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여수, 보성, 하동 맛의 기억을 찾아서 2편
이 글에 정리한 하동의 식당과 찻집은 개인적으로 정말 아끼는 곳들이다. 사랑하는 이유는 모두 '추억'때문이다. 행복했던 기억들과 저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리면 혼자 조용히 마음에 담아 두고도 싶었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그리운 곳들이다.
한국의 알프스 하동 풍경을 바라보며 마시는 잭살차
이런 풍경 속에서 차를 마실 수 있었다니 지금 사진으로만 봐도 다른 세계 꿈결같은 곳이다. 하동 시내에 있는 다원 입구는 길 가에 작게 나 있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우리도 다시 한번 뒷골목을 돌아왔다. 길가의 '매암차박물관'이라는 표지를 잘 찾아야 한다.
입구에서 만난 주인아저씨에게 인사를 하자, 아저씨는 "오늘은 쉬는 날인데... 연휴라 오전에도 손님을 받았으니 에이~ 그냥 들어오세요. 제가 잠시 후 차 설명드리러 갈게요 허허허" 하시며 휴일에 찾아온 우리를 받아주셨다. 다원 입구에 들어설 때만 해도 그 안에 이렇게 푸르르고 탁 트인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질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꼭 비밀의 정원 입구로 들어온 것 같았다.
하동은 차의 고장인만큼, 이 동네를 방문한다면 자의든 타의든 꼭 한잔의 차를 마시게 될 것이다. 당시엔 몰랐는데 돌아와서 보니 이곳은 수요미식회에도 소개된 곳이었다. 한국 전통 홍차 '잭살차'를 제공하고 있었다. 주인 아저씨는 찻잔을 세팅해주시며 잭살차레 대해서 설명해주셨다. 차를 다 마시면 이곳에서 재배한 녹차도 있으니 원하는 차를 선택해 또 마시라고 해주셨다. 차를 다 마시면 3천 원의 차 값을 통에 넣고 내가 마신 찻잔과 주전자를 씻고 가면 된다고 하셨다. 단돈 3천 원을 내고 유유자적 느긋하게 잭살차를 마시고 녹차를 마셨다. 차를 한 잔 두 잔 술 마시듯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자니 이런 신선놀음이 어디 있나싶다! 정말 몇 시간이고 하염없이 이야기하고 마시겠다. 주소) 경삼남도 하동군 악양면 악양서로 348 매암차 박물관
도대체 이 짭짜름한 라면의 정체는 뭔가요
고택에서 오전 내내 여유를 부리다가 출출한 배를 움켜주고 하덕마을 앞 '타박네'를 찾아왔다. 찐빵이라는 강렬한 레드 간판과 계란 같은 찐방사진이 먹을 것이 있소!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가게 안에 들어가면 참 묘한 분위기다. 군고구마 기계부터 추억의 소품들이 옛날 옛적에 박물관에 온 것 같기도 하고, 찬송가가 나오면서 희망과 재미를 주는 문구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주인분의 긍정 마인드가 느껴진다. 가게를 관찰하기 바쁘다.
우리는 라면, 만두, 찐빵을 모두 시켰는데 그중에 잊을 수 없는 맛을 선사한 라면. 사진도 한 장 남기지 못할 정도로 맛있던 라면!! 일단 라면이 우리가 평소에 먹는 국물에 담겨 있는 스타일이 아니다. 국물을 졸인듯 자글자글하게 끓여진 라면엔 당면과 야채들이 들어있는데... 친구는 분명 이건 그냥 스프 국물이 아니라 확언했다. 라면 맛에 반한 우리가 맛있다를 연발하자, 주인아주머니는 웃으며 라면은 나만의 비법이 있다고 했다. 진실이 궁금할 뿐!! 만두와 찐빵 김치까지도 모두 맛있다. 완벽한 동네 간식 집이다. 충분한 한 끼로도 칠만하다.
옛날 옛적에 무량원 식당엔 마음씨 좋은 할머니가 살았어요
무량원 식당은 하동 숙소 주인 내외 분께 추천을 받은 식당이었다. 주인 분들도 이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간다며 나가셨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숙소 옆 팥빙수집 주인아저씨도 이곳에 식사하러 자주 오신다고 했다. 하동 주민들이 믿고 밥 먹으러 가는 식당의 느낌이다. 우리에게 식당을 추천해준 숙소 내외분께 고맙다면서, 식당 이모님들께 물김치라도 챙겨 보내야겠다고 이야기하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분들 참 좋죠? 너무 고마운데 우리가 줄게 김치밖에 더 있나?"하시던 할머니의 말에서 뭔가 이웃사촌처럼 사람 사는 맛이 느껴졌다.
메뉴는 청국장과 재첩국. 재첩은 섬진강 재첩을 떠올리게 만들었고(나도 이 식당에 오기 전에 강에서 재첩을 줍다 왔다 ^^) 청국장의 맛이 평소에 먹던 것과 조금 달랐다. 뭔가 덜 짜고 더 건강한 맛인데 밥을 쓱쓱 비벼먹으면 맛이 배가된다. 간판에 청국장 전문점이라고 쓰여 있었던 이유가 있었구나! '반찬은 리필 불가'라는 안내가 있었는데 주인 할머니는 우리들에게 먹고 부족한 반찬이 있으면 얼마든 더 줄 수 있다고 많이 줘서 남길까 봐 그렇다 하셨다. 찬이 나오고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정말 우리 할머니랑 우리 이모들이 만든 것 같은 반찬들이었다. 이런 정성 가득한 반찬을 남긴다면 얼마나 아깝겠냐 말이다!! 맛은 또 얼마나 건강한지요.
이 식당의 주인은 흰머리의 할머니셨다. 같이 요리도 하고 주문도 받아주시는 이모님들도 있으셨는데 같이 밥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꼭 가족 같았다. 특히 할머니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일단 지긋한 흰머리에 제법 연세가 있어 보이셨는데 엄청 씩씩하고 에너지가 넘쳐 보이셨다! 본인도 식사를 하시면서도 당시 식당의 유일한 손님이었던 우리들을 틈틈이 살피시며 "맛있냐? 뭐 더 줄까? 이런 김치 먹어볼래?"라고 챙겨주셨다. 그리고는 이 큰 한옥이 본인의 집이자 식당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이 큰 공간이 그냥 내 집이었다면 얼마나 허하고 쓸쓸했겠냐, 청소만 하기도 힘들었을 거다. 하지만 이렇게 식당을 하니 손님들도 오고, 사람들도 함께 있고 얼마나 좋냐고 그래서 잠도 잘 자고 그 힘으로 살아간다'라고 말씀하셨다. 식사를 다 하고 나서는 우리를 입구에서 배웅해주시며 "하동에서 좋은 기운 많이 받고 가세요"라고 인사해주셨는데 나중에 식당을 나와 생각하니 꼭 동화 속에 나오는 할머니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옛날 옛적에 무량원 식당엔 요리를 잘하는 흰머리 할머니가 살고 있었어요 하는...
딱 한 끼 '점심' 만 먹을 수 있는 식당
(2017년 10월 다시 방문한 하동에서 집밥이 영업을 종료한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지금은 영업하지 않지만, 추억으로 글은 남겨둡니다.)
하동 숙소를 취재 온 기자분들이 집밥을 먹어봤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셨다. '집밥'은 점심에만 여는 하동의 식당 이름이었다. OPEN은 11시 30분, CLOSE는 표시가 없다. 그 이유가 점심시간에만 오픈을 하고 재료가 다 소진되면 문을 닫기 때문이다. 또한 매일의 점심 메뉴도 그날 그날의 재료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오늘의 점심이 뭔지는 아래와 같이 입구에서 확인했다. 우리가 갔을 땐 장어국이었는데... 난 장어국을 여기서 처음 먹어봤다.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점심부터 든든하게 몸보신했다. 여긴 왜 온통 다 건강한 것들 뿐인가!
이 식당도 우리에게 반전을 선물했는데... 첫 번째 반전은 음악이었다. 가게를 들어서는 순간 '윤상'의 'waltz'가 식당에서 나오고 있었다. 여행 중 계속 이 음악을 무한반복하며 들었었고 요즘 식당에서 나올 법한 음악도 아니었는데 하동의 밥 집에서 바로 그 노래를 듣게 되다니 이 식당이 운명처럼 느껴졌다. 다음 반전은 식당 안에 있는 주인아주머니의 뜨개질 소품 때문이었다. 안이 더 아기자기하고 예쁜 식당이었다. 심지어 뜨개질 한 소품을 팔기도 했다. 점심만 파는 밥 집일 줄 알았는데 그 안에는 예상외의 식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진짜 이야기가 있는 숨겨진 유명한 빙수집
이 빙수집은 유일하게 여행 전부터 와보고 싶었던 집이었다. '하동에 가면 맛있는 팥빙수집이 있대'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설레며 내려왔다. 그리고 휴일 내 이 가게가 문 열기를 기다렸다. 방문 후 팥빙수도 빙수지만 주인아저씨와의 이야기가 너무 인상 깊어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의 가게가 되어버렸다. 보슬비 내리던 초여름 이곳에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먹던 빙수의 맛을 어찌 잊으리오.
이 빙수 가게는 이미 창원, 진해에서 유명한 빙수가게의 '팥 이야기'의 하동 점이다. 모두 주인 아저씨와 형제 가족들이 하는 빙수가게다. 하동점은 악양 '하덕마을' 입구까지 들어오지 않는다면 찾기 힘든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이 빙수집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없는 이곳에 가게를 오픈 한 이유는 아래 글에 자세하게 담았다. 이곳에 여름에 간다면 팥 알갱이가 온전히 씹히는 빙수에 달달한 홈메이드 잼을 곁들인 시원한 빙수가 더 없이 좋을 것이다. 실은 맛을 떠나서 어떤 계절이라도 다시 찾고싶은 곳이다.
빙수집 아저씨와의 이야기: https://brunch.co.kr/@julyjoje/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