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프탑을 노려라! 자취방 빨래 테러범

열한 번째 이야기(2020~2021)

by 세라

#11-1. 루프탑에서 만세를 외치다


나의 14번째 방은 3층짜리 빌라의 탑층이었다. 1년간 층간 소음의 트라우마에 시달렸기 때문에 그나마 층간소음으로부터 자유로울 확률이 높은 탑층으로 선택한 것이다. 오래된 빌라이긴 했지만 베란다가 딸려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가져본 베란다였다. 나는 집안에서 씻지도 않고 야외로 나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유리창 하나를 두고 있다고 해도 내부와 외부의 느낌은 완벽하게 달랐다. 빨래를 야외에 널었다. 물로 닦아도, 세탁기에 돌려도 지지 않는 얼룩이 햇빛과 바람에 놓아두기만 해도 말끔해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나는 작은 접이식 테이블과 의자를 사서 베란다에서 햇볕을 받으며 멍하니 앉아 있곤 했다. 새들이 옥상에서 옥상으로 날아가는 장면을 보면 왠지 의식하지도 못한 마음의 짐이 덜어지는 것 같았다. 또한 무탈한 하루가 주어졌음에 절로 눈물겹게 감사했다.


테라스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베란다인, 루프탑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옥탑방인 집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와이파이를 설치하며 아이디를 '루프탑'이라고 정했다. 내 나이 서른셋, 허름한 베란다에 서서 인생 처음으로 맛본 기쁨에 만세를 외쳤다. 마치 광인처럼. 무야호!



#11-2. 진짜 어려운 문제


잠을 잘 때 머리 두는 방향에 대해서 속설이 많다. 일명 '풍수지리설'이다. 여기서 문제.


북쪽. 죽은 사람이 눕는 방향이라고 하여 1순위로 기피하는 방향. 가위에 눌리거나 악몽을 꿀 수 있다고 함. 내 방에서는 이쪽으로 누우면 정면 시야에 창문이 보임.

서쪽. 해가 지는 방향. 기운이 줄어드는 방향이라고 함. 최대한 멀리 떨어지라고 하는 현관도 여기에 있음.

동쪽. 기운이 생하는 방향이라 하여 가장 권장됨. 하지만 우울증에 걸리거나 지저분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화장실이 있음.

남쪽. 동쪽처럼 햇빛이 들어오는 방향으로 많이 선호되는 방향. 하지만 주방의 뜨거운 화기를 받아 열 받는 일이 잘 생긴다는 부엌이 있음.


자, 당신의 선택은?



#11-3. 이사할 때 점 보러 가시나요?


인생 여러 문제의 거듭된 실패로 인해, 고백하자면 신과 미신의 세계에 발을 들이기도 했다. 하느님, 부처님, 장군님, 선녀님, 동자님…… 응? (-필자는 무교입니다-)


전세 대출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아 힘들어 하고 있던 때에 지인이 용한 무당을 알고 있다고 해서 선뜻 따라나선 적이 있다. 나는 이사운은 물론 직장운도, 금전운도, 연애운도, 결혼운도, 계속 이대로 엉망진창인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도착하니 TV에서만 보던 한복 입은 무당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당은 짤랑이(?)를 흔들고 쌀을 뿌리고 오방기를 뽑게 하더니, 나에게 처음으로 한 말이 "너 사고난다고 하네?" 였다. 그리고 질병에 빨간 불이 들어와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직장운도 없고 이사운도 없을 거라고 했다. 급기야 내 인생이 딱하다며 "무당을 울리다니……" 하며 눈물을 보이는 것이었다.


와, 그렇지, 그랬던 거야! 내가 운명이 더럽게 꼬인 사람이었던 거야! 무당도 울 정도로 재수가 없다잖아!


그렇게, 넘어갈 뻔했다. 무당은 내가 초 발원이나 부적 정도로는 안 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굿 손님'이라고 했다.


아, 이렇게 엉뚱한 이야기를 쓰게 된 건 14번째 집을 보러 다닐 때 한창 미신에 빠져 있던 이 친구가 그림자처럼 내 뒤를 따라다니면서 스마트폰에 나침반을 켜고 "여긴 아니야!" "여긴 기운이 별로야!" 하면서 뭐라도 아는 양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웃긴 기억 때문이다. 무당은 이사를 하면 집 앞에 막걸리를 하루 정도 놔두고, 소금을 담은 항아리와 돈을 넣은 복주머니를 달고, 집안의 모든 서랍을 열고 쑥향을 피우라고 지시했다.


집 구할 때 다들 이런 걸 고려하시는지 궁금하다. 나는 다행히 거의 저주에 가까운 말을 쏟아부은 무당 때문에 미신의 세계를 바로 끊어낼 수 있었다. 무당의 말은 '내 인생은 재수 없는 인생'이라는 낙인을 찍었고, 골치아픈 실패들을 설명할 쉬운 핑계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인생의 수많은 문제들이 내가 북쪽이나 서쪽 방향으로 자서 생긴 것은 결코 아니지 않은가? 동? 서? 남? 북? 내 편한 방향대로 이불 깔고 자련다!



#11-4. 극한 체험


루프탑에서의 첫겨울은 혹독했다. 집은 단열이 전혀 되지 않았다. 보일러를 켜도 소용이 없었다. 실내온도가 3도까지 떨어졌다. 물기가 있는 옷을 널면 빨랫대에 붙어 버렸고 치약도 딱딱해져서 잘 나오지 않았다. 전기난로, 전기장판, 전기방석, 수면양말, 흔드는 손난로는 내 몸의 일부가 되어 나는 그 모든 것과 항상 세트로 움직이는 기인(?)이 되었다. 하지만 난로 앞에서 아무리 발을 녹여도 피부 가죽만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나는 고산 지대로 올라온 것처럼 생각과 행동이 굼실굼실해졌다.


그리고 내 안의 광기를 발견하게 되었다. 친구가 "뭐해?" 하고 물으면 나는 내 얼굴을 때리며 "나 지금 얼굴 해동 중"이라고 하며 음흉하게 웃었다.


그리고 또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어쩔 수 없이 덜덜 떨면서 씻어야 할 때나 맨발로 얼음장 같은 방바닥을 밟았을 때, "아 차가워!" 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아 뜨거워!"라고 내뱉곤 했다. 마치 알 수 없는 태곳적 본능이 깨어난 듯 신비로웠다. 왜 어른들이 열탕에 들어가서 시원하다고 말하는지 색다른 방법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입 밖으로도 '춥다'는 혼잣말을 해대고 속으로도 '춥다'는 생각으로만 가득 차 완벽한 언행일치의 경지에 올랐다. 모든 잡념이 기적처럼 사라지고 존재 자체가 '춥다' 그 자체가 되었음을 느낀 어느 날, 갑자기 목 언저리가 뜨끈뜨끈해졌다.


뭐지 지금, 이 울렁울렁한 이거, 뭐지. 서른세 살 먹은 인간이 지금, 추워서 우는.. 거야?


집에서 입김 나옴
툭하면 빨래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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