근을 하시고 러닝셔츠에 반바지를 갈아 입고 화분들에 물을 주시곤 했다

술약속을 잡고 나가시는 날도 종종 있었지만

아빠가 퇴근하시고 반복하시는 일들을 볼 때마다 안정감이 들면서도 묘한 감정이 들곤 했다

큰 갈비집 사장님이 된 아빠나 멋진 사업가 아빠를 몰래 그려보곤 했다


그래서 나는 일중독 남편과 결혼 후 죄없는 아빠에게 내 선택에 대한 죄를 묻곤 했다

아빠가 메리야스 입고 화분에 매일 물만

안줬어도 우리 남편이랑 결혼 안 했을꺼야..

하고 말이다 다행히 아빠는 껄껄 웃어주셨다



그날은 첫째가 10개월 정도 되었던 어느 날


남편은 강동구의 지하철 화장실에서 나오다

쓰러져서 구급차로 옮겨졌다

전화를 받을 때의 그 생경하고 스산한 느낌은

아직도 잊기가 힘들다

서있던 채로 그대로 넘어져 머리에서 피가 나서

구급차를 불렀다고 한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재빨리 택시를 불렀다

기저귀 가방에 정신없이 아이물건을 대충

챙겨 넣고 아이를 아기띠에 넣으며 몸을

떨었다

그때 나는 아직 31살이었고 기사 아저씨에게

죄송하지만 엉엉 울면서 갔다

아저씨는 끝내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아기띠를 한 나는 숨 가쁘게 뛰어 병실로 올라갔다

8인실이었는데 비슷한 증상으로 머리나 뇌를 다친

분들이었다 숨을 고르며 몸을 떨고 두리번 거리는

내 품속의 아기를 보고 1번 침대 아저씨가 천천히

어눌하게 말씀하셨다

아...... 기.........가..... 에.....뻐....


옆에서 아저씨의 침을 닦아주시며 간병인

아주머니가 애기가 이쁘지? 하고 말씀하셨다


끄으으윽.....하고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울음소리를 참으려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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