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세사기에 당했다

퇴사 D-36

by 세라

퇴사를 알게 된 지 3일째.


첫째 날에는 충격과 암담함에 친구와 술을 마셨고, 둘째 날엔 거세게 일어나는 분노와 걱정에 울다 잠들었다. 3일 연속 제대로 잠을 못 잔 터라 오늘은 오전반차를 내고 쉬다가 오후에 나가 필요한 것만 처리하고 퇴근했다. 다행히 조금이나마 마음이 가라앉는다. 남은 기간 동안 휴가를 모두 소진할 계획이다.


시간이 지나면 부끄러워질 글들을 이렇게 기록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 싶지만, 여기가 아니면 딱히 털어놓을 데도 없어서 꾸준히 써 보기로 한다.




회사의 부조리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맴도는 생각이 많지만, 퇴사 후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역시 집세다. 역대 최악의 금리. 백수가 되어 은행에만 한 달에 100만 원을 내야 한다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건가.


작년에 나는 전세 사기에 당했다. 하필 전세가가 폭등한 시기였고, 원래도 조촐한 하숙집이나 옹색한 원룸에서 살아왔지만, 같은 돈으로는 아무리 서울 외곽으로 빠져도 답답하고 음침한 집 밖에 없었다. 10년 넘게 서울의 별의별 희한한 집들에 살아보면서 집에 대해 병적으로 한이 쌓인 나와 친구는 한 번이라도 사람다운 집에 살아보자며 힘을 합쳐보기로 했다. 우리는 부동산 중개인을 따라 서울의 여러 집을 보러 다니다가 한 신축 빌라에 계약을 했다. 그런데 하필 그 집이, 그 유명한 깡통전세였다.


나는 그때 깡통전세라는 단어도 몰랐다. 고시원이나 하숙집 위주로 생활해서 제대로 된 부동산 계약 경험이 별로 없었고,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부동산 중개인부터 분양팀, 건축주, 매수인, 대출은행, 감평사까지, 피해자의 신용을 이용해 대출금과 리베이트를 나눠 먹는 매우 조직적인 사기 방식이었다.


30대 중반치고는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적은 액수였지만, 어쨌든 잦은 이직 중에 열정 페이로 겨우 모은 나의 전재산을 한꺼번에 날리고 수 억의 빚을 떠안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 시기에 나는 매일 악몽을 꾸며 분노와 우울의 급류를 타는 거의 미친 여자였다. 온갖 시중은행과 부동산, 주택도시보증공사(HUG), 구청, 국토교통부, 경찰청, 국세청, 시민단체, 변호사, 국회의원, 전세사기 유튜브, 전세사기 피해자 모임, 국민신문고, 다산콜센터, 언론, 그리고 할 수 있는 모든 인맥을 동원하기까지…… 몇 달 동안 정말 정신병자처럼 들쑤시고 다닌 끝에 운 좋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확실한 것은 제도적으로는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었으며 개인과 개인의 싸움 끝에 얻어낸 결과였다는 것이다.


전세사기에 대해서는 짧게 언급만 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글이 길어졌다. 하지만 이 시대 청년들의 우울과 절망에 일자리 문제와 함께 양대 산맥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단연 집 문제일 것이다. 전세사기 경력 또한 청년 절망의 고작 한 스펙에 불과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절망에 절망을 거듭하며 나이를 먹다 보니 이젠 '청년'이라고 불릴 나이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얼마나 더 큰 절망이 기다리고 있을까, 희망고문에 버금가는 '절망고문'의 세월이 까마득히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당시 남은 여력을 쏟아부어 들어온 게 지금의 집이다. 사기를 당하고 난 뒤 너무 지쳐 월세를 고려했으나, 월세에 걸린 보증금 역시 만만치 않아서 고민 끝에 믿을만한 사람에게 안전하고 확실한 전셋집을 구했다. 앞으로 힘들어도 참고 열심히 일하면서 얼른 중도상환하고 그다음에는 더 나은 데로 가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얼마 못 가 회사는 잘리고 금리는 2배로 뛸 줄이야. 아, 다시 막막한 도돌이표다. 다시 모르겠다. 다시 울고 싶다. 하기사 글이 뭐라도 해결해 주길 바라고 쓴 건 아니지만.


불합리하고 무자비한 현실을 살면서 참 많이 상처를 받는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내 주변의 많은 친구들도 그렇다. 이렇게 글을 써 봤자 현실적인 문제는 물론이며, 마음의 상처가 치유될 거라고 믿지도 않는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글로 써 내려가는 지금이 그나마 정신을 차린 순간일 것이다. 진짜 나를 놓아버린 순간에는 이런 글조차 쓸 수가 없으니까. 그러므로 나는 지금, 살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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